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발급 퇴짜 “아! 옛날이여~”
2007-05-04 김대현
김대중 전대통령의 분신격인 민주당 권노갑 전고문이 미국 비자신청을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이에 따라 권 전고문측은 재신청을 해놓은 상태지만 지난 2월 사면조치만 받은 터라 그의 미국행(行)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권 전고문은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특단의 대책’을 세웠다고 한다. 미국 고위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운 배 모사장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 배 사장측은 “조만간 권 전고문이 비자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긍정적인 결과를 예상했다.
권 전고문은 출소 직후 강남 소재 어학원에 등록하고 영어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희수의 나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못다한 꿈을 이루기 위해 ‘학생’으로 돌아간 것.
미국 방문을 그토록 원하고 있는 것은 미국 현지에서 동시통역 과정을 이수하기 위해서란다. 하지만, 권 전고문이 미국 방문길을 고집하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어린 시선도 없지 않다. 미국 정치권에서 DJ 비자금 등에 대해 아직도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저 꽃이 피어야 10일을 못 넘긴다고 하지만, 이 꽃만은 날도 없고 봄바람도 필요없다네(지도화무십일홍(只道花無十日紅), 차화무일무춘풍(此花無日無春風).”
중국 송(宋)대 시인 양만리가 ‘월계’라는 꽃을 칭송하며 부른 시구 중 한 소절이다. 그러나 후대에 와서 ‘화무십일홍’에 ‘세불십년장’(勢不十年長)을 붙여 권력의 허망함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고사성어로 자리잡았다.
최근 김대중 정권 막후에서 최고의 권세를 누렸던 민주당 권노갑 전고문이 지난 3월 미국 비자발급 신청서를 냈다가 거부당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이 고사성어가 회자되고 있다.
미국대사관 비자발급 거부 통보
권 전고문은 최근 서류를 보완해 미국대사관에 다시 비자신청을 해놓은 상태지만, 한편으론 ‘권불십년’이라는 옛말을 절감하고 있을 터다.
권 전고문측 관계자는 “얼마 전 미국 대사관에 비자신청서를 냈는데, 심사과정에서 결격 사유가 생겨 거부됐다”며 “하지만 서류를 보강해서 재신청을 내놓았기 때문에 조만간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 전고문은 지난 2월 7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 4주년 기념 특별사면에 포함돼 의정부 교도소와 ‘작별’을 고했다. 권 전고문은 형집행면제 특사로 풀려났을 뿐 복권되지는 않았다.
김성호 장관은 당시 박지원 전장관과 권노갑 전고문이 복권되지 않은 것과 관련, “병이 악화돼 수형생활이 어려운 상태여서 잔형을 면제하는 정도는 괜찮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복권을 통해 정치활동까지 재개하는 것은 국민정서와 거리가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권 전고문의 미국행은 사실상 어려워지게 됐다. 미국에서 바라볼 때 사면과 복권은 ‘용서’의 개념이지 불법 행위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권 전고문은 권력의 핵심부에 있으면서 대형 비리사건의 ‘단골손님’으로 등장해 여러 차례 곤욕을 치렀다.
그는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으로부터 불법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돼 정권 교체의 순간을 옥중에서 지켜봐야 했다. 2002년 5월에는 진승현씨로부터 5,000만원을 받는 등 이른바 ‘진승현 게이트’에 연루돼 다시 구속됐다.
진승현 사건에 대한 항소심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아 명예를 회복하는 듯했지만 한 달 뒤 다시 현대비자금 사건에 연루돼 교도소에 수감됐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지난 2월 특사에 포함돼 교도소와 ‘악연의 사슬’을 끊었다.
권 전고문은 출소 후 그동안 생각만 해왔던 동시통역사 공부를 위해 주변을 정리하고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자신의 ‘전과’가 걸림돌이 된 것이다.
권 전고문은 지난 3월 <일요서울>과 인터뷰에서 “평소 하고 싶었던 영어공부를 시작했다”면서 “동시통역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미국에 유학도 다녀오고 싶다”고 언급했다.
그는 지난 3월 5일부터 강남 L어학원에서 통역대학원 왕 기초반에 등록하고 매주 3차례 학원 강의를 수강하면서 대학원 진학 및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그의 측근은 “학원 등록을 한 이후 단 한차례도 결석을 한 적이 없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권 전고문측은 조만간 비자발급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미국측에서 바라보는 문제점들은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해명자료를 첨부해 놓은 상태라는 것.
과거에도 권 전고문과 유사한 ‘케이스’는 없지 않았다.
정대철 전대표도 지난 2005년 미국 비자발급이 한 차례 거부된 적이 있다. 정 전대표의 측근은 “당시 사면복권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비자를 받는데 전혀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문화적 차이로 인해 미국에서 인식하는 부분이 달랐다. 나중에 이러한 내용을 담은
서류를 더 첨부해서 유학비자를 받아냈던 걸로 기억된다”고 했다.
정 전대표는 이후 미국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연구원으로 1년 동안 활동한 바 있다.
권 전고문은 미국 비자를 받기 위해 ‘조력자’의 힘을 빌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유학에 강한 집념을 보이고 있다.
미국통에게 비자 관련 ‘도움 요청’
지난 3월 말, 미국 고위 인사와 친분이 두터운 배 모사장에게 비자 발급과 관련, 도움을 요청한 것.
배 사장의 한 측근은 “3월달에 권노갑 고문이 비자발급과 관련해서 이쪽(배 모사장)에 도움을 요청해왔다”면서 “아마도 잘 처리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권 전고문은 최근 범여권 인사들과 잇따라 골프회동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김대중 전대통령의 동교동 사저에도 자주 출입하고 있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