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명기 편 | 제 23 회

2006-04-03      
릴리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혼줄이 났는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강쇠는 신비로운 생각이 들었다. 일본인과는 체구나 외모 등 여러 면에서 판이한 아이누족. 그 사람들이 그렇게도 섹스에 강하다니, 이유가 뭘까. 궁금증이 절로 일었다.“과연 쇳덩어리가 위력을 발휘한 건가. 정말 그런 건가요 릴리?” “아뇨. 쇳덩어리는 정력 강화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아이누 남자들이 그렇게 오래 섹스를 하는 건 일찍 죽기 싫어서였어요. 그들은 사정을 않고 오르가즘을 의식적으로 피해야지만 건강해지고 장수할 수 있다고 믿거든요. 그래서 쇠덩이도 매달고 다니고 죽을둥살둥 오래 하는 것이지, 여자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가 아니예요.”그러자 대근이 은근히 자존심이 상한 듯 못마땅한 말투로 의문을 표했다. “그런데 그 아이누들 하필이면 왜 쇳덩이야? 난 도무지 이해가 안돼. 마라톤 선수들도 모래주머니를 차고 연습한다잖아. 그런데 튼튼한 다리도 아니고 겨우 볼 일 볼 때만 서는 거시기에 쇳덩이를 달고 살면 사람이 어떻게 견디나. 거 혹시 잘못 들은 거 아뇨 릴리? 직접 두 눈으로 본 거요?”

“아뇨. 직접 보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어쨌거나 아이누 남자들의 그런 고군분투적 자세는 지구상의 모든 남자들이 마땅히 본받아야한다고 생각해요.”“그래요. 남자들은 순전히 자기 본위예요. 적당하게라도 만족시켜주려고 애쓰는 남자는 그래도 봐줄만 해요. 하지만 대부분 자기 욕심만 채우고는 나가 떨어지기 일쑤죠. 일본엔 그런 남자들이 수두룩하게 널렸는데, 한국남자는 어떤지 궁금하네요. 소문에는 그 방면으론 한국 남자들이 강하다던데, 정말 그런가요 대근씨?”히로미가 대근을 슬쩍 쳐다보며 질문을 던졌다. 대근은 움찔거리더니 머뭇머뭇 대답했다.“소… 소문 그대롭니다. 한국에는 그렇게 간 큰 남자는 많지 않죠.” 이때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던 강쇠가 의아한 표정으로 릴리에게 물었다.“릴리. 아이누 남자와 교접할 때 했던 이야기 말입니다. 자꾸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릴리는 지칠 줄 모르는 정력의 소유자를 원한다면서, 고작 서너 시간 교접으로 아프다고 아우성을 치다니 앞뒤로 이치가 맞지 않는데요.”

“아 그건 순전히 테크닉 때문이었어요. 아무런 전희도 없이 처음부터 피스톤 운동만 해대니 서로 교감을 느낄 수가 없잖아요. 그러다보니 윤활유도 없는 상태에서… 아픈 건 당연하죠.”“하긴 피스톤도 피스톤 나름, 강약 조절없인 촌놈 힘자랑하는 꼴밖엔 안되죠. 특히 사전에 에로틱한 무드를 잡고서 충분한 애무를 통해 교감을 나누는 건 필수적이죠.”그 말에 히로미 역시 즉각 맞장구치고 나왔다.“그래요. 강쇠씨 말이 맞아요. 우리 여자들은 섹스 이전에 분위기를 몹시 중요하게 여기거든요. 남자들은 그걸 꼭 알아야 해요. 내가 남자라면, 꼭 정복하고 싶은 여자가 있으면 먼저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는 곳에서 촛불을 켜놓고 사랑한다고 고백부터 하겠어요. 그런 다음에 살짝 허리를 껴안고 부드럽게 키스를 하죠. 귓 속으로 뜨거운 입김을 불어넣으며 ‘널 안고 싶어.’ 하고 속삭이죠. 그러면 어지간한 여자는 분위기에 취해 스르르 넘어가기 쉽죠. 그 다음부턴 바라는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지 않을까요.”

“호호호. 히로미가 두 분께 좋은 걸 가르쳐 주네요. 나도 한가지 말해볼까요. 전희가 매번 번거롭게 느껴지면 애인과 함께 향수 목욕을 해봐요. 그러면 서로 기분도 돋우어주고 멋진 섹스로 이어질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참, 대근씨. 근사한 저녁식사 산다더니 어디로 갈 건가요?” “지금 가장 먹고싶은 게 뭡니까. 샤브샤브? 스시? 말만 해요. 총알같이 앞장설 테니깐.”“음…내 생각엔 굴 요리를 먹는 게 좋겠어요. 그게 대근씨를 위해서도 좋고 나한테도 좋을 것 같은데… 대근씨 생각은 어때요?”릴리는 그렇게 말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대근이 어리둥절해 물었다.“무슨 숨은 뜻이 있나 보죠? 굳이 굴 요리를 먹자는 이유가?”“대근씨. 이제보니 정말 순진하네요. 세기의 바람둥이 카사노바가 귀부인과 밀회를 나누기 전에 항상 굴 요리와 초컬릿을 챙겨 먹었다는 말 못 들어봤어요?” 대근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대관절 굴 요리와 초컬릿이 섹스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건가. 굴은 생긴 것부터가 흐느적거리는 게 정력을 돋울 것도 같다만, 초컬릿은 섹스에 뭐가 좋다는 거지?’ 대근은 점점 요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여자들이 발렌타인데이 때 애인에게 초컬릿을 선물하는 것도 뭔가 심오한 뜻이 숨겨져 있단 말인가. 아니나다를까, 릴리가 묘한 미소를 흘리며 대근에게 말했다.

“초컬릿은 비상시 에너지 공급원이기도 하지만 이성을 유혹하는데 안성맞춤이죠. 시부야나 하라주쿠에 초컬릿 파는 가게 가보면 당장 알 거예요. 거기선 그냥 초컬릿이 아니라 남자 성기 모양을 본떠 만든 초컬릿을 팔죠. 발렌타인데이 때 여성들이 그걸 사서 남자 친구에게 선물하는데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죠. 게다가 굴 또한 일본 남자들이 사족을 못쓰는 강정제죠. 그런 걸 카사노바는 두 개 한꺼번에 먹고 귀부인의 침실에 뛰어들었으니, 아마도 그 밑에서 죽었다 깨어난 여자들이 한둘이 아니었을 거예요. 호호호.”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대근은 릴리의 손을 잡으며 벌떡 일어났다.“가자. 굴 요리 먹으러. 까짓 거 카사노바도 먹었다는데, 우리라고 못 먹을 이유가 없지. 그리고 초컬릿은 각자 알아서 지참해 뒀다가 거사 직전에 복용키로 한다. 출동!”대근은 보무도 당당하게 굴 요리 전문점으로 달려갔다. 의기양양하게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자, 풍채 좋은 지배인이 깍듯이 인사하며 맞이했다. 식당은 제법 명성이 있는 듯 내부 장식과 분위기가 품격 있어 보였다. 지배인은 일행을 대나무로 단장된 창가 테이블로 안내했다. 이어 메뉴판을 공손히 내밀자, 대근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굴!’ 하고 외쳤다. 어리둥절한 지배인이 조심스런 태도로 재차 물었다.

“손님. 여긴 굴 요리가 전문이라서 종류가 다양합니다. 굴무침 굴튀김 등 요리마다 맛이 다르고 가격도 다르죠. 손님께선 어떤 요리를 원하시는지요.”가격이 다르다는 말에, 대근은 얼른 메뉴판을 뺏어들고 재빨리 가격표를 훑었다. 다음 순간 대근의 표정이 벌레 씹은 듯이 일그러졌다.“뭐야. 이건 너무 비싸잖아. 굴밥이 1인분에 8천엔. 생굴야채무침과 생굴튀김이 한 접시에 각각 1만5천엔. 그렇담 강쇠놈에다 히로미 릴리, 나까지 합치면 도대체 몇 만엔이야. 끙… 계산이 잘 안되네.”“뭐예요 대근씨. 화끈하게 쏜다고 하구선 쫀쫀하게시리 따지긴 뭘 그렇게 따져요.”릴리가 퉁박을 주자, 대근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그 그렇긴 하지만서도… 그냥 굴밥으로 한 그릇씩 돌리면 안될까.”대근은 반박할 겨를없이 곧바로 주문했고, 잠시 후 식사가 왔다. 히로미가 살짝 맛을 보더니 감탄을 발했다.“음 맛있네요. 굴밥도 일품이고, 우메보시도 깊은 맛이 느껴지는데요. 강쇠씨도 하나 먹어봐요. 한국에선 김치가 으뜸이듯 일본에선 우메보시가 장수를 보장하는 전통 건강식품이죠.”히로미는 젓가락으로 우메보시 한 점을 들어 강쇠의 입 속에 쏙 넣어주었다.

강쇠가 먹다 말고 불쑥 물었다.“그런데 참, 히로미양. 한국 남자들은 정력을 돋우는데 보신탕을 애용하는데, 일본남자들은 주로 뭘 먹죠?”“보신탕? 아 들어본 적 있어요. 한국인들이 개고기를 즐긴다고, 브리짓드 바르돈가 하는 여배우가 싸잡아 비난하던데, 그게 그렇게 몸에 좋은 건가요?”“좋다마다요. 그걸 먹고 나면 새벽에 벌써 달라지죠. 벌떡 벌떡!”“벌떡 벌떡! 호호호. 정력에 좋다면 사족을 못 쓰는 건 한국 남자나 일본 남자나 똑 같네요. 실은 지금은 관계를 끝냈지만 얼마전까지 잘나가는 재벌회사 간부를 사귀었거든요. 그런데 그 간부는 저녁을 산다며 꼭 ‘스폰나베’로 데려갔어요.” “스폰나베? 거기가 뭐하는 덴가?”“자라탕 전문식당이요. 간부는 섹스를 나누기 전에 꼭 자라 생피를 마셨는데, 그분 말씀이 그게 남자 정력에는 최고라는 거예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