대한민국 과학수사파일 제 5회

2006-09-21     글 : 최상규 
억울함 풀어주는 ‘혈흔’

제6화 상자 속에 든 토막시체


1994년 10월 25일 새벽 4시 20분, 부산역에 도착한 서울발 통일호 객실 선반에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승객 모두가 이미 하차해 열차 안은 텅 비어 있었고, 상자를 두고 내린 사람은 찾을 수도 없었다. 수송과 직원 한 명이 선반에서 상자를 끌어내렸다. 단단히 봉해져 있는 테이프를 뜯어내고 상자를 여는 순간, 그는 뒷걸음질 치며 손으로 코를 막았다. 뭐라 형언하기 힘든 지독한 냄새를 훅 끼쳤고, 상자 안에 들어 있는 물체는 몹시 수상하고 불길했다.

그것은 사람 같았다. 아니 사람의 일부 같았다. 얼굴과 하체는 없되 두 팔은 온전한 사람의 몸통으로 절단된 상체였다. 수송과 직원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열차를 빠져나가 역전 파출소에 신고를 했다.현장에 도착한 부산 동부경찰서 수사팀은 토막시체의 외관을 관찰했고, 다행히 양손이 붙어 있었기 때문에 지문 감식으로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기도 S시에 거주하는 36세의 ○여인. 잔인하게 살해된 피해자의 신원은 그렇게 밝혀졌다.

이제 그 상자가 어느 역에서 운반되어 왔는지, 즉 어느 곳에서 범행이 이루어졌는지를 밝혀내는 일이 사건 해결의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부산 동부경찰서 수사팀은 장거리 출장 수사를 결정, 경기도 S시로 이동해 피해자의 주거지 중심으로 탐문수사를 벌여나갔다. 그 결과 피해자는 S시의 가구공장에서 일하고 있었으며, 사흘 전 퇴근 후부터 행방이 묘연한 것으로 밝혀졌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치정 관련 사건인 것으로 추정. 수사팀은 피해자 주변 남성들을 집중적으로 탐문하기 시작했다.

결국 용의자는 다섯 명으로 좁혀졌고, 수사 중 유력한 증거물들이 나타났다. 피해자와 내연 관계에 있던 J씨의 자동차 트렁크에서 톱과 망치 등이 발견되었다. 수사는 활기를 띠는 듯했다. 수사팀은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해 왔고 우리는 증거물들을 검사했으나 그 어느 것에서도 혈흔은 검출되지 않았다. 수사는 답보 상태에 빠졌다. 증거물은 말할 것도 없고 알리바이 조사는 다각도로 수사를 하였으나 다섯 명의 용의자에게서 별다른 혐의가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한국통신에 의뢰해 놓았던 피해자의 통화 내용 결과가 입수되었다. 실종 전날과 실종 당일, 피해자는 두 차례에 걸쳐 통화를 했는데 상대는 같은 가구공장에 근무하는 K군(24세)이라는 전혀 엉뚱한 청년이었다.

사건 발생 전후인 이틀 동안 K군이 공장에 출근하지 않은 사실, 거주지가 S역 근처라는 사실을 알아내자 수사에는 가속도가 붙었다. K군이 시체를 운반하기 용이한 S역 부근에 살고 있다는 것. 그것은 결정적인 단서였다. 수사팀은 K군을 유력한 용의자로 추정하고 그의 집을 샅샅이 수색하기 시작했다. 집 안에서 망치 한 개와 피 묻은 테이프가 나왔다.

한편 국과수 연구원들은 현장에 출동, 육안으로 식별되지 않은 혈흔을 찾아내기 위해 루미놀 시험을 실시했다. 그 결과 방과 욕실의 타일 바닥 곳곳에서 형광 빛이 관찰되었고, 칼날에 부딪혀 파손된 타일조각도 찾아냈다. K군의 집에서 채취한 미량의 혈흔은 모두 피해자와 동일한 O형의 혈액으로 판정되었고, DNA 분석 결과도 일치했다. 가정집 욕실에서 시체를 토막내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완벽히 증명된 것이다. 범인을 검거하는 일만 남았다.

수사팀은 이미 도주해 버린 K군을 검거하기 위해 가구공장과 친척, 애인, 친구들의 집을 중심으로 잠복근무에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수원 시내를 배회하던 K군을 검거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범행을 부인하던 K군도 확실한 물증을 대며 추궁하자 순순히 자백하기 시작했다. K군은 전문대학을 다니다 휴학 중에 있었으며 성실하고 모범적인 청년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던 가구공장에서 만난 피해자와는 가끔 정을 통하는 사이였다.

K군의 진술에 의하면, 사건 당일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늦게 귀가해보니 방에 ○여인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K군은 나가라고 소리쳤으나 ○여인은 오히려 집요하게 결혼을 요구해 왔다. K군은 칼을 들이대며 다시 한 번 나가라고 위협했다. 그러나 ○여인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고, K군은 순간적으로 여인을 살해하고 말았다.

시체 처리에 고심하던 K군은 급기야 피해자의 몸을 토막 내고 그 일부를 상자에 담아 기차를 탔다. 선반에 상자를 올려놓고 S역을 출발, 대전역에서 홀로 내린 범인은 시체의 나머지 부분들을 철로 변에 던졌다. 그리고 그것은 청소차에 의해 경기도 미금시 쓰레기 적재함에 버려졌다. 결국 몸통이 든 끔찍한 상자만이 부산역까지 운반되었던 것이다.

K군의 검거는 수사요원들의 광범위하고도 치밀한 탐문 수사의 개가였다. 또 한국과학수사연구원들은 신속하게 현장으로 출동, 시체를 훼손한 장소를 입증해 내고 DNA분석까지 실시해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했다. 당시로서는 (그리 오래전도 아니지만)보기 드문 과학수사의 성공적인 사례였다. 현대인들의 메마른 감정과 포악스러운 본능의 돌출로 엽기적인 사건이 종종 발생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다. 선량한 인간의 마음이 서로 통하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우리 모두 더욱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제7화 용의차량에서 발견된 돼지 피

“박사님, 제 차량에 묻은 피는 돼지 피입니다. 저는 사람을 친 적이 없습니다. 사람 피가 아닌 돼지 피도 증명이 가능한지요?”
충북 음성읍 ○○출장소 앞 국도에서 Y군(28세)이 어느 차량에 치여 숨졌다. 조사요원들은 용의차량을 다각도로 수사하던 중 1톤 트럭 좌측 앞 범퍼에 묻은 혈흔을 발견하고는 연구소에 피해자의 혈흔 여부를 감정 의뢰해 왔다. 그러나 용의차량 운전자는 축산업에 종사하는 S씨(48)로 그 혈흔은 사고와는 무관한, 도축장에서 돼지고기를 운반하다 묻은 ‘돼지 피’라고 계속 주장했다.

그는 결백을 주장하며 절박한 심정으로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해 달라고 했다. 함께 온 조사요원도 용의차량에 묻은 피가 사람 피인지 정밀하게 분석하여 그 결과에 대한 통보를 부탁하며 담담한 표정으로 되돌아갔다.

심헐실에서는 우선 혈흔 확인시험을 거쳐 혈흔이 틀림없음을 증명했다. 그 다음 이 사고에서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사람 피 여부, 만일 사람 피가 아니라면 돼지 피 여부를 가리기 위해 인수혈 증명시험을 실시했다.
사람 피를 증명하는 데 사용하는 사람의 혈액을 동물에 면역하여 제조한 사람 혈청에 대한 항체를 함유한 항사람 면역혈청을 이용하는 면역확산법으로 사람 피 여부를 시험했다.

시험 결과 ‘항사람 면역혈청’과 차량 혈흔과는 상호 특이적인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사람의 피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렇다면 용의자가 말한 대로 돼지 피가 맞는 것인가. 실험실에서는 또 실험에 착수했다. 이번에는 돼지 피를 다른 동물에 면역하여 제조한 ‘항돼지 면역혈청’을 사용한 면역확산법을 실시했다.
그 결과 차량 혈흔과 ‘항도지 면역혈청’과는 상호 특이적인 항원항체 반응을 일으켜 결국 돼지 피로 증명된 것이다. 곧바로 감정결과에 대한 감정서를 작성하여 통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