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 막을 10월 북풍은 없다”
2007-09-18 김승현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몰라보게 변했다. 당내 경선 이후 ‘실용주의’ 노선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하면서 범여권에서조차 이전과 다른 시선을 던지고 있다.
이 후보는 최근 대북정책과 관련 핵폐기와 경제협력을 연계한 ‘신한반도 구상’을 발표했다. 북한이 본격적인 핵폐기 단계에 진입한다면 차기 정부에서 남북경제공동체협력협정을 체결, 남북 경협을 활성화하겠다는 게 핵심이었다.
북핵문제를 전제조건으로 달기는 했지만 이 후보의 공약은 북한을 명확한 대화 상대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지지율 50%의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이 후보측은 본격적인 대선 정국을 맞아 대북, 대미라인을 강화하는데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10월 2차 정상회담이 지나면 분위기가 바뀔 것이다. 어차피 서로를 인정해 줄 수 밖에 없다”.
이 후보측의 한 핵심 인사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의미를 이렇게 규정했다. 김대중 전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연이어 남북정상회담을 가진 만큼 누가 차기 대통령이 돼도 큰 물줄기는 되돌리기 힘들 것이라는 얘기였다.
북한은 이 후보 경선 승리 이후에도 한나라당과 이 후보에 대한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후보측이 유화적인 제스처로 방향을 정한 것은 나름대로의 확신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북측도 MB에 관심
이 후보측은 최근 들어 대북 라인 구축을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북정상회담을 전후로 예상되는 범여권의 파상 공세를 누그러뜨리는 것도 한 이유지만 북측과의 대화가 불가피하다는 판단도 적지 않게 깔려 있다. 한나라당 경선에서 맞붙었던 원희룡 의원은 “현실적으로 볼 때 북측과는 어떻게든 대화해야 한다”며 “이 후보도 이 점을 간과하지는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이 후보측의 정병국 의원이 중국 베이징에서 북측 인사를 비공개 접촉한 것은 정치권의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정 의원은 캠프에서 조직기획본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 의원측은 이에 대해 남북한 문화재 교류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만났을 뿐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북측 인사들이 한나라당의 대북정책 변화에 관심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져 ‘대북 라인’ 개척이라는 의구심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그 동안 이 후보에게 맹비난을 퍼부었던 북측 입장에서도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이 후보를 마냥 외면하는 것은 부담스러웠던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 북한 주재원들이 한나라당 인사들을 만나 이 후보의 대북 구상과 관련한 자료를 요청한 것도 이를 방증하는 대목이다.
“대화 통로 유지”
이 후보측에서 대북 라인을 담당할 인사로는 정형근 정병국 정의화 김정훈 의원 등이 꼽힌다.
대북 정보통이자 독자 라인을 보유중인 정형근 최고위원은 올 초부터 전향적인 대북 정책을 주장해 왔다. 국정원 출신인 그는 방대한 정보 수집 통로를 통해 대북 동향을 누구보다 먼저 꿰뚫고 있다는 평가다.
정병국 의원은 문화재 관련 사업을 하면서 북측 루트를 보유하게 됐고 정의화 의원은 남북의료협력재단 이사장으로 북측과 선이 닿아 있다. 국회 정보위 위원인 김 의원도 대북 소식에 정통하다는 평가다.
이들 외에도 고려대의 남성욱 교수와 경기대의 남주홍 교수가 이 후보의 대북 정책을 조언해주는 싱크 탱크의 주역이다. 외교 파트의 현인택(고려대) 김우상(연세대) 김태효(성균관대) 교수와 경제 분야의 곽승준(고려대) 교수도 북한 개방과 관련 조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후보측의 한 핵심 측근은 “2차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풍이 불어올 수 있는 만큼 다양한 방안을 강구중”이라며 “자체 TF팀을 구성해 북측과의 대화 통로를 유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방미 준비하는 MB, ‘대미 라인’은 누구?
미국 정가는 유력 대선후보인 이명박 후보에게 일치감치 관심을 보여왔다.
대북 관계에 방점을 찍었던 김대중 전대통령, 노무현 대통령과 달리 한나라당 후보로서 대선 승리가 유력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이 후보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도 미국의 3대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과 브루킹스 연구소, 미국기업연구소가 모두 초청했을 정도다.
이 후보 자신도 최근 “차기 정권은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할 것”이라고 자신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 후보는 지난달 말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와 환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 후보는 “한나라당이 이긴다”고 했고 버시바우 대사는 “좋다. 오늘 미국에 보고하겠다”는 농담으로 화답했다. 정치권에선 이 자리에서 이 후보의 방미 일정도 논의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후보측은 지난 6월에도 방미를 추진했지만 일정 문제와 경선 정국을 앞둔 시점이 부담으로 작용해 무기한 연기했다. 최근 대북 구상에 대해 가닥을 잡은 만큼 이달 말이나 10월 중 미국을 방문할 것으로 전해진다.
이 후보는 미국 외에도 러시아와 중국, 일본을 연이어 방문하며 ‘4강 외교’에 본격 시동을 걸 예정이다.
이 후보측 외교 라인으로는 이승곤 전 외교안보원장과 이기주 전 외교통상부 차관 등 10여명의 외교정책 자문위원들이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당내에서 국제통으로 손꼽히는 박진 의원도 대선 정국에서 이 후보와 미국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