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진 리스트’에 여의도 초긴장
2007-09-13 김승현
임기 말로 접어든 참여정부의 도덕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최근 불거진 부산 건설업자 김상진씨의 ‘로비 의혹’은 정관계로 시시각각 번지면서 파장이 날로 확산되고 있다. 부산시 공직 사회는 이미 냉각된지 오래다. 정윤재 전청와대 비서관에 대한 로비 의혹은 이 지역 친노그룹에게 상당한 위기감을 심어주고 있다. 강 건너 불구경하며 ‘철저한 수사’를 주장했던 한나라당도 당 소속 일부 인사들의 이름이 언급되면서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정치권을 초긴장으로 몰아넣고 있는 ‘김상진 리스트’의 실체를 추적했다.
김상진, 효진 형제의 로비는 한마디로 전방위적이었다.
이미 김상진씨는 검찰에 긴급 체포됐고 김씨 사업과 관련된 공무원과 정치인들의 줄 소환이 예고되고 있다. 당초 문제의 핵심은 친노 인사인 정윤재 전비서관을 비롯한 친노 그룹에 한정돼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한나라당을 비롯한 지역 정가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김씨가 토지 매입 가격을 부풀리고 대출자금을 축소 신고하는 수법으로 수백억원의 돈을 빼돌린 것으로 밝혀져 비자금의 사용처를 놓고 의구심은 증폭되고 있다.
“부산 쑥대밭 될 것”
검찰에 따르면 김씨가 그동안 조성한 비자금은 각종 통로를 통해 최소 500억여원에 이를 것으로 전해진다. 김씨가 이 돈을 모두 비자금으로 관리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이 가운데 적지 않은 규모의 돈이 치밀한 돈세탁 과정을 거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검찰은 계좌추적팀의 지원을 받아 확인된 비자금이 정치권이나 공무원 등에게 ‘로비 대가’로 흘러갔을 가능성을 추적하고 있다. 부산 정가에선 이른바 ‘김상진 리스트’가 회자되며 “비자금이 터지면 부산이 쑥대밭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떠돈다.
김씨는 부산지방국세청장에 이어 재개발 사업지 관할 구청장에게도 금품 로비를 한 사실이 밝혀졌다.
김씨는 정 전비서관의 소개를 받아 만난 정상곤 전국세청장에게 세무조사무마청탁과 함께 현금 1억원을 건넸다.
지난 2000년 총선 때는 부산에서 출마한 노무현 대통령 캠프의 측근 3명에게 접근해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당시 측근 중 한 명은 “김씨가 그 때부터 위험인물로 분류됐다”고 전했다.
김씨의 형인 효진씨는 2002년을 전후해 정 전비서관 등 부산지역 친노인사들이 구성한 ‘비전과 연대21’에 회원으로 가입하는 등 용의주도하게 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치색을 배제한 이 모임에는 친노 인사들 뿐 아니라 대학 교수와 부산시 고위 공무원 등 비노와 반노 인사들도 섞여 있다.
이위준 연제구청장도 왕래가 잦은 식당 입구에서 1억원이 든 돈가방을 받았다가 돌려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연제구는 김씨가 재개발을 통해 대규
모 아파트 사업을 추진한 곳이다.
김씨는 검은색 가죽 여행가방에 1억원 정도의 돈을 담아 식사 자리에서 건네는 방식으로 로비를 벌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 외에도 부산 지역 정가에서는 자치단체장을 비롯 전·현직 국회의원 3, 4명과 지방의원 2,3명의 실명이 거론되며 ‘김상진 리스트’의 존재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조폭과도 연계”
이와 관련 김씨는 지난해 7월 연제구 재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식사자리에서 만난 한나라당 A 의원에게 “팬클럽 회원인데 후원을 하고 싶다”며 후원한도인 500만원을 내기도 했다. 김씨가 자신과 관련된 소송을 맡긴 곳은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이 2003년까지 대표변호사로 있던 법무법인 ‘부산’이었다.
검찰이 김씨의 로비 의혹
을 집중 수사하고 있는 이유는 금융 대출이나 용적률 변경 등 사안이 있을때마다 해당 인사들에게 돈을 건넸을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금까지 알려진 3곳 외에도 추가로 3, 4곳의 재개발사업을 추진해 왔던 것으로 확인돼 사실상 부산 재개발 사업을 싹쓸히 했다는 평가다. 부산 각 지역에 수천억원대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다 대규모 건설회사도 관여해 ‘배후’를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김씨는 연산동 아파트 단지 조성과 민락동 콘도 건설, 초고층 주상아파트를 짓는 재송1구역 재개발 사업을 비롯 영도구와 해운대에서 재개발 사업을 추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더구나 금융기관에서 김씨 개인으로서는 따내기 불가능한 지원을 함으로써 권력 비호설이 오래전부터 퍼져왔다. 일부 과정에서는 주변 조직폭력조직과 연계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김씨 로비 리스트와 관련 일단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곳은 영남지역 친노그룹이다. 노 대통령이 각종 의혹과 관련 “소설 같은 얘기”라고 일축했지만 속속 밝혀지는 사실들은 충격적이다.
막가파식 로비 행태
더구나 정 전비서관은 김씨로부터 2000만원의 정치 후원금을 받은 사실이 밝혀져 두 사람을 둘러싼 논란은 확산되고 있다. 부산지검은 이와 관련 “2003년 3월 정 전비서관이 김씨로부터 정치자금 2000만원을 받은 사실을 확인했으나 정치자금법상 3년인 공소시효가 지나 수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 전비서관이 김씨와 정 전국세청장의 만남을 주선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사례로 금품이 제공됐을 가능성도 완전 배제할 수는 없다.
여기에 정 전비서관은 김씨와의 유착 의혹을 전면 부인해 왔던 터라 친노그룹의 도덕성에 대한 비난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부산 정치권의 한 인사는 이번 사태와 관련 “부산 지역의 건설 사업에 문제가 많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며 “이번 사태의 파장이 어디서 끝날지는 예측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의혹의 당사자인 정 전비서관은 “재개발 등 결정적인 일은 시청과 구청이 한다”며 “인허가와 관련해 뒤져보면 한나라당과 공무원들이 다 나올 것이다”고 화살을 돌렸다.
친노와 비노, 반노에 이르기까지 막가파로 진행된 김씨의 로비 의혹이 어느 정도의 파장을 몰고 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나라당 안경률 의원 전보좌관
김씨 회사 근무
부산을 지역구로 하는 한나라당 안경률 의원은 친척과 보좌관이 김상진씨의 회사에 임원으로 근무했던 것으로 알려져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지역 정가에 따르면 안의원의 친척은 지난 98년부터 2년간 이 회사의 이사로 재직했고 안 의원의 전보좌관은 전무로 근무했다. 두 사람은 지난 98년 재보선과 2000년 총선 때 안 의원을 적극적으로 도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안 의원은 “최근까지 조카와 전보좌관이 김씨 회사에서 근무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며 “김씨와는 아무런 유대관계가 없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