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판도 뒤집을 ‘연정’ 파트너 찾나
2007-09-06 김대현
‘상왕정치’로 표현되는 김대중(DJ) 전대통령의 현실정치 참여에 대해 가장 난감해 할 인물로 노무현 대통령이 손꼽힌다.
노 대통령이 ‘신지역주의’라며 비판한 범여권의 통합작업이 DJ의 힘으로 어느 정도 정상 궤도에 안착했다. 또, 차기 대선주자들이 하나같이 현직 대통령을 뒤로 한 채 전직 대통령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 혈안이 돼 있을 정도다.
민주당 관계자는 “DJ의 정치력에 기대 정치를 하려고 하는 인사들로 인해 동교동 상왕정치는 더욱 힘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무늬만 바뀐 채 17대 대선을 위해 급조된 대통합민주신당을 바라보는 노 대통령의 마음이 착잡할 수밖에 없다. 최근 자신의 정치적 발언을 자제하며 ‘고민’을 하고 있는 배경도 여기서 출발한다.
요즘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을 보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정치적인 발언을 삼간 지 40여일이 훌쩍 넘었다. 친노 인사들도 하나 둘씩 현직을 떠나 민주신당 차기주자 캠프로 속속 진입하면서 임기말 ‘권력누수’ 현상은 점입가경이다.
노 대통령이 걸어온 정치 궤적을 돌이켜 볼 때, 현 상황을 정면돌파하기 위해 ‘암중모색’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가 이처럼 외롭게 임기 후반을 보내는 이유는 스스로가 선택한 정책과 외부 악재들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 의혹사건 연루
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곧 특정 언론과 전쟁을 벌이다시피 해왔다. 국정 운영에 전념하기보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 언론과 대립각을 세우는데 힘을 소비하고 말았다. 그 결과물로 ‘취재지원선진화방안’이라는 조치를 내놓았지만, 정치권도 언론도 여론도 반대입장을 밝히고 있다. 심지어 범여권 대선주자들이 모두 이 방안에 부정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어 노 대통령의 입지는 계속 약화되는 추세다.
입지가 줄어든 노 대통령은 기세를 꺾이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지만 청와대만이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이 제대로 안착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항상 ‘피아’를 분리해 전선을 형성하고 승부수를 던져왔던 그였지만 대통령이 된 이후 승전보를 올린 전과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으로서 다수의 입장을 존중해야하지만, 늘 소수를 대변하며 여론과 괴리되는 지경에 처했다.
한나라당 한 당직자는 “노 대통령이 그동안 추진해온 정책이나 정치적 꼼수가 모두 실패했다”면서 “범여권에서 노 대통령보다 DJ의 입김이 더 세게 먹히는 게 그런 거 때문 아니냐”고 비꼬았다.
‘비장의 카드’로 준비한 남북정상회담도 일정이 연기되면서 체면을 구겼다. 2차 정상회담이 성사될 즈음 북한이 물난리를 겪었다. 10월로 회담을 연기해 놓았지만 돌발변수가 잠재해 있어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치적 판단에 따른 회담 성사라는 비판 속에서도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 했던 노 대통령의 정치력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집권을 장담하면서 차기 정권으로 정상회담을 넘기라고 압박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청와대 관계자들이 잇따라 의혹사건에 휘말려 국민들의 불신을 받는 상황까지 겹쳤다.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은 학력위조 파문의 시발점이었던 동국대 신정아 교수의 학력위조 사건과 관련,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해당 사건을 폭로한 장윤스님에게 신씨 학력위조 사건을 축소할 것으로 요구했다는 것. 청와대와 변 실장은 모두 이러한 의혹을 부인하고 있지만,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변 실장 배후에 더 큰 실세가 자리잡고 있다는 의혹이 추가로 제기되고 있다.
불교계 소식에 정통한 인사는 “동국대 신정아 사건은 불교계 내부의 알력다툼과 연관돼 있는 것 같다. 오현 스님의 이름까지 거론되자, 조계종이 서둘러 봉합에 나선 거 아니겠느냐”고 관측했다.
노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정윤재 전의전비서관이 부산지역 건설업자와 부산국세청장을 연결시켜준 사건도 권력형 비리의혹으로 확산됐다. 노무현 정권이 부패와 게이트가 없는 정부라고 강조해 왔지만 정 전비서관 사건으로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 국세청 권력과 청와대 핵심인사가 건설업자의 청탁과 돈 앞에
서 무너지고 만 것이다.
노 대통령은 또, 차기 유력주자로 거론되는 인사들과도 관계가 좋지 않다. 손학규 전지사에 대해 줄곧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왔고 정동영 전장관과도 관계가 소원하다. 친노진영 후보들이 노 대통령과 관계를 고려해 움직이고 있지만 이들의 지지율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어느 것 하나 노 대통령의 입지를 강화시켜줄 ‘호재’가 없는 상황에서 그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현 시점에서 차기 대선주자를 만들어 내는 사안이 핵심 이슈라는 점을 감안해 보면 노 대통령의 암중모색도 이와 맞닿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노 대통령 차기주자 키워줄까
일각에선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단일화를 꾀했던 정몽준 의원에 대한 언급도 흘러나온다. 지금처럼 범여권에서 마땅한 대항마가 출현하지 않는다면 외부에서 흥행카드를 영입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DJ에 밀려 입을 다문 노 대통령이 다시 마이크를 잡는다면 이런 문제에 있어서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