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 속 항공업계, 사상 최악 위기…“물러날 곳 없다”

국제선 운영률 2% 수준 “1~2년 안에 회복 힘들 것”

2020-04-17     이창환 기자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따른 항공업계 피해가 심각해지고 있다. 대부분 국제선이 날개를 펴지 못하면서 기존 대비 10%를 밑도는 운영률을 보이고 있다.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에 차입금 만기와 항공기 운용리스 비용에 대한 부담에 항공업계가 시름시름 앓고 있다. 반면 정부는 항공 산업 지원을 두고 고민이 크다. 당장 급하다고 지원했다가 돈 떼일까 걱정이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와 금융위원회 등이 지난 2월 실시했던 저가항공사에 대한 지원에 이어 항공 산업 전 분야에 대한 추가 지원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차입금 규모가 타 산업에 비해 적지 않고 올해 안에 운항 수요 회복이 가능할 지 전망을 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지원하기도 힘들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면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항공업계를 비롯해 직접 관련 있는 공항까지 포함하면 직접 고용 인원 8만 명에 관련 종사자만 25만 명에 달한다. 코로나19 확산에 직격탄을 맞으면서 사실상 대규모 휴직 및 인원 감축에 들어갔다. 급여도 제대로 지급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해 이스타항공을 포함한 저가 항공사들까지 대부분 순환 근무 및 무급 휴직에 돌입했다. 이스타항공은 300명 수준의 인력 구조조정을 위한 희망퇴직을 받고 있으나, 현재까지 10여 명 수준의 신청에 그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추가 신청을 받을 예정이다. 

대한항공 직원 1만9000명 유급 휴직

대한항공은 전 직원의 70%에 해당하는 1만9000명에 대한 6개월간 유급휴직에 들어갔다. 자회사인 진에어도 유사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대한항공의 차입금 가운데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금액은 1조5000억 원이 넘는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도 약 1조 원에 달한다.

대한항공은 지난달 총 6000억 원 규모의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하고 당장 이달 만기였던 차입금 2400억 원에 투입했다. 당장 숨통은 트이겠지만 나머지 3600억 원으로 추가적인 회사채 상환과 긴급 자금으로 소모될 것을 가정해 보면 한두 달 버티는 수준에 머무를 전망이다. 

아시아나항공은 HDC현대산업개발의 눈치만 보고 있는 분위기다. HDC현대산업개발은 당초 지난 7일 1조4665억 원을 유상증자할 예정이었으나 이를 연기했다. 업계에서 HDC가 중도 포기를 할 수도 있다는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HDC 측은 이에 대해 변함없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으나, 이날 기준 시가 총액 8695억 원에 이르는 아시아나항공을 2조5000억 원에 인수해야 하는 HDC의 입장에서 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항공 산업이 1년~2년 안에 회복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위기가 국가별 연쇄반응처럼 확산되는데 우리나라만 지원한다고 해서 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승객이든 화물이든 이동하는 문제가 해결돼야 항공기가 뜰 수 있는데 우리나라와 노선으로 연결된 나라들 중에 공항 문을 안 닫은 곳이 없다”고 말했다. 

공항도 면세점도 어렵기는 매 한가지다. 면세점들은 이미 문을 차례로 닫았고, 공항 일부는 불이 꺼졌다. 인천 공항 관계자는 “인천공항 이용객이 하루 기준 1만 명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 이어지며, 영업중단에 준하는 실정에 놓여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인천공항 1일 이용객은 3000여명 내외로 전년 대비 1%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항공업계 발목 잡는 항공기 운용리스

업계는 항공 산업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채권단에 대한 차입금 환급과 이보다 더 큰 항공기 운용리스에 대한 비용 지불이라고 분석했다. 

A 항공사 관계자는 “회사채 만기 연장의 경우 당장 정부가 지원금을 마련하거나 추가적인 자금이 필요한 것이 아니므로 정부의 결정에 달렸다고 본다”며 “항공사들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코로나19 사태가 끝나고 정상 운영이 되면 갚을 수 있는 문제기 때문에 만기만 조금 뒤로 연장해 준다면 어려운 시기를 지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즉 항공사들이 차입금을 낸 주채권은행은 대부분 산업은행이나 수출입 은행 등 국책은행으로, 항공사들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있다면 만기 연장을 해 달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만기연장을 하더라도 항공기 운용리스 비용 지불 문제가 남는다. 게다가 항공기는 전량이 보잉이나 에어버스 등으로부터 수입해 온다.

정부의 깊은 고민은 여기에 있다고 업계는 해석했다. 항공사들은 리스 비용 지불에 대한 기일 연기를 위해 정부에 ‘지급 보증’을 요청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국내 항공기 보유 상황에 비춰볼 때 이런 막대한 금액에 대한 지급보증을 했다가 이른바 ‘돈 떼이는’ 상황이 올까봐 두려워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하는데 우리 정부는 망설여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6일 “정부도 항공업 상황의 심각성을 알고 있지만 대기업이 국책은행의 도움을 받으려면 대주주 자구노력이 전제돼야 한다”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대형 항공사에게 자구안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대한항공은 조원태 회장이 지주사인 한진칼의 주주총회 등을 거치며 사모펀드 KCGI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연합 세력에 맞서 겨우 경영권을 유지했다. 지분 1%가 아쉬운 상황에 내밀 수 있는 카드는 없고, 비핵심 자산 매각외에 방법을 찾기가 힘들다. 아시아나항공은 HDC에 인수가 완료된 것도 아니고 아직 어중간한 입장이다. 정부가 말하는 대주주 자구안을 찾기는 불가능하다.

업계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항공업계가 코로나19 때문에 출혈이 심한 상황인데, 정부가 수혈은 안 해주고 줄넘기를 던져주면서 ‘기초 체력을 키워봐’라고 하는 상황”이라며 “항공업계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은 지난 15일 항공업계에 250억 달러(약 30조 원) 투입을 발표하고 75만 명에 달하는 항공업 종사자 고용 유지를 위한 지원에 나섰다. 지원금을 받으면 오는 9월까지 직원 정리해고와 급여 삭감을 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우리 항공업계가 부러워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