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천사’의 작가 노의웅 화백2, ‘그리운 우리 서방...’

- 남구 양과동 노의웅 미술관 오픈, 하루 10시간 창작열 - 수춘 마을 연꽃방죽 걸으면 생각나는 그리운 고향 땅 - ‘도시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되는 잔혹한 자본주의

2020-08-10     강경구 기자

[일요서울ㅣ전남 강경구 기자] 오늘은 지난 첫번째 인터뷰인 ‘구름천사’의 작가 노의웅 화백, 세상에 주는 위로1 이후 두번째 내용을 정리한 글이다.

오랜 작품활동으로 경험이 많으신 노의웅 화백과 20여년전에 만난 이후 첫 만남이라 많은 것을 기대했지만 뜻밖에도 도시개발이 가져다 준 아픈 이별과 상처가 대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많이 아쉬웠다. 하지만 순간 순간 들려주시는 이야기들은 시간가는줄 모를 정도로 재미난 이야기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지금은 사라져버린 경양방죽에서 겨울 늦도록 썰매를 타다가 얼음이 깨져 세상을 이별할 뻔 했던 이야기와 지금은 사라져버린 말바우와 말무덤 등 광주 오래전 이야기들까지... 아무튼 별도의 시간을 마련해 그의 작품세계와 그림들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하겠지만 예상밖의 그림들도 전시되고 있어 한번 더 인터뷰를 간청해야할 것 같다.   

노 화백과 나누는 그리운 고향 이야기

그의 탯자리의 옛 지명은 광산군 서방면이다. 언젠가 그는 그곳과 가까운 곳에 미술관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조그마한 미술관 하나 가지는 것이 꿈이라며... 태봉산과 말바우 시장... 그리고 경양방죽과 서방천으로 이어지던 실개천이 역력한 고향과 가까운 곳에 마음을 둔다 하였지만... 야속한 것은 ‘도시개발’이라는 미명하에 가차 없이 진행돼버린 재개발과 재건축이었다.

어쩌면 노 화백에게 있어 도시개발은 ‘잔인’ 혹은 ‘잔혹’하다고 해야겠다.

논과 밭, 산으로 둘러 쌓인 그의 유년 속 서방 일대... 광주의 여의주라 불리던 52.5m 자그마한 3천 평 넓이의 아담하고 멋진 태봉산과 1440년 조선 세종대왕 때 만들어진 4만 6천 평의 면적과 수심 10m 깊이의 경양방죽, 그리고 호수를 가로지르는 2~3백년 된 커다란 크기의 아름드리 왕버들나무, 귀목나무, 수양버들나무, 팽나무들이 멋지게 도열해 있고, 배를 타고 호수를 유람하며 오가던 시민들의 쉼터가 일순간에 사라진 1967년경에도 노 화백은 그 곳에서 학교를 오고가며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도시개발’의 잔인함을 목도해야 했다.

그 유년의 ‘도시개발’이라는 망령은 50년이 지난 후, 칠십 평생을 살았던 노 화백의 오랜 터전마져, 견고한 콘크리트로 입혀진 아파트 숲으로 만들어버렸다.

문순태 작가는 절친이었던 이성부 선생이 작고하기 3개월 전에 계간문예에 기고했던 글에다 ‘경양방죽 팽나무 할머니 주막에서... 태봉산에 올라 시와 인생을 논했다’는 한 줄의 글귀로 광주의 근대를 소환했다. 수려하고 오묘한 필력은 단 한 줄로도 아련한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오늘 노 화백은 직접 그린 두 편의 정성스런 그림을 보여주었다. 붓 한 올 한 올이 덧입혀질 때마다 서방을 오가던 절절한 유년이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듯 했다. 그의 그림 속에는 노 화백이 살았던 유년의 집과 이웃들... 그리고 도열한 수백년된 팽나무들과 경양방죽, 태봉산과 서방천... 말바우와 말무덤까지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오래된 길과 추억과 사랑과 그리움들까지도 절절하게 각인시켜버리는 두 장의 그림 속에는 유년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조각되어 있었다.

새로운 제2의 고향, ‘양과동’ 남다른 감동의 시작...

남구 양과동에 아주 특별하게 만들어진 노 화백의 아지트인 '노의웅 미술관'은 비교적 넓은 공간에 지어진 미술관과 자택, 그리고 수장고와 작업실, 라운지까지 3개동으로 개관되어 두 달에 한 번씩 교체되는 그림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그가 내려주는 은은한 커피 향... 구름천사가 보내주는 특별한 꽃의 의미들... 곳곳에 베여있는 숱한 그리움까지... 라운지를 지나 미술관에 들어서자 정말 '구름천사'들이 일상에 지친 힘든 영혼의 마음까지 환하게 다독여준다.

배우처럼 날큼한 콧날과 짙은 눈 섶이 그대로이신 듯 노 화백과 처음 만났던 20년 전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호남대학교 예술대학장 시절 연구실에서 바라보던 항상 미소를 머금으셨던 교수님...

새롭지만 낯설지 않은 그의 미술관에서 작품 하나하나에 새겨진 숱한 고민과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꺼내 놓으실 줄 알았지만... 뜻밖에 '도시개발’이 주는 ‘폭력’과 ‘야만’이 안겨준 깊은 상처가 주제가 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복잡하고 깊고 깊은 세상을 화폭에 담아놓으시는 노 화백의 붓 끝에 드리워진 세상에 잠시 시선을 멈추고 한참동안 여물지 못한 나를 확인하고 파르르 눈을 감았다. 그런 나를 줄곧 집에까지 따라온 천사들이 나에게 하염없이 말을 건넸다. 바스락거리며... 무더운 여름을 추억 속에 잠기게 하는 매력덩어리 구름천사들...

구름천사, 꽃천사, 사랑천사...

아... 정말 오랜 시간 우리가 만나지 못했구나. 시나브로 어두워지는 창밖에서는 우두둑 또다시 빗방울이 시작되고 있었다.

20년 전 그의 힘과 에너지는 분명 나고 자란 고향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그토록 사랑했던 정든 고향 땅을 떠나와 있다. 새로 시작하는 낯선 양과동에서 그래도 거침없이 붓을 드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아직 세상에 사랑해야 할 많은 일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루 10시간씩 작품 활동을 소화하기 위해 부지런히 마을을 걷는다고도 했다.

노 화백은 어느날, 오래도록 함께 살았던 고향사람들과의 헤어짐이 아쉽고 궁금하여 수소문 끝에 찾아간 적이 있었다. 도시와 가까운 요양원에서 고령인 고향 사람들은 노 화백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돌아가고 싶다고...’‘자신은 곧 저 세상으로 갈 것이니... 죽으면 땅에 묻어주고 아파트를 건축하면 보상비 같은 것은 한 푼도 받지 않아도 된다고...’

그 오래된 인연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날이면, 쓴 약을 삼키듯 괴로웠다.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먼 길을 가버린 사람들...

노 화백의 그림 속에 투영된 아픔은 아픔이 아니다. 아픔을 곱씹어 승화시켜버린 한편의 노래들이다. 뵐 때마다 보여주시는 놀라울 정도의 겸손과 아량은 항상 사람들이 찾아와 머물게 하는 마력까지 가지고 있다.

그에게서 들려나오는 작은 소리들은 곧장 나에게로 와 꽃이 된다. 세상은 고통과 불화, 불통으로 고통 받고 있다. 환하게 웃고 있는 노의웅 화백의 ‘구름천사’가 필요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