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알아야할 모든 것, ‘생각의 역사1-불에서 프로이트까지’

피터 왓슨의 손끝에서 태어난 ‘역사’

2010-09-17      기자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의 아홉 번째 타이틀로 펴내는 ‘생각의 역사1-불에서 프로이트까지’는 출판사 들녘이 교양시리즈로 고등학생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인류 지성사에 관심을 가진 일반 대중이 읽을 수 있는 인문교양서이다. 그러나 이 책은 서술 방식과 내용, 그리고 양적인 면에서 기존의 인문교양서와 맥을 달리한다. 독특한 견해로 역사를 관통한다는 점, 자칫 천편일률적이 될 법한 인류의 지성사를 저자의 향기로 버무리되 이를 흥미롭고 정교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7000매에 가까운 방대한 양을 통해 철학, 예술, 상식, 과학, 종교, 신념, 세계관 등을 아우르고 있어 차이점을 나타낸다. 문자 그대로 ‘저자의 향기가 투영된 거의 모든 것의 역사’라 할 만하다.

저자의 말을 빌려 이 책은 “왕과 황제, 왕조, 장군들이 빠진 역사, 군사 원정, 제국 건설, 정복과 평화조약이 누락된 역사”다. 그래서 역사를 보는 시각도 다르다. “시간을 기원전과 기원후로 구분하는 것은 누가 언제부터 생각한 것인가? 플러스(+)와 마이너스(-) 기호는 언제 어디서 수학에 도입되었는가? 현대에는 자살 테러가 많이 일어나는데, 낙원에 가는 영광을 얻기 위해 어떤 행위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또 낙원이라는 묘한 관념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등 다양하다.


플라톤적 관심을 아리스토텔레스 적으로 이해

플라톤이 정신을 물질보다 우월하다고 본 이후부터 생각의 역사는 늘 일반화로 빠져들었다. 자아나 지식, 존재의 본질, 역사, 그리고 종교나 신, 삶과 사회에 대한 질문은 수백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기본적으로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지성사는 여전히 정신을 논의의 중심에 둔 채 수박겉핥기식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왓슨은 바로 이 지점에 분석의 칼날을 들이댄다. 즉 인간의 정신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인류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발전을 거듭해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는 생각과 실험의 상호작용을 통해 인류의 역사가 진보되었다고 간주한다. 이렇듯 ‘생각의 역사1’은 한 마디로 “플라톤적 관심에서 출발한 서양의 지적 전통을 아리스토텔레스 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왓슨은 자신의 담론을 “영혼, 유럽, 실험”의 세 가지 관념으로 못 박으면서 일반대중을 위한 지성사를 개괄한다. 추상적 사고의 초기 징후-조상 인류가 만든 석기로부터 논의를 시작해 3만 년 전에 만개한 예술, 뒤이은 농업혁명을 조망하고, 그런 다음 고전기 그리스를 역사상 전무후무한 생각의 배양기라고 평가한다. 이 때문에 그는 ‘유럽’을 세 가지 주요 관념의 하나로 포함시킨다. 왓슨은 또 이슬람, 인도, 중국의 중요한 지적 영향을 다루면서도 사고 행위가 일어난 곳이 유럽이라고 말한다. 이 같은 유럽 중심주의는 학술계의 격렬한 비난을 받고 있지만 왓슨은 서양 사상의 주요 단계들을 고찰하면서 굳이 그 흔적을 감추고자 하지 않는다.


자연주의적 입장에서 쓴 포괄적이고 독특한 역사서

왓슨은 이 책에서 언어의 탄생에서 무의식의 발견까지, 나아가 공장의 관념과 아메리카의 발명, 19세기 유물론에서 논박된 영혼의 관념, 모호한 자아의 개념에 이르기까지 정신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주제들을 섭렵한다. 또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과학혁명, 계몽주의 등 객관적이고 물질적인 세계를 명료하게 서술하는 데 역점을 두면서 자연철학자로서의 입장을 견지한다.

그는 인간의 생각이 자체의 내적 동력만이 아니라 기후 변화나 신종 질병의 출현과 같은 자연환경의 변화에 대한 대응으로도 발전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처럼 자연주의적 입장을 취한 덕분에 왓슨은 생각의 역사에서 흔히 등한시되면서도 중대한 몇 가지 전환점을 찾아낸다. 자연주의 철학은 대개 인간이 이성을 통해 진보한다는 계몽주의적 믿음과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왓슨은 토머스 홉스나 르네 데카르트 같은 인물보다 초기 계몽주의 형성에 더 큰 역할을 했던 스피노자에 주목한다. 그리고 “인간은 이성만이 아니라 본능으로도 살아간다. 고양이가 사자의 자연법에 제약되어 살 수 없듯이 인간도 계몽적 정신의 명령에만 묶여 살 수는 없다”고 한 스피노자의 말을 인용한다. “플라톤적 관념인 ‘내적 자아’의 오류 가능성을 직시하고, 우리의 ‘내적’ 본성과 우리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 동물로서의 역할과 위치를 보는 편이 더 낫다”는 저자의 결론은 “인간 세계를 바라보기 위한 좋은 창문은 수도원보다 동물원이다”고 한 영국 철학자 존 그레이의 말과 더불어 우리에게 다른 방향에서 인류 지성사를 개괄할 수 있는 생각의 단초를 제공해준다.

[박주리 기자] park4721@dailypot.co.kr


저자- 피터 왓슨 Peter Watson
저널리스트 출신 문화사가로 Ideas: A History from Fire to Freud와 “모던 마인드: 20세기 지성사”를 비롯해 사상사와 예술사를 깊이 있게 소개한 책 13종을 썼다. 1943년 영국 출생. 더럼대학교와 런던대학교, 로마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좌파 시사 주간지 「뉴 소사이어티」부편집장을 지냈고, 「선데이 타임스」탐사보도 팀에서 4년간 일했다. 「타임스」뉴욕 특파원을 지냈고, 「뉴욕 타임스」, 「옵서버」, 「펀치」, 「스펙테이터」등 유명 신문·잡지 프리랜서로 활동했으며, 오랫동안 예술 관련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1997년 6월 이후 런던과 파리를 오가며 케임브리지 대학교 맥도날드 고고학 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옮긴이- 남경태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역사와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 분야의 책들을 쓰고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다. 쓴 책으로는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역사’ ‘개념어 사전’ ‘종횡무진 한국사’ ‘종횡무진 서양사’ ‘종횡무진 동양사’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반 룬의 예술사’ ‘비잔티움 연대기’ ‘세상을 바꾼 문자, 알파벳’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