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의 있어!”
2004-03-11
문이 와장창 열리며 거구의 사나이 한 사람이 회의장 안으로 들어섰다.“이의 있다!”우람한 고함소리와 함께 들어선 사나이. 그는 바로 김두한 의원이었다. “내가 이의 있어!”김두한 의원은 성큼성큼 사회석으로 다가갔다. 여지껏 기고만장했던 이정재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이정재의 똘마니들도 아연 긴장했다. 김두한 의원이 사회석으로 다가와서는 사회석에 서 있는 이정재를 보며“네놈이 여기 사회자야? 너 발기인 명단에 도장 찍었어?”김두한 의원의 걸음걸이는 빈틈이 없었다. 여차직하면 붕 날 그런 자세였다. 한 번 날았다 하면 5미터 밖의 콘크리트 담벽도 박살을 내버리는 김두한 의원의 괴력을 아는 이정재로선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더구나 지난번엔 김두한 의원을 감쪽같이 잡으려다가 오히려 당하고 만 자기가 아닌가.“나는 자유당 창당 동지요. 김 의원도 가서 자리에 앉지!”이정재는 애써 마음의 동요를 가라앉히며 이렇게 말했다.
“뭐라구?”마침내 김두한 의원의 굵은 눈썹이 송충이처럼 꿈틀거렸다.“사회는 내가 맡기로 했으니, 저기 가서 곱게 앉아 계시지.”이정재도 눈을 똑바로 뜨고 김두한 의원을 노려보았다.회의장 안에 모였던 인사들은 이 두 거물의 싸움이 흥미롭기만 했다. 그들은 손에 땀을 쥐고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여러 말 하면 잔소리가 되는데, 이정재군! 아이들 데리고 꺼지지?”“허허허, 무슨 말씀! 사회자는 나요. 여러 동지들에게 공인을 받았단 말이요.”“뭐야, 이 새끼! 주먹은 이런데 쓰는 게 아냐!”“말 좀 삼가해 줄 수 없겠어?”“너, 정말 끝까지 날 배신할 셈이냐?”“뭐, 배신? 배신은 누가 했는데?”“배신자 이정재! 너, 두번은 내가 봐줬지만 세번까진 안돼!”“누굴 어린애로 아나? 함부로 날뛰지 말라고!”“뭐야? 이 새끼!”“날 칠텐가?”공기는 자못 험악해졌다.
마침내 이정재의 부하들이 우르르 단상쪽으로 몰려들며 싸울 자세를 취했다.“가소로운 놈들이군!”김두한 의원은 피식 웃었다.“너희들이 숫자를 믿구 까부는 거냐? 피래미 같은 새끼들!”“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 당하기 전에 물러들 가시지!”이정재는 싸늘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사회석 탁자를 발로 탁 차서 멀찍이 밀어버렸다.본격적인 싸움이 벌어지려는 순간이었다. 김두한 의원은 주위를 한 번 쓰윽 훑어보았다. 이정재의 똘마니들이 약 20여명쯤 될 것 같았다.(이런 피래미 새끼들 쯤이야 20명 아니라 200명이 와도 겁날 거 없다!)김두한 의원은 코웃음을 쳤다. 김두한 의원은 싸움이라면 자신이 있었다. 비록 나이는 많더라도 왕년의 가락이 있어 두려운 상대가 없었다.김두한 의원은 이정재부터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김두한 의원은 왼발에 힘을 주면서 오른발의 힘을 빼었다.그런데 이 때였다. 갑자기 요란한 사이렌이 울리며 경찰백차가 대회장 밖에 달려와 멎었다.“해산을 명합니다! 모두 나가주세요!” 경찰관들이 우르르 회의장 안으로 달려들어오며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겁을 집어 먹은 사람들은 슬금슬금 눈치들을 보며 모두 밖으로 빠져나갔다.“아, 김 의원님! 그리고 이선생! 두분도 어서 나가주시오.”경감 계급장을 단 인솔자가 김두한 의원과 이정재에게 퇴장을 요청했다. 일촉즉발의 싸움은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내 오늘은 이만 물러가지만, 충고를 해 두겠소!”이정재는 물러가면서도 잊지 않고 한마다 내뱉었다.“뭐, 충고를 해? 허허헛!”김두한 의원은 껄껄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