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과 악수 뒤에 비수 감췄다

2007-05-10     김승현 
루비콘강에 선 한나라당

승자 없는 싸움의 연속이었다.

잠시 휴전에 들어갔지만 ‘승자’도 ‘패자’도 없는 지루한 경쟁에 감정의 골만 깊어졌다. 지난 4월 재보선 참패 이후 이명박 전시장과 박근혜 전대표 진영의 기싸움은 절정에 올랐다. 선거 당일까지 아웅다웅했던 이들이기에 당 지도부 사퇴를 둘러싼 갈등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선거 결과가 ‘참패’로 발표된 직후만 잠시 소강상태를 가졌을 뿐이다.

하지만 선거 결과 원인을 놓고 곧바로 불이 붙었다. MB진영을 비롯, 당 내부에선 강재섭 대표 책임론이 제기됐고 이재오 최고위원은 ‘사퇴’를 이야기하며 당 상황을 긴장으로 몰아갔다.

당의 고위관계자는 선거 결과에 대해 “어쩔 수 없었다. 두 사람의 인기로도 역부족이었다”고 털어놨지만 이미 불이 붙을대로 붙은 대결 전선은 식을 줄 몰랐다.

강창희 전여옥 두 최고위원과 전재희 정책위의장의 사퇴는 이런 상황에 기름을 부었다. 빅2간 싸움이 국민들에게 질리기 시작했다는 ‘부르짖음’도 대권을 향한 권력 싸움 앞에선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일단 양 진영은 재보선 패인을 꼽는 것에서부터 상당한 인식차를 보여줬다. MB진영은 박 전대표가 공동 유세를 회피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박 전대표는 행정수도이전을 반대했던 이 전시장과 공동유세를 했더라면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을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친박 성향의 강재섭 대표를 껄끄러워했던 MB 진영에서는 강대표 책임론이 세를 얻기 시작했다. 선거에 참패했다면 당 대표가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대선 정국과 8월 경선을 이유로 ‘대표 책임론’의 약발은 거의 없었다.

강 대표 또한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박 전대표 진영도 MB측의 도발이라며 발칵 뒤집혔다. 한 캠프 인사는 “강 대표를 어떻게
세웠는데…”라며 “대표 책임론은 박 전대표를 뿌리째 흔드는 행위”라고 말했다. 최악의 경우 지도부 총사퇴까지는 가능해도 대표 혼자 ‘십자가’를 지는 것은 반드시 막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MB진영은 이 최고위원이 ‘선봉장’이 돼 지도부를 강력하게 압박했다. 사태 수습을 위해 뛰어든 해결사는 이 전시장, 자신이었다. 그는 당초 일정을 취소하면서까지 이 위원 설득에 나섰다.

이런 극단적인 선택은 MB측이 바라는 해답이 아니었다. 강 대표가 내려가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었지만 자칫하면 당을 깨려고 한다는 올가미를 혼자서 써야 할 처지였다.

이에 반해 친박진영에선 “그럴거면 이 참에 나가도 큰 문제는 없다”는 이야기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자 다급해진 쪽은 이 전시장이었다. 캠프 안에서도 “이 최고위원이 지나치게 치고 나가 입지만 좁아졌다”는 볼멘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이 전시장은 이 위원을 일단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이 위원은 이에 대해 “큰 그릇은 깨끗한 물, 더러운 물 가리지 않고 담아야 한다는 이 전시장의 ‘큰그릇론’과 ‘희생론’으로 내 입장을 접었다”고 설명했다.

이 전시장과 박 전대표, 그리고 강 대표는 지난 4일 오후 당사에서 만나 당의 단결에 의견을 함께 했다. 표면적으로는 모양새 좋게 봉합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양 캠프 진영의 실제 분위기는 좀 다르다. 이 전시장측은 “박 전대표측이 의도적으로 분위기 몰이에 나서고 있다”며 “일단 해결은 됐지만 자꾸 이런식으로 하면 정말 곤란하다”고 말했다.

박 전대표 측도 화해 분위기에 동참하긴 했지만 떨떠름한 것은 마찬가지다. 캠프의 한 관계자는 이 위원의 말을 겨냥, “물이면 같은 물이지 더러운 물은 또 뭐냐”면서 “같은 당 사람들을 이렇게 표현하는 게 정상적인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단순히 ‘봉합’ 수준에 머문 또 다른 이유는 경선 룰 등을 놓고 향후 첨예한 갈등이 예상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