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성 풍속사 <제24화>
2007-07-20
그는 호방한 성품으로 학식이 깊고 우스갯소리에 능수능란했으며 문사(文詞)에도 뛰어났다. 그가 관서 지방을 떠도는 중에 자색이 출중하고 풍류를 알며 시를
잘 짓는 기생을 만나게 되어 한동안 그곳에 머물며 그 기생과 교류하였다.
그러던 어느 하루는 아침나절부터 선탄이 기생을 찾아가 함께 시를 주고받으며 놀게 되었다.
“스님, 오늘은 제가 먼저 운자(韻字)를 부르겠습니다.” 기생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껄껄껄, 그렇게 해 보게.” 선탄이 호방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을(乙), 일(一), 불(不)로 한수 지어보시죠.” 기생이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운을 정해주었다.
선탄이 잠시 허공을 응시하더니 이내 눈을 지그시 감고 시를 읊어 내려갔다.
각시님 아리따운 얼굴 진실로 으뜸이고 (閣氏顔色眞甲乙)
다정하고 어여쁜 교태 또한 제일이라 (多情矯態又第一)
만약 깊고도 은밀한 곳에서 그댈 만난다면 (若逢此女幽暗處)
아무리 단단한 간장인들 안 녹을 수 있겠는가 (鐵石肝腸安得不)
선탄이 유수같이 시를 읊조리니 중으로서는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 고백의 시임과 동시에 유혹의 시였다. 기생이 그 시를 듣고 뜻을 헤아려 배시시 웃으며,
“스님도 여인을 안을 수 있습니까?” 하고 넌지시 물었다.
이에 선탄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흔쾌히 대답했다.
“여인을 억지로 접하지는 않지만, 하지 않아서 안하는 것이지 할 수 없어서 못하는 것이 아니네, 옛날 석가모니의 제자 아난존자(阿難尊者)는 마등가(摩登伽)라는 여인과 정을 통했는데, 아난존자는 스님이 아니며 마등가는 여인이 아니란 말이겠는가?” 선탄이 막힘없이 대답했다. 그러자 기생이 눈초리를 살짝 올려 묘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러하오시면 스님께서도 음사(淫事)의 재미를 알고 계십니까?”
“낭자는 내가 그 재미를 모를 것이라 생각하는가? 우리 불가에는 ‘극락세계(極樂世界)’라는 것이 있어, 내가 낭자의 치마를 벗기고 낭자의 엉덩이를 받친 다음, 낭자의 다리를 양쪽으로 끼고 옥문(玉門)을 꿰뚫으면 극락의 재미가 그 속에 있으니, 낭자가 그때를 경험하게 되면 내가 참으로 안다고 여기게 될 것이네.” 선탄이 호언장담하며 말하자 기생은 입안에 고인 침을 자기도 모르게 주르르 흘렸으며 어느새 손은 사타구니 사이로 향했다.
선탄은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며 눈가의 주름을 만들고 있었다. 기생이 더 이상 춘심을 억제치 못하고 선탄에게 달려들며,
“스님, 빨리 그 대머리를 벗으셔요” 하고 독촉했다.
이에 달려드는 기생의 몸을 막으며 선탄이 말하길,
“낭자는 어찌 내 윗머리만 알고 아래에 불거진 머리는 모른단 말이오, 참으로 섭섭하오.”
기생이 말없이 애원의 눈빛으로 갈구하니, 선탄은 못이기는 척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낭자에게 내 아랫머리의 위력을 보여줘도 되겠소?” 선탄의 물음에 기생은 애절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자 선탄은 마치 독수리가 병아리를 채듯 기생을 껴안고 능숙하게 호합하니, 선탄의 그 놀랍고도 신묘한 테크닉에 기생의 숨소리는 가빠졌고 엉덩이는 춤을 추듯 흔들렸으며 불타는 몸은 스르르 녹아내렸다.
“스스스, 스님! 스님께옵서는 절 속였습니다. 스, 스님께서는 사,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한다고 하더니, 이렇게 나를 거의 죽게 만드시니 어찌된 영문이십니까?”
기생이 숨이 넘어갈듯 한 목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이에 선탄이 거친 숨을 한번 크게 몰아쉬며,
“불법에는 인생을 제도하는 신통한 방법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는 것이네!” 선탄이 만족한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기생은 지금껏 한 번도 경험치 못한 음희(淫戱)의 쾌락에 허우적이며 극락을 수없이 드나들었고 선탄은 중생이 즐거워함에 자신도 도취되어 힘이 더더욱 샘솟아 더 깊고 더 요란하게 호합했다.
한참동안 삐죽 벌어진 문틈으로 두 사람의 음사를 지켜보며 연신 마른침을 삼키던 한 사내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스님, 스님께서는 지금 무슨 짓을 하고 계시는 줄 아십니까?” 사내가 부러움 섞인 어조로 소리치며 물었다. 선탄과 기생은 사내의 등장에도 호합을 그치지 아니하였고, 기생은 황홀경에 빠져 사내의 등장을 알지도 못했다.
“음, 나는 말일세, 지금 아주 중요한 임무를 수행중이라네.”
선탄이 사내를 쳐다보며 빙그레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스님의 중한 임무가 무엇입니까?” 사내가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나라를 위해 현량(어진 사람, 인재)을 만드는 것이네!” 선탄이 대답하자 사내가 배꼽을 잡고 바닥을 뒹굴며 웃었다.
이 해학설화는 조선중기의 문인 성여학의 속어면순(續禦眠楯)에 실린 설화로 ‘30여 년간 면벽을 통해 득도하였다는 지족선사가 황진이의 유혹에 넘어가 파계하여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설화와 함께 종교와 성생활을 결부시킨 대표적인 설화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색을 탐하여 패가망신하거나 오랜 기간 각고의 노력으로 이룬 명예를 하루아침에 잃은 사내들의 얘기는 무수히 많다. 이런 설화들 중에 종교와 결부된 얘기가 상당수를 차지한다는 것은 아마도 사내의 본능 즉, 여색 앞에서는 한없이 무기력해지는 사내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자함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