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매화향기 그윽하게 퍼지는 고가마을
한국관광공사 추천 3월의 가볼만한 곳 짿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
2010-03-09 최은남 기자
지리산이 빚어낸 청정골이라는 경남 산청군에 가면 전통 고가마을인 ‘남사예담촌’이 있다. 경상북도 안동에 하회마을이 있다면 경상남도 산청에는 남사마을이 있다고 할 정도로 남사예담촌은 양반마을, 전통 한옥마을로 유명하다. 남사예담촌의 ‘예담’은 옛스런 담이란 뜻을 가진 말이지만 그 안에는 담장 너머 숨어있는 우리 한옥의 아름다움, 또는 옛날 선비들의 기상과 예절을 발견해보시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특히 봄날에 가면 좋은 것은 마을 안에 7백년 된 원정매의 후손 매화나무가 꽃을 피워내 여행객들을 선경으로 이끈다는 점이다. 고풍스런 한옥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단속사지의 정당매, 산천재 앞뜰의 남명매까지도 만나본 뒤 대원사, 내원사, 구형왕릉 등 문화유적지를 두루 만나보면 산 높고 골 깊은 산청의 후덕함에 푹 젖어들고 만다.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는 함양을 지나 진주로 향하면서 산청군 땅에 생초, 산청, 단성나들목을 차례로 열어놓고 있다. 남사예담촌 방문이 산청 여행의 주요 목적이라면 단성나들목으로 나가는 것이 편하다.
남사예담촌으로 가기 전 들러볼 곳이 목면시배유지, 겁외사 등 두어 군데 있다. 목면시배유지는 우리나라에 처음 면화씨가 뿌려져 싹트고 열매맺은 곳이다. 문익점은 고려 공민왕 12년(1363)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하면서 붓두껍 속에 목화씨를 숨겨왔던 인물. 10개의 씨 중 반은 그가 직접 심고 나머지 반은 장인 정천익이 심었는데 그 중 대부분은 발아하지 못하고 1알만이 이곳에서 싹을 틔워 온 나라로 퍼지게 되었다. 지금도 목면시배유지 돌담 안의 자그마한 밭에는 면화가 재배되고 있다.
성철스님 생가 자리에 지어진 겁외사에는 대웅전과 선방, 누각, 요사채 등이 있고 대웅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성철스님의 초상화가 봉안되어 있다. 생가에는 유물전시관과 사랑채전시관이 들어섰다.
성철스님은 현대 불교를 대표하는 선승으로 해인사의 초대 방장, 조계종 제6대 종정을 지내셨다.
성주 이씨, 밀양 박씨, 진양 하씨, 연일 정씨 등이 대대로 살아온 남사예담촌에 가면 마을회관 구실을 하는 경화당 앞 다목적광장 터에 차를 세운 뒤 ‘남사예담촌 안내도’부터 보게 된다. 남강으로 흘러드는 사수천이 마을의 북쪽을 반쯤 휘감아 돌아가니 풍수에 문외한인 사람들이 보더라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자리에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민들은 마을의 앞뒤에 솟은 당산과 니구산이 서로 머리와 꼬리를 무는 쌍룡교구의 형상을 하고 있어 큰 인물이 많이 나올 형국이라고 자랑한다. 또한 마을은 반달 모양을 하고 있어서 옛날부터 이곳 주민들은 마을 중심부를 그 무엇으로도 채우지 않고 우물을 파는 것도 금기시했다고 한다.
마을 안내도 바로 옆 자리는 이곳 남사마을의 돌담길이 등록문화재 제281호임을 알려주는 표석이 차지하고 있다. 사양정사, 이사재, 최씨고가, 이씨고가 등 양반집 주변에는 토담이 많고, 서민들이 거주하던 민가 주변에는 돌담이 많다. 토담과 돌담 사이사이로 난 골목길을 걸어다니면서 고택들을 감상하는 맛이 남사예담촌 방문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남사마을의 돌담길은 약 3.2km 정도나 된다. 이밖에 신등면 단계마을의 옛담장(길이 약 2.2km)이 등록문화재 제260호, 금서면의 민재호가옥이 등록문화재 제148호로 지정되어 있다.
남사예담촌이 들어선 남사마을에는 약 135가구에 약 3백40명의 주민이 거주하며 논농사, 밭농사, 딸기재배 등으로 생활을 유지한다. 한옥은 약 30여 채 정도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한옥숙박체험이 가능한 고택은 아직 그리 많지 않다. 현재 사양정사 옆의 고가집과 이씨고가에서만 여행객들의 한옥숙박체험이 가능한 실정이다.
고가집은 한옥으로 지어진 선명당(방 2개)과 황토집(방 6개)을 한옥체험시설로 공개하고 있다. 사양정사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둔 선명당의 경우 1팀에게 독채로만 빌려주며 수세식 화장실과 샤워시설은 마당에 별도로 지어졌다. 사양정사와 마당을 사이에 두고 조금 떨어진 황토집의 객실은 각 방마다 샤워실, 화장실을 보유하고 있다.
고가집을 관리하면서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는 정구화씨에게 부탁하면 연일 정씨 문중 소유의 고가인 ‘사양정사(泗陽精舍)’를 구경할 수 있다. 정씨의 설명에 따르면 사양정사(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53호)는 한말의 유학자 정제용(1865∼1907)의 아들 정덕영과 장손 정정화가 남사마을로 이전한 후 선친을 추모하기 위하여 마련한 정사(精舍)로 1920년대에 지어졌다. 정제용은 포은 정몽주의 후손이다.
사양정사란 ‘사수(泗水-공자의 고향인 중국 산동성 곡부에 있는 강 이름)’ 남쪽의 학문을 연마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이 집은 주로 자손을 교육하거나 손님과 교류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사양정사 솟을대문 앞에는 6백년 된 감나무와 7백년 된 원정매, 그리고 원정매의 후손 매화나무가 자라고 있다. 고려 말기의 세도가 원정공 하즙선생이 심었던 수령 7백년의 원정매는 죽었으나 10년 전부터 그 옆의 후손 매화나무가 이른 봄이면 꽃을 피워 남사마을에 매화향기를 뿌려준다.
원정공의 매화사랑은 다음과 같은 시에도 잘 나타나 있다. ‘집 양지 일찍 심은 한 그루 매화 / 찬 겨울 꽃망울 나를 위해 열었네 / 밝은 창에 글 읽으며 향 피우고 앉았으니 / 한 점 티끌로 오는 것이 없어라’
이번에는 이씨고가로 이동해본다. 언뜻 보면 연리목 형태인 두 그루의 회화나무를 통과, 골목길을 조금 들어가면 만나게 되는 이씨고가(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18호)는 2010년 4월부터 한옥숙박체험을 실시한다. 이씨고가는 안채를 중심으로 사랑채, 익랑채, 곳간채가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고 곳간채 뒤에 있는 사당은 보이지 않게 배치되어 있다. 안채, 사랑채, 익랑채 등 6개의 방이 숙박체험시설로 활용된다. 안채만 나무보일러를 사용하는 방이고 나머지는 아궁이에 불을 때워 난방하는 방이다. 마당에 들어서면 각종 약초 화분이 즐비해서 한약 냄새가 은은하게 퍼진다.
봄날의 산청여행 중 남사마을에 가서 원정공 하즙선생이 심었던 원정매의 향기를 음미해봤다면 단속사지를 찾아가서 정당매도 필히 삼상해보는 것이 좋다.
고려 말기 단속사에서 수학하던 강회백과 강회중 형제가 심은 매화나무라고 한다. 강회백은 훗날 벼슬이 정당문학 겸 대사헌에 이르러 그 매화나무는 정당매로 불리기 시작했다. 수령 630년을 넘긴 매화나무이다. 조선 중기의 거유 퇴계 이황선생과 쌍벽을 이루었던 남명 조식 선생은 지리산 남쪽 자락의 산천재에서 벼슬을 거부하고 성리학 연구와 후진 양성에만 몰두했던 인물이다.
남명기념관 맞은편의 산천재 마당에는 그가 직접 심었다는 매화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그 이름이 남명매이다. 심은 사람의 성품을 닮은 듯 남명매의 향기는 한층 더 고고하다. 훗날 사람들은 하즙이 심은 원정매, 강회백이 심은 정당매, 조식이 심은 남명매, 이 세 가지 매화를 합쳐 ‘산청삼매(山淸三梅)’라고 부르며 3월의 산청 여행 중에는 반드시 찾아보는 명물이 되었다.
지리산 둘레길 걷기도 산청군 여행 중 꼭 한번 해보자. 전북 남원과 경남 함양을 지난 지리산 둘레길은 산청군에 이르러 금서면 방곡리에서부터 걷기 코스가 시작되는데 현재는 금서면 수철리까지 9.8km에 걸쳐 걷기 코스가 완성돼있다.
철쭉 명산인 황매산(1,108m)은 5월에 찾아가면 좋다. 매년 5월 초순에서 중순 무렵이 되면 황매산 정상과 황매평전에는 철쭉이 만개, 각지의 여행객들을 유혹한다. 황매산철쭉제도 이 시기에 열린다. 산청군 문화관광해설사 민향식씨는 ‘황매산의 황은 부를, 매는 귀를 의미하며 전체적으로는 풍요로움을 상징한다’면서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개국한 무학대사가 이 산에서 수도했다’고도 설명한다.
그같은 내력을 지닌 산이 봄이면 철쭉 세상으로 화려하게 변신하니 봄꽃 산행을 좋아하는 여행자들이라면 꼭 한 번은 찾아가야 할 곳이다. 산행 들머리는 산청군 차황면 법평리의 영화주제공원 (<단적비연수>등의 촬영 세트장이 있는 곳)이나 합천군 가회면의 영암사지를 가는데 산청쪽의 세트장에서 출발하면 거리가 한층 가깝다.
문의전화 산청군청 문화관광과
055-970-6421∼3
[최은남 기자] cen@dailypot.co.kr
사진·자료제공:한국관광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