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한권의 책이 인생을 바꾼다1 | 김영진 작가의 ‘조선의 암행어사’
공정한 사회를 위한 지팡이 역할 ‘충실’
2010-09-17 이범희 기자
홍 서방은 발 소리를 죽여가며 내실을 지나 후원의 별당으로 갔다. 그리고 방 안 동정을 살폈더니 별당을 지키는 촛불만 깜박거릴 뿐 방 안에서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쥐죽은 듯이 고요한 가운데 가을 벌레 소리만 한가롭게 들려 올 뿐이었다.
‘내가 잘 못 본 것이 아닐까?’
홍 서방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어제 저녁 때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보았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담장을 넘어 달아나는 검은 장삼에 송락을 쓰고 지팡이까지 짚은 중놈을 본 것이다. 이 감사의 부인이 설마하니 그런 짓을 어떻게 할 수 있으랴 하는 생각에서 시도한 행동이었지만 억지로 만들어 내려는 마음에서 시도한 행동은 결코 아니었다. 때문에 확실한 물증을 잡기 위해 잠복을 했다. 하지만 허탕이었다. 홍 서방은 입맛을 쩍쩍 다시며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객실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 순간 “쿵-”하는 소리가 갑자기 밤의 적막을 깼다. 분명 담을 넘는 소리였다. 홍 서방의 신경은 반사적으로 곤두섰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윽고 중놈이 댓돌 앞에 버티고 서서 계집을 부르는 소리가 났다. “여보!” “흥~” 방 안에서 계집의 신음하는 것같은 소리가 들리더니 방의 문이 조용히 열렸다.
“찬서리를 맞으며 오신 낭군을 안아서 모시지 않고 그대로 누워서 방문만 열어?”
놈이 흉직한 웃음을 섞어 가면서 계집에게 말했다.
“픽, 늦게 왔으면 잠자코 엎드려서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용서하시오’하고 빌 것이지 도리어 큰소리야” 하고 계집도 역시 지지 않고 맞장구를 쳤다.
“안아 드리기 싫으면 그만 둬라”하고 내뱉은 중놈이 그냥 발길을 돌렸다. “여보!”
그제서야 후다닥 일어나는 소리가 나고 마루를 밟는 소리와 함께 계집이 맨발로 뛰어 내려오더니 한아름이 넘는 중놈의 몸을 껴안았다.
“호호, 왜 내가 싫어졌수?”
중놈은 입에서 게거품을 흘리며 계집을 얼싸안았다. 그리고는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어서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고 잠시 후 쿠드등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을 보니 기둥질을 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계집의 간사스런 웃음소리와 중놈의 음흉한 웃음소리가 범벅이 된 채 한동안 계속되다가 이윽고 갑자기 잠잠해였다.
‘에이, 고약한~!’
홍 서방은 상투 끝까지 치미는 분을 억지로 참으며 입 속으로 되씹었다. 팔다리가 떨리고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그러나 섣불리 나설 수도 없고 하여 그냥 참고만 있었다. 주먹을 불끈쥐고 뛰어들어가 두 연놈을 당장이라도 때려 죽이고만 싶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더 더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은 이 감사의 참변을 막는 것이었다. 홍 서방은 이 대감이 평양 감사로 도임하면서 집안의 대소사를 일임시킨 인물이다. 그는 이 대감을 찾아가 자신이 하룻밤이 이 대감 역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이 대감도 홍 서방을 믿기에 그렇게 하라했다.
동헌에 있는 이 대감의 방에 혼자 드러눕게 된 홍서방은 초조함과 긴장감으로 인해 애를 태우며 자객 박성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잘 되면 이 대감의 생명을 건지고 이 감사댁을 건지는 일이 되지만 만일 일이 잘못되면 누구보다도 자기의 목이 먼저 떨어져 나갈 판이었기에 그의 가슴은 심하게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때 발걸음 소리가 났다. 시피런 칼날이 먼저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이었다.
“오, 박성이 오느냐? 나 하나 때문에 6백리 길이나 걸어왔구나 더욱이 국선 도사까지 애 쓰는 것을 생각하면 죄송스럽기까지 하구나. 허허”
“그래 우리 마누라도 편안하고?하하하” “ 좌우간 나 하나만 죽이면 너는 돈이 생기고, 국선과 내 마누라는 맘놓고 잘 살 것이 아니냐? 그래서 내가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하하 어리석은 놈!” “왜 내 목을 못 베느냐” “예끼, 이 어리석은 놈아!”
그렇게 되자 자객 박성은 그저 오금이 떨어지지 않고 두 다리만 덜덜 떨릴 뿐이었다. 천하의 자객 박성이었지만 뜻하지 않았던 호령에 혼이 빠지고 말았던 것. 이 대감 아닌 홍 서방은 자객 앞에 나가 그를 또 다시 호통쳤다 박성은 뒤도 안 보고 도망쳤다.
그리하여 이 감사 부인의 추행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홍서방과 자객 두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어느 집안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감히 밝히지 못하는 것이 매우 유감스럽다. 자객은 이제 무인 산천으로 귀양을 가지 않았는가. 그렇게 되어 이 감사 부인의 추행은 영원한 비밀로써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당사자인 부인도 역시 그 비밀을 누설하지 않았으니까.
[이범희 기자] skycros@dailypot.co.kr
과거 시험은 국가정책 경연장
고려나 조선 시대에 관리가 될 수 있는 주된 방법은 과거시험이었다. 특히 조선 시대에는 과거를 통해 관직에 올라야 그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일반 행정 업무와 법을 심의하고 만드는 일을 맡는 관리를 구분해 뽑지 않았으므로, 과거는 오늘날 공무원 시험과 국회의원을 뽑는 일을 겸했다고 할 수 있다. 과거 중에서도 가장 중시되었던 문관을 뽑는 시험은 크게 소과와 문과의 두 단계로 구분된다. 소과는 서울이나 각 도에서 시험을 봐서 합격자를 뽑은 다음, 이들을 서울에 모아서 다시 시험을 치러 최종 합격자를 결정했다. 관리를 뽑는 본 시험에 해당하는 문과는 초시, 복시 그리고 왕의 앞에서 치르는 전시의 세 단게를 거쳤다. 과거 응시자들은 시험 답안을 통해 자신의 글솜씨뿐 아니라,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과 앞으로 관리가 되면 어떠한 방향으로 행정 업무와 정치를 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내는 셈이었다.
- 김한종의 ‘우리문화, 우리 역사’에서 인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