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한을 찾아온 김종필씨
2004-10-19
김두한은 박의장을 뵙자 마자 대뜸“나 김두한입니다. 박의장님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짧은 시일내에 모두 해치워 버렸습니다. 하여튼 감사합니다.”그러자 좀처럼 웃지 않는 박정희 의장도 빙그레 웃으며 악수를 청해왔다. “고맙습니다. 김의원님. 김의원님처럼 솔직하고 깨끗한 정치인들만 있다면 우리가 왜 이런 모험을 하겠습니꺼. 앞으로도 잘 좀 부탁헙니더.”김두한도 감격스러워 굳게 손을 잡고 악수를 나누었다. 박의장은 이어서“백야 김좌진 장군도 훌륭하지만, 이제 보이 아드님도 아버지 못지 않게 훌륭하네예.”박의장은 김두한의 솔직하고 사나이다운데 무척 매력을 느꼈는가 보았다.
“원 천만에요. 저야 뭐 아버님에 비하면 발바닥의 때만큼도 못하지요.”김두한은 껄껄 웃으며 이렇게 겸손해했다.아무튼 그는 자랑스럽고 기쁘기만 했다. 자기를 김좌진 장군에 비유해서 말해 주어 어떤 긍지같은 걸 느꼈다.그후 군사혁명 최고회의에서는 과거 우리 나라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거나 공을 세운 애국지사들을 선정하여 훈장과 원호금을 주게 되었다. 그 때 김두한도 아버지 김좌진 장군을 대신하여 훈장을 받았다. 그는 훈장을 받으면서 마음 속으로(아버님, 보십시오. 제가 아버님을 대신해서 자랑스런 훈장을 받았습니다.)아버지에게 주어지는 훈장을 받아 어깨에 걸친 김두한은 더 없이 자랑스럽고 감개가 무량하여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 김두한을 찾아온 김종필씨성남장 호텔 7호실.김두한은 그의 부하 참모들과 뭔가 열심히 의논하고 있었다.“이제 곧 민정이양이 되고 순수한 정치인들만의 정치활동이 다시 시작될 것이다.”김두한의 이 말에 부하 참모들은 회의를 느끼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정말 군사정부가 빠른 시일내에 순순히 민정이양을 할까요?”“나는 박정희 의장을 만나 확답을 들었어. 틀림없다니까.”“그렇다면 우리도 서둘러 조직을 점검하고 확대시켜 나가야지요.”한 부하가 말했다.“그렇지만 아직은 정치활동이 일체 금지되어 있는데 자칫 잘못하다간 걸려들 겁니다.”부하들의 의견은 구구각색이었다. 이윽고 1급 참모랄 수 있는 김영태가 나서며“일단은 노출이 안되는 방향에서 비밀리에 조직을 점검해 봅시다.”라고 말했다. 김영태의 이 말에는 김두한도 긍정이 가는지“그래. 그게 좋겠어. 각자 구역을 맡아서 노출이 안되는 방향에서 조직점검을 시작하도록 하라고.”김두한이 이러한 지시를 내린 것은 그 나름대로의 야심이 있어서였다.
그는 혁명정부에서 참신한 새 사람에게 민정이양을 하게 될 때는 미리 그 기반을 조정하여 신당을 만들어 정권인수를 할 수 있도록 만반의 태세를 갖추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떡줄 사람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었다.자칫 잘못 하다가는 반혁명 음모로 걸리거나, 혁명정부의 압잡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김두한 의원은 성남장호텔 7호실에 틀어박힌 채 이런 생각에 빠져 고민에 싸여 있었다.(정치적 술수만 능사로 삼는 구정치인의 행태. 그래선 안되지. 자유당 정부가 그랬고, 또 민주당 정부가 그랬지 않은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새 정부에는 깨끗한 새 사람들이라야 해. 참신하고 때묻지 않은 사람! 그런 사람이 우리에겐 필요한 거야….)그런데 김두한 의원이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생각해 봐도 그런 참신한 정치인은 몇 안되는 것 같았다.(이거 큰일인데. 참신하고 깨끗한 사람이 있어야 정당을 만들고 또 정치를 올바로 이끌어 나가지?)김두한 의원이 이런 고민에 싸여 성남장호텔에서 두문불출하고 있을 때 뜻밖에도 한 사나이가 그를 찾아왔다.“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진작에 한번 찾아뵈었어야 하는데 이제야 찾아뵙게 되어 죄송합니다.”그 사나이는 겸손하게 말했다.<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