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명기 편 | 제 20 회

2006-03-14      
히로미는 입술을 반쯤 벌린 채 갈구하는 표정으로 말했다.“사실 저는 멀티 오르가즘이란 걸 느껴보지 못했어요. 책 같은 데선 분명히 그런게 존재한다고 하는데, 정말로 그게 가능한지 궁금해요.”“있고 말고요. 멀티 오르가즘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것은 마치 파도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들이치기도 하고, 여름밤을 화려하게 수놓는 하나비 축제 때처럼 파파팍… 하고 불꽃같은 황홀감의 극치가 3,4초 간격으로 반복해서 밀어닥치기도 하죠. 단, 평범한 오르가즘은 몰라도 멀티 오르가즘을 느끼려면 경지에 오른 섹스 전문가를 만나야 합니다.”“아 정말 그런 남자를 한번이라도 만나봤음 소원이 없겠어요.” 히로미가 꿈꾸는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강쇠가 잔뜩 무게가 실린 음성으로 대답했다.

“여기 있습니다. 히로미양은 지금 그 남자를 만나고 있어요.” “네에?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설마 손님이?” 히로미는 눈을 휘둥그레 뜬 채 강쇠의 몸을 아래 위로 훑어봤다. 그러자 옆에서 대근이 말했다.“이 친구는 한국에서 온 섹스 전문가죠. 아마도 교접의 신이라는 도경스님이라면 모를까, 일본 내에선 이 친구만큼 강한 남자를 만나긴 힘들 겁니다.”“아! 어쩐지 오늘 신문에서 운세풀이를 보니까, 멀리 동방에서 온 귀인을 만날 거라던데, 그게 바로 손님이셨군요. 그런데 실례지만 뭘하시는 분이시죠?” “한번 알아맞혀 보세요. 맞히면 히로미양의 소원을 풀어드리죠.” “좋아요. 음…한국에서 왔다면 유학생? 아니면 무역회사 상사원? 그것도 아니면 그냥 놀러온 관광객이신가요?”

“아닙니다. 다 틀렸어요. 이 친구는 도쿄에서 택견도장을 운영하고 있고, 나는 뜻한 바 있어 세계 원정길에 나선 섹스 전도사죠. 하지만 단순히 섹스를 전파하고자 하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나는 여성의 성기 구조를 깊이 연구 분석하고 비교 관찰해, 터득한 결과를 바탕으로 인류사상 가장 위대한 섹스 전도서를 낼 계획입니다. 지금 헤리포터 시리즈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습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어린이들을 위한 책이죠. 히로미양. 그대는 지금 이 지구상의 수많은 어른들이 얼마나 심심해하는지 알고 있습니까. 나는 우리 어른들을 즐겁게 해주고, 눈을 번쩍 띄게 할 그런 책을 반드시 써낼 겁니다. 사실 말이 나와서 하는 건데, 우리 어른들이 즐거워 할 일은 그리 많지 않죠. 여행, 스포츠, 영화 관람 등등이 있겠습니다만, 세상에는 그런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섹스는 누구나 좋아하고 또 원하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섹스는 인류 공통의 지대한 관심사인데, 문제는 이게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겁니다. 우리 어른들은 모두가 섹스 때문에 울고 웃으며, 섹스로 인해 이별과 만남을 되풀이합니다. 그런가 하면 섹스로 좌절하고, 반대로 용기와 희망을 얻기도 하죠. 결론적으로 말해, 섹스에 약한 자를 강하게 만들어주고, 강한 자는 더욱 강하게 만들어 남녀 화합을 이루고, 나아가 인류 화합에 기여하고자 하는 것이 나의 목표요 꿈입니다. 그래서 그 첫 대상 국가로 일본을 점찍고 건너 왔으며 현재 맹렬히 활동 중에 있죠. 어떻습니까, 히로미양. 이만하면 나의 정체가 파악이 됩니까.” 강쇠는 숨을 쉬지도 않고 일사천리로 열변을 토했다.

그 말은 일방 논리정연하긴 했으나 다른 한편으론 한이 맺힌 듯했고 울분에 찬 듯이 들리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강쇠는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그 많은 학과 중에 섹스학과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대학마다 별별 놈의 학과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널렸는데, 유독 섹스과만 없다는 건 강쇠의 입장에서 다분히 문제의 소지가 있었던 것이다. 더더욱 통탄할 일은 이를 마땅히 개선해야 할 어른들이 전혀 개전의 정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강쇠는 집념을 불태워 연구한 논문을, 말이 통할 성싶은 학회에 잇달아 기고했는데 제목은 대충 이랬다.<고대 원시인들의 성교시 체위에 관한 고찰> <구석기 시대 한반도 도래인의 성교 횟수에 관한 연구> <네안데르탈인의 성기와 북경원인의 성기 크기의 변천사> 등등. 하지만 잇단 기고에도 불구하고 논문은 단 한차례도 발표되지 않았으니, 강쇠가 열을 받다 못해 울분이 맺힌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강쇠의 울분 섞인 열변은 그뒤에도 장장 두 시간 넘게 계속됐다. 히로미는 처음엔 어안이 벙벙해 쳐다보다가 차츰 존경어린 눈빛으로 변했다. 이윽고 강쇠가 말을 끝내자, 히로미는 휴우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정말 대단하시군요 강쇠씨. 듣고보니 일리가 있어요. 사람들이 날마다 섹스를 하면서도 그것을 대학에서 정식 학문으로 채택하지 않고 있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나저나 강쇠씨. 제가 강쇠씨의 연구 대상이 될 자격이 있기는 한 건가요?“

“무슨 말씀을. 히로미양은 거기가 ‘일자 숲’이지 않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일자 숲’을 가진 여성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어요. 남자 입장에서보면 행운이라고 할까, 전에 한국에서 딱 한번 ‘일자 숲’을 만났는데 정말 대단했어요. 그러니까 걱정 말고 오늘 저녁에 꼭 시간을 내 점검을 받도록 하세요. 실은 히로미양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나도 몹시 궁금하거든요.”강쇠는 그러면서 찡긋 윙크를 보냈다. 히로미도 살짝 보조개를 드러내 보이며 화답했다. 바로 그때 대근이 더 이상 참지 못한 듯 끼여들었다.“에그 끓는다 끓어. 누구는 줄줄이 사탕인데 난 이게 뭐야. 히로미양, 이따 저녁에 친구도 같이 데리고 나올 수 없을까. 난 ‘일자 숲’이 아니라 민둥산이라도 괜찮은데.”“호호호. 소원이시라면 그러죠. 내 친구 중에 기차게 예쁜 친구가 있어요. 늘씬한 다리에 가슴까지 D컵이라 남자들이 걔만 보면 가다가도 뒤돌아서 한참 쳐다보죠. 또 있어요. 같이 목욕을 해봐서 아는데, 걔는 그곳도 민둥산이 아니라 기화요초가 만발한 향기로운 숲이에요.”그 말에 대근은 입이 찢어지면서도 내심 걱정된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고 고맙긴 하지만 히로미양. 그렇게 예쁜 여자라면 나한테 너무 과분하지 않을까.”

“뭘요. 만족시켜주면 되죠. 그런데 참, 조건이 하나 있어요. 그 아일 나오게 하려면 오까네가 두둑하게 있어야 해요. 가능하시겠어요?”“오까네? 돈 말인가. 얼마나 있어야 하지?”“호호 왜 그렇게 놀라죠? 많이는 필요없어요. 그 친구 요즘 돈이 필요해 밤낮으로 아르바이트 중이거든요. 그러니까 아르바이트 비용을 대신 주면 돼요.”“아 그 정도야 얼마든지 줄 수 있지. 그런데 그 친구도 이런 데서 아르바이트 하나? 노팬티로?” 대근의 말이 거슬렸는지 히로미가 샐쭉 토라져서 대답했다.“여기가 어때서요. 노팬티로 일하는 거 빼놓곤 일반 카페랑 똑같아요. 오히려 그렇게 색안경 쓰고 보는 게 문제죠.”“그래도 손님들 짓궂은 시선이 신경쓰일텐데, 아무렇지도 않다는 건 거짓말이지 않을까.”“아뇨. 여기보다 더 야한 업소도 많아요. 나체로 나와서 서빙하는 업소도 있는데, 거기 비하면 이런 덴 차라리 약과죠.”

“나체로 서빙? 거기가 도대체 어디야. 혹시 술집인가?”“아니, 고깃집이에요.”“고깃집? 설마 그럴 리가. 나도 도쿄 한복판에서 살고 있는데 그런 업소가 있다는 얘긴 처음 듣는군. 어디지 거기가?”“가부키쵸에 가면 있어요. 샤브샤브가 주요린데, 가메(거북)탕 같은 정력에 좋은 요리도 만들어 팔죠. 웨이트리스는 대부분 미인이거나 앳된 여대생들만 고용해요. 그러니까 손님들은 입으로는 미인이 구워주는 고기를 먹으면서 눈으로는 나체를 감상하죠. 물론 여자 손님은 일절 받지 않아요.”“호오. 그런 식당이 있다니 정말 놀랍군. 한국 같았음 고기 맛이 없어도 손님이 미어터지겠어. 강쇠 너라면 어느 고기부터 먼저 먹어야 할지 고민할 거고. 흐흐흐.”“말 한번 잘했다 이대근. 너, 쏘려면 그런 데서 제대로 한번 쏴라. 그러면 내가 더 확실한 조루 퇴치법을 가르쳐 주지.”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히로미가 둘의 대화에 찬물을 끼얹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