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3천억 사재출연의 비밀

2012년 ‘대통령 장학생’ 미리 키운다

2008-04-22     김승현 기자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의 서울 입성이 성공리에 이뤄졌다. 대선에 출마했던 정동영 전 장관을 상대로 한 승리라 기쁨은 더욱 크다.

이제 남은 수순은 한나라당에서 확실히 자리매김하는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 측과 박근혜 전 대표 진영이 사생결단의 대결을 벌이는 상황에서 어떻게 자신의 우군을 만들어가느냐에 따라 올 여름으로 예정된 당권과 차기 대권의 윤곽이 바뀌게 된다.

정 의원은 “6선 의원으로 당 지도부를 뽑는데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당권 도전 의사를 분명히 했다. 박 전 대표에 맞서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신호탄을 올렸다는 분석이다. 정 의원의 홈페이지에선 “꿈은 계속 됩니다”란 문구가 방문객들을 맞고 있다.

정몽준 의원과 박근혜 전 대표는 장충초등학교 동창이다.

부친인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상징하는 대표적 인물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두 사람의 인연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2002년 초 박 전 대표는 당시 한나라당을 탈당,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하며 대선을 향해 독자 행보를 시작했다.

당시 박 전 대표 측은 정 의원의 협조와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물밑에서 움직였지만 원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같은 해, 연말이 되자 상황은 돌변했다. 월드컵 4강의 바람을 몰아 정 의원은 유력 대선주자로 떠올랐고 ‘국민통합21’을 만들었다.

이에 반해 박 전 대표는 다시 한나라당으로 복당해 당시 이회창 후보의 선거 운동을 도왔다. 서로 손을 잡을 기회가 없지 않았지만 중요한 시기마다 서로에게 등을 돌렸던 것이다.


박근혜와 엇갈린 행보

이런 악연은 5년 후인 2007년에도 재현됐다.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 대선주자를 뽑는 경선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치열한 혈전을 치렀지만 끝내 고개를 숙였다.

무소속이었던 정 의원이 한나라당에 입당하며 이 대통령 지지를 선언한 것은 대선을 불과 20여일 앞둔 지난해 12월 초였다. BBK 의혹 등으로 지지율이 주춤하던 상황이어서 정 의원의 지지는 천군만마와 같은 역할을 했다.

친박 진영은 정 의원 입당 때부터 “MB측의 박근혜 죽이기”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이런 우려는 정 의원의 당권 도전 선언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친박진영의 좌장 김무성 의원도 “입당한 지 얼마 안 된 정 의원이 당을 잘 이끌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때가 된 것 같기는 하다”고 평가했다.


청와대와 모종의 교감설

당 안팎에선 정 의원의 당권 도전이 그 자체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오랫동안 아웃사이더에 머물렀던 정 의원이 한나라당 전대에 출마한다는 것만으로도 차기 대권 경쟁 구도를 요동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친박 진영 핵심 인사는 “이미 정 의원의 입당 때부터 이 대통령과 모종의 합의를 끝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며 “이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재오 의원이 낙선했기 때문에 박 전 대표의 대항마로 내세울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당이 정 의원에게 최고위원 자리를 마련해 주고 청와대가 외교특사로 미국에 보낸 것도 정 의원의 가치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차기 대권을 향한 정 의원의 큰 꿈은 총선 전부터 회자됐다.

한나라당 입당과 이 대통령 지지선언, 서울 동작을 출마가 모두 이 같은 프로젝트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것.

강재섭 대표의 직접 설득을 통해 전략공천 작업이 이뤄졌지만 정 의원으로서도 울산 지역구를 떠난 대가는 톡톡히 챙겼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MB·박근혜 ‘벤치마킹’

정 의원의 대권 청사진은 지난 3월 싱크탱크에 150억원을 출연키로 한 데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정 의원은 현대중공업으로부터 받은 지난해 배당금 615억원 중 150억원을 새로 만든 공익법인인 아산정책연구원에 출연했다.

정 의원의 정치적 후원자인 이홍구 전 총리와 한승주 전 고려대총장서리가 각각 발기인 대표와 원장을 맡았다.

2월 열린 연구원 개원식에도 한승수 국무총리를 비롯 이경숙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원장 등 신여권의 핵심 인사가 대거 몰렸다.

아산정책연구원은 이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이었던 국제정책연구원(GSI)을 벤치마킹한 싱크탱크로 지목됐다.

정 의원은 이에 대해 “양극화·환경오염·국제문제 해소에 집중할 계획”이라며 “한반도 문제와 외교도 다룰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보따리를 연 정 의원의 행보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최근 사재 1천억원을 출연해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장학재단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 의원 측 관계자는 “본인이 1천억원 정도를 출연하고 뜻있는 지인들이 참여해 3천억원 규모의 장학재단을 설립하는 것으로 안다”며 “조만간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의원의 장학재단 설립은 이미지 쇄신 의도와 함께 박 전 대표의 ‘정수장학회’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3조원대의 자산을 가진 재력가인만큼 앞으로의 추가 사재 출연 가능성도 없지 않다.

현대중공업 고문과 축구협회장 자리도 결단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장기집권 해온 축구협회장은 내년 1월 물러나기로 이미 확정된 상황이다.


‘자기사람 넓히기’ 최대과제

하지만 정 의원의 본질적인 문제는 오히려 당 내부에 있다는 평가다.

‘전국적 대중성’에 반해 믿을 수 있는 당내 기반이 지나치게 약하다. 박 전 대표가 전대에 나올 경우 초반부터 기선을 뺏길 우려도 없지 않다.

현재로선 오세훈 서울시장이나 김문수 경기지사보다 떨어진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나라당 핵심 당직자는 “박 전 대표의 당권 도전 여부가 관건이지만 친박 탈당파의 복당 문제가 걸려 있어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며 “정 의원으로선 1위 보다는 자기 사람들을 만들어 MJ계를 구성하는 게 일차적인 목표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입성과 당권 도전을 통해 대망을 이루려는 정 의원의 행보가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초등학교 동창인 박 전 대표의 존재가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몽준 인맥난

서울 입성에 성공한 정몽준 의원이지만 한나라당 내 인맥은 여전히 약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 등이 정 의원에게 우호적인 것으로 전해지지만, 이 역시 MB측의 전략적 판단이 크게 깔려 있다. 정 의원의 한나라당 입당을 주선했던 박희태 의원도 정 의원과 친한 인사로 거론된다.

총선을 통해 원내에 진출한 정 의원 쪽 인사도 많지는 않다. 서울 노원에서 당선된 홍정욱 당선자가 그나마 꼽을 수 있는 인물이다.

정 의원은 홍 당선자 부인의 이모부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와 한승주 전 고려대 총장서리는 정 의원의 정치적 후견인으로 오랫동안 버팀목 역할을 했다.

지난 2002년 대권 도전 과정에서 함께 했던 정치인들이 정 의원의 스타일을 비판한 것도 극복해야할 요소로 지적된다.

정 의원의 인맥은 정치권보다 밖에서 더 큰 빛을 발한다. 총선에서 지원유세를 함께 했던 김정남 허정무 허재 감독, 안정환 안현수 선수 등 스포츠 스타들과 김흥국씨, 조카며느리 노현정씨 부부 등 방송계에 발이 넓다.

정 의원은 최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영화에서도 대개 좋은 사람이 처음에는 밀리다가 나중에 이긴다” 며 “좋은 사람 쪽에는 항상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고 인재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