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로 살아보기
디지털 세상에서 길 잃은 사람들을 위한 지도
2011-09-20 김선영 기자
“나는 어쩌다 왜 이런 중독자가 되었을까?”
한 달간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다 끊고 살아보겠다는, 저자의 ‘무모한 도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 책 ‘아날로그로 살아보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40일간의 디지털 해독 프로젝트를 감행하는 동안의 모험과 좌충우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무엇이 힘들고 무엇은 더 홀가분했는지,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고 또 저자 자신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시간관념과 삶의 질은 좋아졌는지 아니면 나빠졌는지…….
생생하고도 위트 넘치는 하루하루를 트위터 생중계처럼 읽다 보면, 오프라인에서의 고립을 자처한다 할 때 나의 24시간은 어떠할지가 떠오르면서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님을 공감하게 될 것이다.
스마트한 삶 vs 아날로그적 삶 ‘균형’이 중요하다
생각보다 상황은 심각했다. 컴퓨터를 켜지 않고 버티는 동안의 조바심과 불안은 차치하고라도, 전화를 걸 수도(기억하고 있는 번호가 하나뿐이다), 은행 업무를 수월하게 처리할 수도(모든 게 전산화 돼버렸다) 없고, 그런데 하필이면 소득세 정산도 끝내야 하고(순전히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직업상 업무 때문에 10년 만에 수시로 우체국을 들락거리며 편지와 엽서를 써대야 한다. 취재원에게 접근하기까지의 난관은 말할 것도 없고,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구글 검색 대신 신문과 책, 도서관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그것에 들이는 시간과 정확도를 생각하면 화병이 날 지경이다)…….
디지털 환경에 지나치게 길들여진 탓에 기억력과 계산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더 이상 단순 정보를 기억하려 하지도, 망각을 두려워하지도 않게 된 우리의 현재를, 저자는 철저히 몸으로 체험한다. 또한 ‘디지털 네이티브’라는 신인류의 출현과 스마트폰이 바꾸어놓은 ‘친구’라는 개념, 이제는 애매모호해진 ‘사생활’의 경계 등, 빛의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거대한 전환점을 직시하면서 그 다양한 측면들을 하나하나 성찰해보기 시작한다.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뇌를 바꾸고 생각하는 능력을 퇴보하게 만든다는 연구들, 24시간 인터넷에 접속돼 있지 않으면 불안을 느끼는 인터넷 중독 현상 역시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는 뉴스 등은 이제 드문 얘기가 아니다. 실험 초기에 일종의 금단 증상을 겪은 저자 또한 그 심각성을 절감하며 인터넷 중독 응급센터를 취재하는데, 이미 2008년에 응급센터를 만들어 보다 광범위한 인터넷사용 의존증 치료를 진행해온 독일의 정책도 놀랍지만, 최근 몇 년 새 문제가 급증한 중국의 경우 극단적인 형태로 인터넷 중독을 치료하는 캠프가 수백 곳이라는 데서, 인터넷 중독은 이제 인류가 풀어야 할 큰 숙제임을 감지하게 된다.
저자는 더 나아가 ‘인간은 왜 그리 검색에 집착하고 인터넷에 열광하는지’를 놓고, 심리학자, 뇌과학자, 신경과학자 등을 취재하고 자료를 조사하면서 해결책을 고민한다.
단지 개인적·단편적 감상에 젖은 체험기에 그치지 않고, 저자가 통신 및 커뮤니케이션 관련 분야 전문가들과 인터뷰한 내용이 짜임새 있게 녹아 있는 점은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다. 각종 통계와 실험을 통해 얻은 전문적인 정보 덕분에, 독자는 이 한 권만으로도 현재 디지털 환경이 어디쯤에 이르렀고 그 장점과 폐해는 어떤 수준인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김선영 기자] ahae@dailypot.co.kr
[책 속에서]
“특히 페이스북 같은 것은 내 인간관계를 완전히 바꾸어놓았어. (…) 그저 얼굴이나 아는 정도의 관계거나 전혀 낯선 사람들이나 서로의 관계를 별반 차이 없게 만들어버렸지. 페이스북을 통해 옛날 옛적에 알았던 동창생하고도 마치 십 수 년 동안 친하게 지내온 것처럼 느끼게 된다니까. 그 전엔 연락 한 통 없이 살아왔지만 말이야. 현재 기분이나 근황은 물론 휴가 때 찍은 사진이나 취미생활까지 그가 공개하는 모든 정보를 공유하게 돼. 어떤 면에서는 좋지. 하지만 어찌 보면 자기과시이고 무의미해. 한 통의 개인적인 안부전화보다 물론 성의도 없고 말이야.”
-본문 32쪽
“모두가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맹목적으로 열광합니다. 단순히 찾는 것에 중독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중독증상을 신중하게 잘 살피고 스스로 조정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이 제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크 펭크셉 교수, 워싱턴 대학 신경과학자의 말)
이 도전을 시작한 초기에 내가 왜 그렇게 우울하고 무기력하고 무가치하게 느껴졌는지 이제야 분명히 알 것 같았다. 내 머릿속에서 규칙적으로 분비되던 도파민 작용이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리라. 매일 아침 컴퓨터 앞에 앉아 30분 이상을 의욕과 스트레스를 번갈아 느끼면서 십여 개의 인터넷 브라우저를 동시에 열어젖혔던 나였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본문 17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