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 알렉산더, 나폴 레옹도 간질 환자

간질(Epilpesy)에 대한 편견과 오해들

2010-08-24     박태정 기자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치료약이 없던 고대에서도 많은 위인들(소크라테스, 도스토예프스키, 모파상, 반고흐 등)이 간질 환자로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더구나 현대에 와서는 의학의 발전에 힘입어 약물치료로 대부분의 간질이 큰 부작용 없이 조절되어 환자들에게 정상생활이 가능하도록 하였으며, 약물에 조절이 안 되는 난치성 간질의 경우에도 수술 치료의 발전으로 커다란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은 아직도 간질이라는 병에 대한 그릇된 선입견과 필요 이상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실정이다. 자녀가 혹은 본인이 처음 간질환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 가족들이 상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간질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는다면, 대부분의 경우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에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경련·발작·간질 용어의 의미?

먼저 간질(epilepsy)과 발작(seizure)은 비슷한 말이면서도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 발작(seizure)이란 질환 명이 아니라 하나의 증상을 지칭하는 말이다. 대뇌에는 뉴런이라 불리는 수많은 뇌세포들이 서로 연결되어 미세한 전기적인 상호작용으로 정보를 주고받고 있다. 그런데 발작이란 뇌에서 이러한 정상적인 ‘전기에너지’가 한꺼번에 비정상적으로 방출되어 일어난다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잠재적으로 발작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의 뇌는 이에 대한 높은 저항력(threshold)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서 발작에 대한 저항력이 낮아져 있거나, 정상적인 저항력을 가지고 있어도 이 저항력보다 큰 자극이 있는 경우 발작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발작이 (일회적이 아닌)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병을 간질이라고 한다. 즉 간질이란 ‘반복적인 발작’을 주 증상으로 하는 질병을 말한다. 다시 말해 발작은 증상을 표현하는 용어이고, 간질은 병을 표현하는 용어다. 간질의 종류는 다양하다. 그리고 간질의 종류에 따라 발작의 유형도 다르며, 어떤 간질환자는 여러 가지 발작 유형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경련(convulsion)이라는 말은 발작(seizure)과는 또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경련이라는 말은 근육의 수축을 의미하는 말이다. 즉 발작 중에서 근육의 강한 수축으로 표현되는 발작을 경련(convulsion) 또는 경련성 발작(convulsive seizure)이라 한다. 발작 중에는 경련성 발작 이외에도 비경련성 발작(non-convulsive seizure)이 있다. 일반인들은 보통 경련만을 간질발작으로 이해하지만, 비경련성 발작도 발작의 중요한 유형이다.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간질은 상당히 흔한 병이며, 누구나 다 걸릴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열성 경련(febrile convulsion)등 일시적 원인에 의한 일회적인 발작을 제외하고, 아무리 적게 잡아도 전 인구의 0.5%, 즉 200명 중의 1명 꼴로 많은 사람들이 간질을 앓고 있다.


간질의 원인은 무엇인가?

간질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쉽게 말해 잠재적으로 뇌에 생길 수 있는 모든 병은 다 간질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간질의 원인이 유전적 원인을 생각한다. 다른 많은 병과 마찬가지로 간질의 경우에도 유전적 요인이 병의 잠재적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여러 근거를 바탕으로 살펴볼 때 간질에 있어 유전적 요인의 비중은 당뇨병보다도 큰 편이 아니며 비만증, 편두통보다도 오히려 훨씬 적다. 실제로 간질은 유전적 요인보다는 후천적 요인이 더 중요한 원인이다.

또 유전적인 요인이 있다 하더라도 유전되는 것은 부모 자신이 지닌 간질이 아니고 ‘낮은 발작의 저항력’이다. 즉 이는 일종의 발작이 일어날 수 있는 유전적 체질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유전적인 경우에도 모두 다 간질로 발병하는 것은 아니다.


유전적 경향 적고, 후천적 원인 많다

간질은 그 원인에 따라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유전적 소인 이외에 현재의 진단 기술로서도 그 어떤 원인도 찾을 수 없는 경우다. 이러한 경우를 특발성 간질(Idiopathic epilepsy)이라고 한다. 이러한 특발성 간질 중에서도 특별히 유전적 경향이 강한 간질이 있으나, 대부분의 간질에 있어서는 유전적 경향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둘째의 경우는, 그 원인이 명백한 경우로 간질을 일으킬 수 있는 뇌의 손상이나 질환, 기타의 신체질환 등의 원인이 드러난 경우다. 이 경우는 유전적인 ‘소질’과 무관하며, 후천적인 원인이다.


생활과 관련된 몇가지 문제

간질을 가진 여자가 항경련제 약물 복용 중에 임신을 하였을 경우 기형아 출산을 우려하는 것을 많이 본다. 그러나 기형아 등을 출산할 확률은 생각보다 매우 낮다. 간질환자가 남자인 경우에는 임신 시 고려해야 할 점 내지 기형아 등의 출산문제에 특별히 문제가 없으며, 여자인 경우에도 그 임신 및 출산에 따르는 여러 문제들은 기존의 우리들의 상식과는 달리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약물이 태아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까 두려워 임의로 항경련제를 끊을 경우, 오히려 간질을 악화시킬 수 있고, 간질발작이 일어나는 경우 태아에 미치는 손상은 약을 먹을 때 생길 수 있는 부작용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간질 산모들은 전문가의 지도에 따라 약을 쓰면 된다. 임신 중에도 가능한 한 부작용이 적은 약을 사용하는 방법이 있으므로, 이런 방식으로 간질을 조절하면서 임신을 하면 태아에게도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다만 간질을 갖고 있는 산모가 임신을 원하거나 임신을 한 경우 주치의와 상의하여 약을 조절하도록 해야 한다.

간질환자도 정상인 이상으로 능력이 있고 일할 수 있다. 외래를 내원한 수많은 간질 환자들 중 많은 환자들이 간질 때문에 직업을 갖지 못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그러나 1000명 이상 되는 성인 간질환자의 신체 및 정신조건과 취업, 이력에 관한 한 연구에서는 이들의 약 4분의 3 이상이 취업이 가능하고 실제 취업하고 있다. 이들은 다양한 직업을 망라하고 있으며 자기 분야에서 일하는데 있어 정상인과 차이가 없다 했다.

또 간질환자는 직업을 가짐으로써 자신의 경제력, 사회적 안정 및 자기성취를 얻을 수 있고 이러한 적극적 자세가 간질 자체에도 커다란 치료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간질을 갖고 있지만 자기 일에 열심히 하여 업적을 남긴 사람은 수없이 많다. 알렉산더 대왕, 나폴레옹, 도스토예프스키, 단테 같은 문호들, 노벨상을 만든 알프레드 노벨 등도 간질 환자다. 당시 약이 없던 시절에도 그러했는데, 치료 기술이 많이 발전한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더더욱 말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여러분도 간질로 인해 활동적인 삶을 사는데 있어 주저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몇 가지 정상인과는 달리 주의할 점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약을 먹고 간질이 어느 정도 조절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높은데 올라가 일을 하거나, 운전을 해야 하는 작업이나, 물 위에서 일을 하거나, 위험한 기게 앞에서 일을 하는 것 등은 조심해야 한다. 이런 작업을 하는 중에 한번의 발작으로도 생명이 위험한 지경에 이를수 있기 때문이다.


#발작시 대처 요령

일반적으로 발작이 시작되면 아무것도 그것을 정지시키지 못한다. 소발작이 있는 경우는 특별한 간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발작인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하면 도움이 된다.

① 발작이 일어나는 순간의 환자를 보거든 바닥에 눕히고, 기구나 기타 딱딱한 물건 또는 위험한 기계 등에서 멀리 떨어지게 하면 안 된다.
② 반드시 조용하며 냉정을 잃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어린이 경우는 발작이 끝나더라도 그의 주위에 있는 어른들의 긴장과 우려를 느끼고 놀라기 쉽다.
③ 환자에게 물을 끼얹거나, 입에 약이나 드링크제를 넣거나 하면 안 된다.
④ 발작 중 환자를 움직이지 못하게 손발을 꽉 잡거나 주물러 주는 것은 오히려 해롭다. 다만 혀를 깨물거나 질식이 안되도록 고개를 돌려줄 수는 있다. 또 넥타이 같은 것을 매고 있으면 느슨하게 풀어 주는 것이 좋다.
⑤ 잠잘 때 주로 발작이 있는 환자는 푹신한 베개를 베고 자면 좋다.

[박태정 기자] tjp79@dailypot.c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