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성 풍속사 <제13화>

2007-05-03      
과유불급(過猶不及)한 비단장수의 음심(淫心)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란 말을 들어 보았거나, 남녀가 동석한 어느 자리에서 농담처럼 한번쯤은 입에 올렸을 것이다. 이 말은 글자그대로 일곱 살만 되면 남녀가 한자리에 같이하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유교의 가르침에서 비롯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남녀 간에는 교합의 욕정이 존재한다. 그래서 옛 성인들은 예법을 제정하여 남녀를 한 자리에 앉지 못하게 했으며, 남녀가 다니는 길도 달리했고, 사극에서 자주 보았듯이 여인들은 밤에 반드시 초를 휴대하고 등롱(燈籠:종이나 헝겊을 씌워 안에 촛불을 넣어서 달아 두기도 하고 들고 다니기도 하는 등)을 갖고 다녀야 했으며, 형제나 생질 간에도 거리를 두고 행동하게 했다.

유교의 근간아래 성립된 조선은 남녀칠세부동석, 칠거지악(七去之惡), 삼종지도(三從之道)라 하여 특히 여성의 예법을 단속했고, 안과 밖을 엄격히 구별하며 가정의 안을 밖에서 엿보지 못하게 하였으며 사대부 여인네들은 남에게 얼굴을 보이는 것을 심한 굴욕처럼 여겼다.

조선 광해군 때 어우당(於于堂) 유몽인(柳夢寅)이 지은 어우야담(於于野譚)에 수록된 설화로 어느 사내에게 얼굴을 보인 한 사대부가의 자부(子婦)에 얽힌 내용이 있어 소개한다.

조선중기 한 이름 있는 가문에서 자부를 보았는데 자태는 곱고 자색은 출중했다. 어느 날은 대문밖에 젊고 건장한 비단장수가 와서 종들이 비단을 흥정하고 있었는데, 자부가 중문에 우두커니 서서 비단 흥정하는 광경을 지켜보게 되었다. 종들과 흥정하던 비단장수는 우연찮게도 자부를 보게 되었고 그만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강한 음심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날 이후 비단장수는 밤낮으로 자부의 보지 못한 나신을 그리며 상사(相思)해 병이 났고, 몇날며칠을 고민한 끝에 계교를 꾸며 자부의 늙은 유
모에게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많은 비단을 선물하고 문지방이 닳도록 여러 날을 방문한 끝에 드디어 유모의 환심을 사게 된 비단장수는 유모에게 내심을 드러내며 이 집 자부를 상사해 병이 났음을 말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 말을 듣고 유모는 크게 놀라며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비단장수에게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만약에 내가 자넬 돕는다면 한 가지 꼭 들어줘야 할 조건이 있네.”

“그게 어떤 조건이든 다 들어줄 터이니 얼른 말해 보슈.” 비단장수가 재촉하며 말했다.

“내겐 나이 스물이 넘도록 아직 시집을 못간 딸자식이 하나 있는데 자네가 그 배필이 되어줄 수 있겠는가?”라고 넌지시 유모가 물었다.

비단장수는 의외의 조건에 한동안 고민하였으나 이 집 자부를 취하려는 마음에 유모의 딸과 혼인하겠다고 언약하게 되었다. 유모는 비단장수가 행여나 약속을 어길까 싶어 딸과 비단장수의 혼례를 서둘러 치르게 되었다. 유모의 딸은 얼굴은 곰보요, 입은 언청이여서 그 추함 때문에 어느 누구도 장가를 오려하지 않았다. 그런 유모의 딸과 혼례를 치르고 첫날밤을 보내며 비단장수는 이 상황에서 몇 번이고 도망치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자부에 대한 욕정으로 억누르며 유모의 딸을 품었다. 첫 닭이 울기가 무섭게 일어난 비단장수는 그날부터 유모에게 자부와 언제 맺어줄 것인지를 보채었다. 그럴 때마다 유모는 지금은 도련님(자부의 남편)께서 계시니 때가 아니다. 조금만 참고 기다려라하며 비단장수를 달랬다. 일 년이 흐르고 이 년이 다 되어가는 어느 날 드디어 비단장수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마침 도련님이 곧 있을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절에 공부하러 들어가 집을 비우게 되어 자부가 혼자 자게 되는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유모는 단 한번으로 끝내야 한다며 비단장수에게 다짐을 받고 또 받았다. 그때마다 비단장수는 빙긋이 웃으며 꼭 그러겠노라고 유모에게 다짐했다.

그러던 어느 밤 유모는 얼굴을 가릴만한 크고 둥근 비단 모자를 쓰고 술 취한 사람처럼 자부의 방에 들어갔다. 옷을 벗고 이불속으로 들어가 자부의 민감한 부분을 만지니 자부가 깜짝 놀라 일어났다.

“유모, 이 야심한 시각에 웬일이시오?”하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부가 물었다.

“허허허, 곱디고운 우리 아씨 살결을 못 잊어서 간만에 함께 자려고 왔죠, 엇!” 술 취한 흉내를 내며 횡설수설 유모가 말하자 자부는 안심하며 유모의 곁에 누웠다.

이불속에서 애무하듯 유모의 손길이 느껴질 때마다 자부의 옥문(玉門)은 촉촉한 샘물로 젖어들었고 몸을 피하면서도 흥분된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이때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유모는 소변이 마렵다며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방을 나가 밖에 숨어 있던 비단장수에게 모자를 씌우고 방으로 들여보냈다.

비단장수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자부를 껴안고 유모가 일러준 곳을 혀와 느릿한 손길로 애무하니 자부는 몹시 흥분하며 손길과 혀가 범하는 대로 몸을 맡기었고 엷은 신음을 간간이 쏟아냈다. 비단장수가 자신의 부풀어 오른 양경(陽莖)을 옥문으로 밀어 넣으니 자부는 몸을 가누지 못한 채 전혀 저항하지 못하고 그에 따랐고, 그 밤 비단장수는 자기가 생각해 왔던 대로 마음껏 음행했다. 이후로 비단장수는 매일 밤 자부의 방에 들어와 음행을 하게 되었는데, 자부 역시 비단장수를 거절하지 않고 함께 환애했다. 이러한 비단장수의 음행이 도를 넘어서자 보다 못한 유모가 말려도 보고 빌어도 보고 협박도 해 보았으나 비단장수는 들으려하지 않았다. 유모의 기우처럼 여러 날 계속된 자부와 비단장수의 음행은 여종들
사이에서 쉬쉬하며 퍼지게 되었고 주인어른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주인이 숨어서 살피니 소문대로 비단장수가 담을 넘어 들어와 자부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고, 다음날 주인은 종들에게 소도둑놈이 넘어 들어올 것 같다며 담 아래 큰 구덩이를 파게 한 다음 밤에 숨어서 지켰다. 한밤중이 되자 비단장수는 여느 때처럼 담을 넘어오다가 구덩이에 빠지게 되었다. 주인은 종들을 시켜 비단장수를 멍석에 말게 한 다음 때려죽여 새벽에 산에 매장했다. 그리고 이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유모와 딸을 마을 밖으로 유인해 역시 몰래 죽여 매장하니 자부는 물론이고 마을의 그 누구도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자부는 몇 달 후 절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남편과 잘 살았다.

이 자부는 몸단속을 잘못해, 얼굴을 외간 사내에게 보였으니 이런 일이 생긴 것이고, 이러하기에 부인들은 몸단속을 잘해야 하느니. 이 설화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아마도 이 설화는 사대부 여성들의 몸단속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며 사대부 시아버지의 뜻 깊은 배려를 나타내면서 은근히 사대부들의 넓은 아량을 자랑하는 듯하다. 아울러 이 설화는 지나치면 아니함만 못하다는 과유불급의 격언을 떠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