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포스트
“F-15기는 미공군의 애물단지…한물갔다"

2006-06-22     김대현 
미국 보잉사로부터 도입한 F-15K 전투기 중 한 대가 지난 7일 동해상에 추락해 ‘베테랑’ 조종사 2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공군은 아직 사고 원인을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사고 전투기의 잔해가 동해 앞바다에 흩어져 있어 ‘블랙박스’를 수거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더욱이 사고조사에 나선 공군과 보잉사는 이번 사고의 이해당사자여서 논란이 예상된다.

일부 시민단체는 무기도입 사업 전반에 걸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외국의 주요 언론도 F-15K 추락 사건을 보도하며, 국내 논란과 함께 사고원인 규명을 지켜보고 있다. 과거 “F-15기종은 애물단지”라는 표현까지 사용한 바 있는 워싱턴포스트는 사고 원인 규명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국내 일각에선 ‘공중 폭발’ 가능성까지 언급되고 있다. 엔진을 포함해 기체결함으로 인한 자체 폭발이 발생했다면, 이는 무기도입 자체를 재고해야 할 중대 사안이다. F-15 기종을 도입한 일본 등의 국가와 이를 도입할 의사를 내비치고 있는 나라가 있다는 점에서 진상조사 결과가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F-15K 기종은 한국이 마지막 고객이 될 수도 있다.”2005년 3월 18일자 세인트루이스포스트 디스패치가 보도한 내용이다. 1970년대 기계식 장비로 개발되기 시작한 F-15 기종의 수명이 다했다는 극단적인 평가를 내린 것. 세인트루이스는 미국 보잉사가 F-15기종을 생산하는 공장이 위치한 지역이다. 당시 우리 정부는 차기 주력 전투기(F-X) 사업의 일환으로 미국 보잉사의 F-15K 무기도입을 추진 중에 있던 터라 국방부 등이 곤혹스러움을 느낄만한 뉴스 거리였다. 물론, 국내외 언론의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국방부의 무기도입 사업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F-15 1970년대 첫 생산

그러나, 지난해 12월 우선 도입한 4대의 F-15K ‘슬램 이글’ 전투기 중 1대가 비행 도중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다시금 F-X 사업 전반에 걸친 문제제기가 폭증하고 있다. 문제의 전투기는 지난 6월 7일 대구 공군기지에서 이륙한 이후 야간비행 임무 수행 훈련 도중 동해상에 추락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추락 원인을 규명하는 작업에 있어서 시민단체의 반발이 확산돼 ‘난항’이 예상된다.

시민단체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은 전투기 추락사고와 관련, “F-15K 사업 추진과정에서, 국방부는 미 보잉사의 결함을 ‘한미동맹’이니 ‘작전운용성’이니 하며 두둔해 온 전력이 있다”며 “사업 결정 이후에도 랜딩기어 지시 오작동 등 곳곳에서 끝없이 문제점이 제기됐다”고 말해 도입 단계부터 사고가 예견됐음을 시사했다. F-15K 추락 사고가 터지자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즈 등 미국 내 언론을 비롯, 일본 등 동종 기종의 전투기를 운영하는 국가에도 이 소식이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의 경우 “한국 동해상에서 2명의 조종사를 태운 F-15K가 추락해 시신과 잔해를 수색하고 있다”며 연합뉴스 보도를 인용해 소개했다.

일본 언론도 연합뉴스를 인용해 F-15K 추락 사고를 간략하게 보도했다. 일본은 1980년대부터 200기 가량의 F-15J를 도입해 보유하고 있지만 2012~2017년까지 순차적으로 도태시킨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워싱턴포스트가 이번 사고에 주목하는 이유는 국방부가 무기도입을 추진할 당시 F-15K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견해를 여러 차례 표명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해 “F-15 기종은 유지비가 매년 증가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면서 ‘기체가 덜컹거리고 흔들리는 늙은 헐크’에 비유하기도 했다. 특히, F-15K의 모체인 F-15E 기종이 1990년부터 2004년까지 11대나 추락했던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워싱턴포스트는 “F-15 기종은 미국 공군의 ‘애물단지’로 전락한 상태”라고 극단적인 평가를 내렸다. 당시 워싱턴포스트의 문제제기는 타당성을 지니고 있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선 F-15 기종의 전투기를 대체할 차세대 전투기 양성에 돌입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다국적 군수업체의 한 관계자는 “F-15K는 F-16, F-18과 함께 소위 4세대 전투기로 불리는 기종들”이라며 “스텔스 기능 등 첨단 요소가 추가된 5세대 전투기는 이미 실전 배치단계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미국, 영국, 이스라엘, 캐나다, 싱가포르, 네덜란드 등이 참여해 만든 차기전투기 JSF(Joint Strike Fighter)가 기존 4세대 전투기를 대체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군수업계의 주요 고객(?)인 한국은 이번 사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일부 군수업체가 F-22 등 차세대 전투기와 관련된 홍보 및 설명회를 주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례로 스텔스 기능이 추가된 F-22의 경우, 모의 성능 실험에서 8대 이상의 F-15 전투기를 상대할 수 있는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앞서 언급했던 세인트루이스포스트 디스패치도 단종 위기의 F-15K를 한국이 수주함에 따라 생명(?)이 연장됐다는 평가를 내렸다.

‘스텔스 기능’ 갖춰야 ‘차세대’

프랑스 통신사인 AFP도 사고 발생 다음날인, 지난 8일 F-15K 전투기 추락 소식을 본국으로 타전했다. AFP는 “대구 공항을 이륙한 F-15K 전투기 한대가 야간 훈련도중 바다에 추락했다고 (한국)국방부 및 공군이 발표했다”며 “현재 조종사의 생존여부는 확인할 수 없으며 수색작업이 계속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국내 언론과 외신들은 특히, F-15K의 추락 원인에 주목하고 있다. 공군 사고위원회가 공식 발표한 내용은 “F-15K가 동해상에서 추락했으며 2명의 조종사가 순직한 것 같다”는 정도에 불과하다. 공군 내부에선 이번 사고와 관련, ‘함구령’이 내려진 상태다.

이번 사고의 핵심은 사고의 원인이 기체결함인지, 아니면 비행착각인지 여부에 달려 있다. 전투기 추락 원인에 따라 향후 추가로 도입될 예정인 F-15K 36대의 운명이 뒤바뀔 수도 있다. 엔진을 제외한 전투기 일체를 판매키로 한 미국 보잉사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보잉사는 또, 공중조기경보통제기(E-X) 사업에도 뛰어들어 이스라엘 엘타사와 경합 중이어서 원인 규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는 비행착각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적다고 보고 있다.

F-15K에는 첨단 전자식 비행헬멧과 야간 항법장치 등이 설치돼 있어 숙련된 조종사가 비행착각을 했을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와 관련된 첨단 장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성명을 통해 “사고원인에 대한 진상규명뿐만 아니라 F-15K 도입과정과 계약 내용에 대한 조사가 병행돼야 한다”고 했다.평통사는 또, 진상조사를 하고 있는 우리 군과 보잉사가 이번 사건의 이해당사자이자, 조사대상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민간 조사단 참여를 주장하고 있다.

평통사는 지난 14일 기자회견을 갖고 “사고 조사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위해 유족대표와 민간 전문가의 참여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일각에선 F-15K가 기체결함으로 인해 공중 폭발했을 가능성이 제기돼 주목받고 있다. 지난 2002년 차세대 주력 전투기 선정과정에서 군수뇌부의 ‘외압’을 공개한 조주형 예비역 대령은 기자와 통화에서 “F-15K는 공중 폭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조 대령이 공중폭발을 언급한 근거로 “조종사가 아무런 말도 없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파편을 찾는 구역이 지나치게 광범위한 경우, 또 기체가 산산이 분해된 때에는 공중폭발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블랙박스 수거 여부가 관건

한편, 공군은 이번 사고와 관련 “사고기가 추락하기 전 교신이 있었으며 조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며 “비행자료와 목격자 교신내용 등을 종합해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군은 사고 원인 파악의 열쇠를 쥐고 있는 ‘블랙박스’를 수거하기 위해 전문 인력과 장비를 투입한 상태다. 일부 아시아권 국가에서 F-15 전투기 도입을 저울질하고 있는 가운데, “임무중지”라는 마지막 교신을 남기고 사라진 F-15K의 사고원인 규명을 전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 미 군수업체 록히드마틴사 김용호 한국지사장 인터뷰
“스텔스 기능 갖춘 차세대 전투기 실전 배치 중”


- 오늘날 차세대 전투기는 무엇을 의미하나.
▲얼마 전까지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전투기는 4세대 전투기가 주류였다. 여기에는 1970~80년대 개발된 F-15, 16, 18 등의 기종이 포함된다. 프랑스 라팔도 4세대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제는 5세대 전투기로 교체되고 있다. 5세대 전투기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스텔스 기능이다. 미국 등 외국의 차세대 전투기 개념은 F-22 등에 맞춰져 있다.

- F-22와 F-15의 성능 차이는.
▲단순하게 비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F-22는 4세대 전투기 8대 이상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본다. 다소 가격이 비싼 측면이 있지만, 이미 미국은 실전에 배치하고 있다. 단위시간 비행능력을 따져봐도 5세대 전투기가 탁월하다.

- 전투기 엔진수가 1~2개로 다른데, 무슨 차이인가.
▲일반적으로 엔진이 2개면 더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전술을 펼칠 때는 가볍고 안전한 1개 엔진 기종이 유리하다. 요즘 엔진은 워낙 기술력이 뛰어나 완벽에 가깝게 만들어진다.

- F-15K 추락사고가 발생했는데, 어떻게 보고 있는지.
▲우리가 경쟁사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유능한 조종사 2명을 잃은 부분은 안타깝게 생각한다. 단, F-15K는 명성을 떨친 좋은 전투기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