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21대 총선전략, 열여덟번째 인물탐구:김민석 복권과 부활, 그리고 대권

2020-03-06     이경립 편집위원

21대 총선거가 40일 앞으로 다가왔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총선거를 연기하자는 논의도 있는 듯하나 전쟁 중에도 선거를 치렀던 경험으로 볼 때, 총선거가 연기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래서인지 각 당은 지역구에 출마할 후보자들에 대한 공천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선거는 공천으로부터 시작된다. 특정 선거구에 강한 정당이 존재하고, 정당 충성심이 강한 우리나라 유권자들을 고려하면, 어느 선거구에 누가 공천되는가 하는 것은 거의 당락을 좌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세력을 확대하려고 하는 정당들은 대권 후보나 중진들에게 험지 출마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를 거부한 홍준표, 김태호 두 전직 경남지사는 미래통합당 공천에서 탈락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비례대표 의석을 두 자리 이상 차지하기 어려운 입장에 처한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 공천에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가급적 공천 리스크를 적게 하여 당의 단합을 유지하고, 본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예비후보자 간 경선이 중요하다. 경선은 무소속 출마를 원천 봉쇄할 수 있고, 경선과정을 통해 당세를 확대할 수도 있다.

지난달 26일 늦은 밤, 더불어민주당은 1차 경선지역에서 승리하여 공천을 획득한 후보자를 발표했다. 그 발표에서 어느 선거구보다도 주목을 끈 선거구는 영등포을 선거구였다. 영등포을 선거구는 재선의 신경민 의원 지역구로 그는 2012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민주통합당에 영입되어 3선의 새누리당 권영세 의원을 물리치고 고토를 회복하였다.

그 후 그는 초선임에도 민주당 최고위원을 역임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그런 신경민 의원이 경선에서 패했다. 신경민 의원을 경선에서 패배시키고 더불어민주당의 공천을 획득한 사람은 김민석 전 의원이었다. 김민석 전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에 정식으로 복권(復權)되는 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영등포을 선거구의 원래 주인은 김민석 전 의원이었다. 그가 처음 민주당 공천을 받아 영등포을 선거구에 출마한 것은 1992년 14대 총선거 때이다. 강산이 세 번 바뀔 만큼 오래전의 일이다. 만 27세에 출마한 14대 총선거에 285표 차로 낙선했지만, 15대와 16대 총선거에서 연거푸 당선되었고, 그 여세를 몰아 2002년에는 서울시장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그 뒤 김민석 전 의원의 정치역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2002년 대선에서 민주당을 탈당, 정몽준 후보를 지지하면서 후보단일화를 이루었고, 노무현 대통령이 탄생하는 데 일등공신이 되었지만, 정작 자신은 배신의 아이콘(icon)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민주당으로 돌아왔지만 민주당의 주류는 열린우리당이라는 딴 살림을 차렸고 그는 함께 할 수 없었다.

17대 총선거에서는 민주당에 남아 영등포갑 선거구로 전장을 옮겼지만 낙선, 18대와 19대 총선거에서는 통합된 민주당에서 공천 배제라는 아픔을 겪었고, 20대 총선거에서는 2014년 안철수 세력과의 통합에 반대하여 새롭게 민주당을 창당 비례대표 2번으로 나서는 정치적 기행(奇行)을 보였지만 또다시 낙선했다. 그런 그가 현역인 신경민 의원을 물리치고 경선에서 승리하여 더불어민주당의 공천을 받았으니 얼마나 감개가 무량할 것인가?

1964년생인 김민석 전 의원은 작년 12월 재혼했다. 인생 2막을 연 것이다. 그가 다가오는 총선에 승리한다면 정치 2막의 개막이 될 것이다. 정치적으로 완전히 부활(復活)하는 것이다. 그의 정치 동기생들인 정세균, 추미애, 김무성, 홍준표, 천정배, 정동영 등은 이번 총선에서 불출마하거나 정치인생을 접어야 할 위기에 놓여 있다. 상대적으로 젊은 그는 정치 2막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가 이번 총선에서 승리하면 차기 대권은 그를 중심으로 그려질 수도 있다. 정치적 복권을 넘어 정치적 부활 그리고 대권까지, 정치가 마약과 같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