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명기 편 | 제 24 회
2006-04-12
“자라 피를 한국사람들만 찾는 줄 알았더니 일본 사람들도 즐기는군. 그래서 히로미, 먹어보니 어땠어요. 별미던가요?”“아뇨. 나는 생피는 비려서 도저히 못 먹겠더라구요. 대신에 자라탕은 먹어봤어요. 맛은 솔직히 별로였고, 그런데 개구리 구이는 아주 별미였어요. 그 간부 남자는 부자인데다 식도락가여서 정력에 좋다고 소문난 음식이면 물불을 안가리고 찾아다녔거든요. 그때마다 저를 데리고 다니면서 ‘이거 귀한 건데 특별히 너한테만 사주는 거야. 먹어봐. 엉?’ 하며 권했죠.”“개구리 구이? 그게 진짜로 정력에 좋은가. 그런데 히로미양. 그 간부가 그걸 먹고 정말 힘을 쓰던가요?”“에구. 힘을 쓰긴 커녕 시작부터 헬렐레 하니 왕 짜증이었죠. 그런 판국에 비싼 돈까지 줘가며 그런 걸 뭐하러 먹어대는지 정말 한심하더라니깐요. 아니면 개구리를 너무 잡아먹어서 개구리 원혼이 씌어서 그런가. 하여간 무심코 화장실에서 오줌 누는 소리를 들었는데, 찔끔 찔금거리는게 꼭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같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막판에 헤어지며 충고했죠. 그런 엽기적인 음식만 탐하지 말고 당장 고장난 수도꼭지부터 고치라고요.”이에 강쇠가 으하하하,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오줌발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남자가 정력이 세면 오줌발도 자연히 세죠. 그것도 지나가는 개구리가 맞아 죽을 정도로 위력적이어야 여자들이 끔벅 죽지 않을까요.”“하여튼 저는 눈에 불을 켜고 정력제 따위를 찾아다니는 남자는 싫어요. 그런 점에서 특히 한국의 남정네들이 태국이다 어디다 해외 원정까지 다니며 몬도가네식 식탐을 일삼는다는 소문이 파다하던데, 그건 좀 문제가 아닐까요.”“그게 뭔 소립니까. 근엄한 신사의 나라로 유명한 영국 남자들에 비하면 일부 한국인의 그런 행동은 애교에 불과할 뿐이죠.”“네에? 그럼 영국 남자들도 몬도가네식을 즐긴다는 말씀인가요?”“아, 요즘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고, 15세기경 영국 남자들이 성 불능을 치료하려고 쑥속과의 식물에 교살당한 남자의 집게손가락을 넣어 찐 음식을 먹었다는 일화가 있어요. 이는 내가 섹스학에 집념을 태울 때, 세계 여러나라의 성 관련 음식과 약물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알아낸 사실이죠.”“어머머 어쩌면 그럴 수가. 하필이면 교살당한 남자의 집게 손가락을…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으스스해져요 강쇠씨.”
“으스스하긴요. 어떻게 해서든 성불능을 치유해보려는 필사적인 의지가 엿보이지 않습니까. 성불구자의 참담한 심정은 정상인들은 잘 몰라요. 사랑하는 사람을 힘껏 안아주고 기쁘게 해주고 싶어도 마음뿐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 그 심정이 오죽 하겠습니까. 추측컨대 그런 절망감이 상식을 깨는 비상한 노력을 낳고, 앞서 말한 것처럼 일견 황당무계해보이는 일화를 탄생시킨 겁니다.” 강쇠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계속해서 말해나갔다. 히로미와 릴리는 처음 듣는 이야기에 흥미가 끌리는 듯 진지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다.“성불능자의 처절한 노력은 이처럼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습니다. 보다 완벽한 섹스를 얻기 위한 우리 인류의 노력은 비단 성불능자 뿐만 아니었어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정상인들 또한 성적 만족을 얻기 위해 남자는 연금술사가 되기도 했고, 여자는 마녀가 되기도 했으며, 이들 가운데 머리가 비상한 사람은 과학자가 되기도 했죠. 유사 이래 우리 인간이 성과 건강의 상관 관계를 깊이 연구해온 증거는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이를테면 고대 그리스인들은 섹스를 나눌 때 쓸 사랑의 묘약으로 희한한 처방을 고안해냈더군요.”
“사랑의 묘약? 혹시 초콜릿 같은 건가요?”히로미가 호기심을 드러내며 묻자, 강쇠가 대답했다.“아니. 초콜릿 따위는 비교가 안될 만큼 신묘한 처방이죠. 자 들어보세요. 산토끼와 파리의 자궁을 두꺼운 철판 위에 노릿노릿하게 굽습니다. 여기에다 장미 향유 3파운드를 골고루 뿌린 다음 향기로운 몰약을 섞어요. 그러고 난 뒤 다시 지방 4g, 악어기름 1g, 마늘 2g, 개불알꽃 2g, 꿀 4g을 섞고 참새 기름도 극소량 넣습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묘약은 강력한 최음제 역할을 해 상대방의 마음을 순식간에 사로잡아버리죠.”“듣고 보니 정말 고대인들의 성에 대한 지혜는 탁월하네요. 섹스를 학문의 경지에까지 끌어올리려고 몸부림치는 강쇠씨의 집념 또한 대단하구요. 그리고 지금, 오늘 밤에 강쇠씨가 저를 어떻게 할지 상상하니 너무 흥분돼요.”“흥분되고 기대되긴 나도 마찬가집니다. 사실 노팬키사에서 처음 히로미양의 그곳을 봤을 때, 한국의 ‘일자 숲’과 일본의 ‘일자 숲’이 교접시 서로 어떻게 다를까? 그 생각이 떠올랐죠. 같은 동양권 숲이라도 색다른 뭔가가 있을 것도 같은데, 이제 밥도 다 먹었으니 히로미양이 원하는 장소로 슬슬 이동해볼까요.”
“좋아요. 절 따라오세요. 제가 근사한 장소를 알고 있거든요.”히로미는 앞장 서서 식당 문을 나섰다. 그러자 릴리가 얼른 옆에 따라붙었다. 늘씬한 각선미를 뽐내며 두 미인이 나란히 걸어가자 지나가던 젊은 녀석들이 저마다 힐끔거리며 쳐다보기 바빴다. 강쇠와 대근은 느긋한 표정으로 뒤따랐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히로미는 가까운 모텔은 제쳐두고 빌딩 숲 사이를 숨바꼭질하듯 이리저리 헤매기만 하는게 아닌가. 마침내 참다 못한 대근이 소리쳐 불러세웠다.“히로미. 대체 어딜 가려고 뺑뺑이를 돌리는 거야? 이러다 날 새겠어.”“호호호 성미도 급하시긴. 다 왔어요. 저기 저 공원 보이죠?”히로미가 손가락 끝으로 가리킨 곳은 도심 한가운데 있는 공원이었다. 대근은 내심 찝찝했다. 언뜻 보기엔 나무들이 우거졌으나 그래도 사람의 왕래가 잦은 도심 속 공원이 아닌가. 더군다나 릴리같은 미녀를 마음 놓고 품기에는 여간 신경 쓰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자 대근의 속마음을 눈치챈 히로미가 느닷없이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대근씨. 혹시 다자이 오사무라는 일본 작가 아세요?”
“아뇨. 다꽝은 알아도 다자이 오사무란 말은 첨 듣는데요? 아아 그렇다고 무식한 놈 취급은 마십쇼. 이래봬도 ‘상실의 시대’로 유명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정도는 압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는 겁니까.”“아, 그건 제가 다자이 오사무 소설을 참 좋아하거든요. 그 분 작품에는 비장한 정사(情死)를 나누는 연인들의 이야기가 심금을 울리죠. 저도 여학생 때부터 그러고 싶었어요. 장소는 반드시 야외라야 해요. 아스라이 끝없는 들판에 서서 핏빛 노을을 바라보며 님과 함께 정사를 나누죠. 노을처럼 질펀한 섹스, 불꽃같은 격렬한 섹스를 나눈 후에 각자 담배 한 개비씩 입에 걸고 말없이 침묵에 잠기죠. 해가 지고 바람이 불고,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그런 다음 마지막 결단의 순간을 맞습니다.”“자 잠깐만. 어째 분위기가 요상하네요. 그러니까 우리도 그렇게 정사(情死)를 하자는 겁니까 뭡니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