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과학수사파일 제 18 회
2006-12-28
사고운전자는 누구인가?
중앙선을 침범해 맞은편 차량과 정면충돌한 차량, 완전히 불에 탄 차량, 뺑소니 용의차량,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형된 차량….
출근할 때마다 국과수 교통공학과 건물 앞에 휴지처럼 구겨진 심하게 손상된 차량들과 마주친다. 그 종류도 다양하여 대형, 중형, 소형의 승용차, 지프, 트럭, 택시, 버스 등 그야말로 폐차장을 방불케 한다.
일단 교통사고가 나면 사고현장에서 교통하고 처리반이 “가해차량은 어느 차량이고, 피해차량은 어느 차량인지”를 정밀하게 조사하고 판단한다. 그러나 그 판단이 어려울 때는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한다. 국과수에서는 1991년 교통공학과가 신설되어 교통사고를 교통공학적으로 분석 판단하여 억울한 피해자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내가 다루는 업무는 인명피해와 관련된 용의차량에서의 혈흔 또는 사람의 살점 등의 부착 여부를 검사하여 범행차량을 확인하는 일과 운전자가 누구인지를 판단해 주는 일이다.
대부분의 교통사고는 사망자 또는 부상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때마다 사고차량의 운전자는 과연 누구였는가를 판단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때 생존자들은 흔히 사망자가 운전을 했다고 모든 책임을 떠넘겨버리기 일쑤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제3의 목격자도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사고 운전자를 찾아내야 억울한 피해자가 없고 그 피해자는 정당한 보상을 받게 마련이다.
1985년 여름, 경기도 양평군 소재 유원지의 어느 카페에서 젊은이들이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그들 중 C군과 K군이 귀가하기 위해 승용차를 타고 운행하다가 ××리 소재 교회 앞 노상에서 돌연 반대 차선으로 들어가 마주 오던 승용차와 충돌하는 사고가 있었다. 결국 C군은 사망하고 K군은 상해를 입었다.
사망자 C군의 아버지는 사고 당시에 아들이 운전한 것이 아니라 함께 탔던 K군이 운전했다고 주장하며, 누가 운전했는지 가려줄 것을 관할 경찰서에 진정했다.
감정의뢰서에는 사건현장 및 혈흔채취 장소 등을 촬영한 사진, 사건현장, 약도, 시체검안서, 부상자 K군의 진단서, 사망자 C군의 인체도, 그리고 C군의 혈액형 A형, K군의 혈액형 B형으로 기재된 주민등록증 사본 등이 첨부되었다.
감정의뢰된 증거물은 운전석 시트에 묻은 혈흔, 운전석 천조각에 묻은 혈흔, 조수석 천장 비닐조각에 묻은 혈흔, 사망자 C군과 부상자 K군의 옷에 묻은 혈흔 등 세밀하게 증거를 채취하여 채취 장소와 혈흔형상을 찍은 사진 등이었다.
실험실에서는 이 증거물들을 대상으로 혈흔 예비시험, 본 시험, 인혈 증명시험을 거쳐 혈액형 검사를 실시했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감정 결과, 운전석 쪽에서 채취된 혈흔은 모두 B형으로 판정되었고, 조수석 쪽의 혈흔은 모두 A형으로 판정되었다.
그리고 사망자 C군의 의류에서 판정된 혈액형은 A형, 부상자 K군의 의류에서는 B형으로 판정된 것으로 보아 운전석에는 분명 B형의 혈액형을 가진 K군의 혈액형과 일치되었고, 조수석에는 C군의 혈액형인 A형과 일치하였다. 그렇다면 C군과 K군, 두 사람 중 누가 운전을 한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교통사고 조사요원들은 감정 결과를 토대로 사고현장 상황 등을 더욱 정밀하게 분석하였다.
그리고 사망자와 부상자의 상처 부위는 물론 사고 당시의 위치, 그리고 피를 흘린 정도, 사고 경위 등의 정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최종 운전자 확인에 한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았다.
경기도 김포시 장기동 소재 ○○슈퍼 앞 노상에서 3명이 동승한 승용차의 사고로 앞의 사건과 마찬가지로 운전자가 누구인지를 가려내야 했다.
자동차는 서울 방면에서 강화 방면으로 1차선을 타고 운행하다 중심을 잃고 2차선으로 넘어갔다. 이때 L씨가 운전하는 트럭의 좌측 문짝에 충격을 가하면서 전주를 들이받은 사고였다.
함께 탔던 S군은 사망하고 친구인 L군과 E군은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사고 시간은 새벽 4시 30분경이었고, 이들 동승자들은 모두 자신이 운전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조사요원은 피의차량의 운전자를 식별하기 위해 증거물을 채취해 국과수에 감정의뢰했다.
증거물은 운전대에 묻은 혈흔, 방향지시등 스위치에 묻은 혈흔, 조수석 문짝에서 채취한 혈흔, 그리고 동승자 3명의 혈액과 피해차량 운전자 혈액 등을 인근 병원에서 채취해 의뢰했다.
연구원들은 먼저 의뢰한 각각의 혈흔과 혈액 등에서 혈액형을 분석했다. 운전석 핸들과 방향지시등 스위치에 묻은 혈흔, 그리고 조수석 문짝의 혈흔은 모두 A형으로 판정되었고, 동승자 3명 중 사망자인 S군, 중상자 E군의 혈액형은 A형, Y군은 O형으로 판정되었다.
이 같은 감정 결과로는 누가 사고 당시 운전석에 앉아 있었는지 확인하기 어렵기에 운전자를 식별할 방법이 없었다.
실험실에서는 다시 이들 A형 혈흔 증거물과 A형 혈액형을 가진 S군과 E군의 혈액에서 DNA 분석을 실시했다.
실험실에서는 각각의 DNA를 분리, ‘중합효소 연쇄반응법’이라는 시험법을 적용, 분리한 DNA를 증폭시키고, 전기영동을 실시한 다음 염색에 의해 DNA 밴드 형태로 현출되는 것을 판독하여 여섯 종류의 DNA형을 분석했다.
감정 결과는 피의차량 운전석(운전대 및 방향지시등 스위치) 등 앞좌석에서의 혈흔과 A형 혈액형을 가진 두 사람 중 E군의 DNA형 여섯 종류가 모두 일치했다. 이 결과로 앞좌석 운전석의 혈흔은 모두 E군의 것으로 증명되었으며, 누가 운전을 했는지 용이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증거가 확보된 것이다.
육중한 전동차 뺑소니
1997년 4월 16일 밤 12시 10분경, 구로구 개봉 전철역 부근 철로에서 상체와 하체 부분이 절단된 시체가 발견되었다.
상체는 구로역 방향으로, 하체 부위는 인천역 방향으로 있었다. 역무원의 신고로 현장에 도착한 조사요원들은 현장상황을 면밀히 감식했고,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조사했다. 피해자는 77세의 할머니였다.
조사요원들은 사건 당일 밤 11시 8분경부터 다음 날 12시 10분경 사이의 약 한 시간 동안 개봉역을 통과한 전동차 5대를 대상으로 피해자를 치고 지나간 차량을 찾아내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객실 10량이 달린 여러 대의 육중한 전동차 중에서 어느 전동차가 사람을 치었는지 인체조직 또는 혈흔을 찾아야 했는데 조사요원들은 어디서부터 조사를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결국 국과수 연구원들은 현장 출동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5대의 전동차 운전자들은 한결같이 사람을 친 충격 또는 사람 위를 통과한 사실을 알 수 없었다고 했다.
5명의 연구원들은 현장 출동해 필요한 핀셋, 거즈 등 각종 기구와 재료, 루미놀 시약 등을 준비해 현장에 출동, 사고현장은 물론 멀리 두 곳에 분산되어 있는 전동자 기지차량을 오갔다.
그리고 5대의 전동차를 대상으로 육안 식별, 루미놀 시약의 분무 등의 예비시험 방법을 적용하여 증거 찾기에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다. 차체를 들어 올릴 수도 없어 용이하게 관찰할 수도 없는 전동차, 그리고 각 전동차마다 객실이 10량이나 되는 전동차를 한 대씩 앞쪽부터 뒤쪽으로, 혈흔 또는 인체조직을 발견하기 위한 검사에 돌입했다.
결국 5대의 전동차 중 두 번째로 운행한 전동차의 둘째, 셋째 바퀴 사이에서 미세한 혈흔과 인체조직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세 번째 운행한 디젤 기관차 뒷부분 브레이크 부위와 둘째 바퀴 사이에서 혈흔이 발견되었을 뿐 나머지 전동차에서는 혈흔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들 혈흔을 증거로 혈액형 및 DNA 분석을 실시한 결과 피해자의 혈액형과 DNA형이 모두 일치함을 알 수 있었다.
일반 사고 차량의 감정은 수없이 많았지만 사람을 치어 통과한 전동차를 감정한 사례는 거의 없었다. 이처럼 국과수 연구원들의 노고와 과학적 증거 앞에서는 어떤 사건도 피해갈 수 없다.
비록 육중한 전동차일지라도 사고차량을 찾는 데 불가능은 없다는 교훈을 남긴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