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따라 걸으며 마시는 ‘봄 향기’
4월에 가 볼만한 곳 <2> - 제주
2008-04-10 남석진 기자
천 년 전 섬이 된 비양도는 자동차가 없어 어느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곳이다. 2001년 완공된 약 3.5㎞의 해안일주도로를 따라 천천히 걸으면 더 없이 좋다. 해안일주도로에서 가장 풍광이 아름다운 곳은 코끼리바위와 애기 업은 바위 등 기암을 만날 수 있는 북쪽해안이다. 동남쪽해안엔 염습지인 펄랑 못이 있다. 습지 안의 동식물을 관찰할 수 있도록 나무다리산책로가 놓여있는 것이 특징이다. 산책로 끝부분엔 비양도 사람들의 안녕과 풍어를 비는 할망당이 있다.
맑고 푸른 바다를 가진 제주특별자치도(이하 제주도)는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길을 유혹하는 곳이다.
자동차로는 갈 수 없는 바다 건너의 섬인 탓에 쉽게 다가 설 수 없어 늘 동경의 대상이 된다. 때문에 대한민국 사람들의 이어도가 됐다.
제주도 여행은 반복하면 할수록 많은 것을 만나게 된다. 처음 제주를 찾으면 이미 알려진 드러난 관광지들을 서둘러 보고 떠난다. 하지만 횟수를 거듭하면서 주제를 정해 제주를 돌아보는 여행을 하게 된다. 제주여행의 주제는 다양하다.
넓고 큰 중심도로를 벗어나 바다가 손에 잡힐 듯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 즐기기, 한라산자락에 불쑥불쑥 솟아 오른 오름 트래킹 즐기기 등이 인기다.
섬 속의 섬 즐기기와 해양스포츠, 천천히 바닷길 걷기 등도 제주만의 매력이다.
이 중 4월에 추천하는 테마는 바다를 따라 걸으며 제주의 속살을 만나는 것이다. 투명한 하늘이 바다에 드리워 더욱 맑은 바다 빛을 가지게 되는 4월의 제주도는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아 걷기에 적당하다.
모자를 얹은 듯한 ‘비양도’
제주시 한림읍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쓰고 다니던 모자를 바다위에 살포시 얹어놓은 듯한 섬이 있다. 한림항을 출발해 15분이면 닿을 수 있는 섬 ‘비양도’다.
섬이 하늘을 날아가다 아낙에게 발견돼 그 자리에 멈춰 섰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외부인이 이 섬에 처음 발 딛는 곳은 섬 남쪽의 압개포구다. 선착장과 50여 가구가 모여 사는 마을이 있는 압개포구는 비양봉이 바람을 막아줘 배를 안전하게 댈 수 있다.
섬에서 가장 너른 평지가 있어 작게나마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때문에 일찍부터 사람이 살았다.
섬사람들은 좁은 평지를 일궈 그들이 먹을 채소들을 재배한다. 하지만 워낙 땅이 좁아 생계를 이어가기에는 부족하므로 대부분 바다에서 주 소득원을 찾고 있다.
밑바닥까지 들여다보일 만큼 투명한 비양도 주위 바다는 산호가 아름다워 스쿠버다이버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해조류가 발달한 덕에 물고기도 많다.
때문에 멀리 나가지 않아도 풍부한 어획물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연중 바다낚시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밀려든다.
고려 시대 화산 폭발
게 발 모양으로 벌리고 선 방파제 안 선착장으로 내리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비양봉아래 자그마한 마을과 보건소다.
알록달록한 섬 집들의 슬레이트지붕과 어우러져 있는 흰색 건물은 어디서 본 듯한 낯익은 건물이다. 방파제와 보건소가 SBS 특별기획드라마 <봄날>의 촬영지였기 때문이다.
배우 고현정의 연예계 복귀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던 이 드라마에서 비양도는 고현정이 자란 곳이며 그녀의 사랑을 만나는 장소로 묘사됐다.
보건소 앞에서 길을 따라 왼쪽으로 가면 드라마 촬영지였음을 알리는 커다란 구조물 옆으로 비양도의 유래를 알리는 비석이 있다. 제주도의 화산폭발로는 유일하게 기록이 남아있는 비양도의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다.
고려 목종 5년 6월(1002년), 산이 바다 가운데서 솟았는데 산에는 네 개의 구멍이 뚫리고 붉은 물을 5일 동안 내뿜다가 그쳤다. 그 물은 모두 용암이 됐다.
고려목종 10년(1007년), 서산이 바다 가운데서 솟아오르니 태학박사 전공지를 보내어 살피게 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산이 처음 솟아오를 때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고 천둥치듯 땅이 진동했는데 일주일이 지나서야 비로소 개었다. 산 높이는 100여장이고 둘레는 40여리나 됐다. 풀과 나무가 없었고 연기가 그 위를 덮었는데 마치 석류황 같이 보였다. 사람들이 두려워 감히 가까이 가려하지 않자 공지가 몸소 산 아래까지 가 그 형상을 그려서 바쳤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 38 제주목 고적)
기록대로라면 섬의 나이는 이미 천년을 넘어섰다. 천년이 지나도록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돼 준 것이다.
조용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고 서서 발바닥을 통해 천년의 세월을 지켜온 섬과 대화를 나눠보자.
3.5km의 해안일주도로
비양도의 해안선 길이는 약 3.5㎞다. 2001년 완공된 해안일주도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 섬을 돌아보는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남짓이다.
섬 안에 자동차가 없어 걷기를 방해하는 그 어떤 것도 없다. 해안일주도로에서 가장 풍광이 아름다운 곳은 기암들이 있는 북쪽해안이다.
바다 속에 긴 코를 넣고 물을 마시는 듯 보이는 코끼리바위, 바다에 잠겨 흥겨운 시간을 보내는 듯 보이는 물개를 닮은 바위, 아기를 등에 업고 선 듯 보이는 애기 업은 돌 등 신기한 화산석들을 만날 수 있다.
이 곳은 바다낚시 포인트이기도 하다. 가마우지가 가득 내려앉은 코끼리바위 주변에서 강태공들이 낚시를 드리우고 선 모습을 언제나 볼 수 있다. 물이 빠져나가면 바위 사이사이에서 보말(고둥) 잡이를 할 수 있다.
기암지대를 지나오면 염수지인 펄랑 못이 있다. 예전엔 바닷물이 드나들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해안일주도로로 막혀 물의 드나듦이 어려워졌다.
못 가장자리로 갈대를 비롯한 다양한 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새들의 쉼터가 돼준다. 생태공원 가장자리로 나무다리를 놓아 산책하기 좋다.
산책로 끝부분엔 삼색 깃발이 꽂힌 할망당이 자리하고 있다. 농사지을 땅이 부족해 어부와 잠녀로 바다에 나가 일하는 주민들이 저마다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곳이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한라산’
할망당을 돌아 포구로 나오면 보건소 옆 골목을 통해 비양봉으로 올라가보자.
해발 114m의 낮은 산봉우리로 오르는 길은 가파른 산길이지만 그리 길지 않아 오를만하다. 산을 오르다 커다란 분화구 앞에 다다르면 길이 두 갈
래로 나뉜다.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길은 등대가 있는 정상으로, 왼쪽 길은 비양나무 자생지인 작은 분화구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제주도 제일의 전망 포인트인 비양봉 정상이다. 정상에 서면 둥근 지구에 담긴 바다를 볼 수 있다.
건너편 본섬의 우뚝 솟은 한라산과 오름들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둥근 수평선이 눈앞에 펼쳐진다. 크게 심호흡하며 자연의 정기를 듬뿍 마시기에 좋은 곳이다.
봉우리에서 내려오는 길 중간엔 작은 대숲이 있다. 한때 대나무가 많아 ‘대섬’이라 불렸다고 한다. 지금처럼 일부만 남게 된 것은 화살로 사용될 대나무 공역이 많아지자 섬에 불 을 질러 대숲을 없앴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의 비양도는 살기 좋은 섬이다. 깨끗한 자연환경과 더불어 발전소가 있어 전기 걱정 없고, 본섬과 연결된 수도관이 있어 물 걱정도 없다.
비양도를 오가는 배는 하루 두 번 운항된다. 한림항 도선장에서 오전 9시와 오후 3시에 출발하며 뱃삯은 어른 1천500원, 어린이 900원이다.
사진·자료제공:한국관광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