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표+α…“이제 호남민심만 남았다”

2006-06-14     이금미 
‘호남민심만 얻으면 OK?’한나라당 취약지구 호남을 두고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의 구애전이 치열하다. 박 대표는 마지막 당대표로서의 프리미엄을 전격 활용, 김대중(DJ) 전대통령과의 미래지향적 관계 모색에 적극 나서는가 하면, 이 시장은 독실한 기독교도라는 것을 내세워 호남 교회 투어에 나서고 있다.

지방선거 압승으로 고무된 한나라당의 전반적인 기류도 “호남을 잡지 않고는 2007년 대선 승리는 어렵다”로 모아지며 이들의 행보를 부추기고 있는 형국이다. 한나라당 고정 지지층, 그리고 ‘+α’의 득실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는 대선, 반한나라당 정서가 강한 호남민심을 얻지 못하면 정권창출은 요원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 사람이 모두 영남 출신이라는 것도 이들의 호남행을 거들고 있다. 본격적인 대선 경선 레이스의 출정을 앞두고 차기 대선 막판 승부처에서 전개되고 있는 이들의 호남 쟁탈전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듯하다.



박 대표와 이 시장이 호남행 열차에 몸을 싣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은 ‘국민통합’을 위해서이며, 다음은 차기 대선 때 호남에서 두자릿수 지지율을 얻지 못하면 집권이 힘들다는 대승적인 차원의 계산이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각자의 대선 레이스에서 호남이 대선 경선과 차기 대선의 막판 승부처이기 때문이다.

“고정 지지층을 깨라”

보다 근본적인 이유를 짚어보자면 대개 한나라당 대권주자들에는 고정 지지층이 형성돼 있다는 데 있다. 이들의 지지층을 지역별로, 또는 연령별로 구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영남권을 중심으로 충청도와 강원도, 그리고 40~50대를 중심축으로 해 고령층으로 이어지는 ‘동부권 벨트’다. 게다가 박 대표와 이 시장은 모두 영남 출신이다.

한나라당 대권주자들의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누가 되더라도 고정 지지층은 표를 몰아줄 세력이라는 것. 박 대표와 이 시장이 그나마 차기 대통령감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상위에 랭크될 수 있었던 데는 박 대표는 충청도, 이 시장은 서울 및 수도권에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나라당 대선 경선을 통과하려면 ‘영남표+α’가 핵심이라는 얘기다. 또 두 사람의 잦은 호남행에는 최근 ‘7월 신당창당설’이 무성한 고건 전국무총리의 움직임도 영향을 미친 듯하다.

지방선거 참패라는 성적표를 얻은 여권 주변에서 다양한 정계개편 시나리오가 양산되고 있는 가운데, 호남의 맹주를 중심으로 지각변동의 동력이 갖춰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게다가 정계개편이 빠른 급물살을 탄다면 한나라당 대권주자는 물론 한나라당도 호남에 기댈 여지는 없다. 그런 와중에도 고 전총리는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α’의 여지는 호남으로 통하고 있다. 두 사람 중 눈치 볼 데 없이 호남 방문에 진력하고 있는 이는 박 대표다.

박근혜,호남방문 17 차례

박 대표의 호남구상은 한나라당 키를 잡은 순간부터 밑그림이 그려졌으며, 지난 지방선거를 정점으로 가속페달을 밟아 왔다. 박 대표는 2004년 임시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된 이후 첫 지방 방문 일정으로 광주 5·18묘역 참배를 잡았다. 또 17대 국회 첫 의원 연찬회를 전남 구례에서 열었으며, 5·31 지방선거의 첫 유세지역도 광주다. 또 동교동을 방문, DJ를 향해 “아버지 시절에 여러 어려움을 겪은 것에 대해 딸로서 사과한다”고 했고, 한나라당 대표로서 ‘6·15 남북 공동선언’ 기념 행사에 참석해 유연한 대북관을 보여주기도 했다.

호남의 DJ와 영남의 박 대표, 차기 정권의 모티브가 ‘동서화합’이라는 가능성이 흘러나온 시기도 이때부터다. 박 대표 취임 이후 한나라당의 대북관이 유연해졌다는 것도 이러한 가능성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과거 이회창 전총재는 햇볕정책을 골자로 한 DJ의 국정운영에 반기를 들었던 터다. 당내에서도 호남을 끌어안고 가야한다는 견해가 많다. 박 대표 측근인 김무성 의원은 “한나라당과 DJ가 화해해야 지역감정의 벽을 허물 수 있다”고 강조하며, ‘박근혜 서진정책’의 명분을 생산하고 있다.

또 대표적인 반박인사로 분류됐던 홍준표 의원은 최근 이 시장과의 결별에 앞서 “유신의 가해자라고 할 수 있는 박 대표가 피해자인 DJ와 화해해야 한다”고 주문하며 박 대표의 이유 있는 호남공략을 거들고 있다. 한편, 박 대표는 대표로서 마지막 공식 일정도 광주에서 매듭을 지을 예정이다. 오는 15∼17일 광주시와 김대중도서관 주최로 열리는 ‘광주정상회의’ 참석이 그것이다.

이 자리에선 DJ를 비롯해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 세계적인 인권운동가들이 ‘화해와 평화 확산’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계획이다. 박 대표 입장에서 재임기간 펼쳐온 서진정책에 종지부를 찍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마지막 일정까지 소화한다면 한나라당 대표로선 드물게 17 차례 호남을 방문한 인사로 기록에 남게 된다. 그러나 호남공략의 실효성 여부를 따진다면 박 대표측의 고민은 깊어 간다. 대표로서 마지막 과제였던 5·31 지방선거, 그 최대 수혜자가 박 대표라는 데 이견이 없음에도, 여전히 호남은 한나라당에 진입 장벽이 높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지지율은 이시장이 앞서

반면, 호남민심을 곱씹을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이는 이 시장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3일 실시한 호남지역의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이 시장은 고 전총리(65.4%)에 이어 6.9% 포인트를 얻어 2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광역단체장이라는 지역적 한계, 그리고 본격적인 중앙당 복귀를 앞둔 시점에서 이 시장에겐 의미 있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대표로서 노골적으로 호남공략에 나섰던 박 대표(1.7%)가 얻은 지지율의 네배에 이르는 수치다.

게다가 같은 기관의 지난해 12월 조사 때만 해도 이 시장의 지지율은 박 대표에 비해 낮았다. 그렇다면 박근혜 피습 사건과 한나라당의 지방선거 압승 등 박 대표에 유리한 정치 환경에서 이 시장이 호남에서 선전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 시장측에선 “이 시장이 호남에 공들인 만큼, 결실을 보고 있는 것”이라는 평가다. 실제로 이 시장은 최근 부쩍 호남행이 잦았다. 퇴임 준비로 바쁜 일정을 쪼개 지난 7일에는 전남 목포를 다녀왔다.

목포 KBS 스포츠홀에서 열린 목포 인근 300여 개 교회 연합 모임 특강 때문이다. 또 5월에는 광주 5·18 기념 마라톤 행사에 참여하고 돌아오는 길에 전북 익산의 교회에서 연설을 했다. 지난 3월엔 전주 지역 교회 특강, 4월엔 여수 방문과 전남대 여수캠퍼스 특강, 5월엔 전북대 초청 특강 등 지난 몇 개월간 이 시장의 일정은 호남방문으로 채워져 있다.

올 들어서만 열 차례 이상이다. 이 시장의 호남공략엔 타깃도 설정돼 있다. 기독교 장로인 이 시장이기에 주로 호남의 기독교인들과 대학생들이 주 타깃이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불교계를 파고들기 위해서도 노력중이다. 4월 여수 방문 땐 흥국사를 찾아 호남 지역 스님들과 아침 공양(식사)도 했다.

전방위 공략 최종 타깃 ‘DJ’

호남 지자체도 예외일 수 없다. 여기선 서울시장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이 시장의 고민이 묻어나기도 한다. 이 시장은 2004년 12월 전라남도와의 우호교류협력 체결로 서울의 각 구청과 전남의 시·군이 1대1 자매결연을 하도록 했고, 폭설 피해 때는 서울시의 복구 인력과 중장비 등을 전남 지역에 급파하기도 했다. 또 서울시장과 전남도지사의 교환방문 형식을 띠고 광주를 찾기도 했다.

이 시장은 호남출신 거물급 인사 영입에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아직까지 내놓을 만한 결과물은 없으나, 이 시장은 K씨, J씨 등 호남색이 짙은 저명한 인사에 접촉을 시도한 바 있다. 길게 남은 대선 레이스를 감안, 이 시장측은 “호남출신 인사 영입은 현재 진행중”이라고 전했다. 대대적인 공식 행사에 제1야당의 대표선수로 호남을 방문한 박 대표에 견줘 이 시장은 작고 비공식적인 행사에 발품을 팔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호남민심을 향한 그의 잠행도 멀지않아 끝날 것으로 보인다. 이 시장 역시 DJ 끌어안기에 적극적으로 나설 태세다.

지난 3월 이 시장은 방미 기간중 DJ의 방북을 지지해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그는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우리 국민 중에 남북공조를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며, 한·미관계가 남북관계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특히 이 시장의 이날 발언은 며칠 전 부산을 찾은 이회창 전총재가 DJ의 방북에 대해 격렬한 반대를 쏟아 놓은 직후여서 더욱 주목을 끌었다. 게다가 이 시장은 청계천 복원을 기념해 DJ를 초청한 바 있다. 당시엔 DJ의 사정이 여의치 않아 무산됐으나, 요즘 이 시장측 주변에선 서울시장 퇴임 직후 DJ와의 면담을 암암리에 추진하고 있다는 소문이 흘러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