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공백 매울 백·용·호 신임국세청장

“법과 원칙에 따라 청렴성과 도덕성 유지하겠다”

2009-07-14     이범희 기자

백용호(52) 공정거래위원장이 신임 국세청장으로 발탁됐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그림 로비’ 및 ‘청탁성 골프 물의’등으로 물러난 지 만 6개월만의 일이다. 백 신임청장은 지난 8일 인사청문회를 통해 그간의 의혹(?)에 대한 해명을 하고, 임명됐다. 백 청장의 내정 배경으로는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재임하면서 공정거래 업무 선진화와 조직을 성공적으로 관리해 국세행정의 변화와 쇄신을 이룰 수 있는 적임자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요서울>은 오랜 기관 공백이 유지됐던 국세청의 새 수장으로 발돋움 하는 백용호 신임 국세청장에 대해 알아본다.

백용호 신임 국세청장이 포부를 밝혔다. “국세행정을 법과 원칙에 따라 공평하고 투명하게 운영해 나가겠다”는 것.

백 청장은 지난 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세청장 인사청문회에 참석, 모두발언을 통해 “국세청이 징세행정기관으로서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이 같이 말했다.

세무조사와 관련해서도, 백 청장은 “세무조사는 법과 원칙에 따라 성실신고 유도라는 본래의 기능에 충실하게 운영해 나가도록 하겠다”며 “세무조사 대상 선정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개선방안을 강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백 청장은 “탈세자에 대해서는 조사를 실시해 선진 법질서를 확립하겠다”며 “고소득 탈세자, 허위 세금계산서 수취자 등 고의적·지능적 탈세자에 대한 조사를 지속적으로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국세행정 운영시스템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서도, “청렴성과 도덕성은 필수적인 덕목”이라며 “이를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해 감사와 감찰 기능이 국민 시각에서 수행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백 청장은 “인사시스템을 개선, 공정한 평가가 가능하도록 성과평가시스템도 개선해 나가겠다”며 “오직 성과와 능력에 따라 인사가 실시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성공하겠다는 각오로 공부

백 청장은 1956년 충남 보령의 한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장사로 집안을 일구셨다. 그가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심장병을 앓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 손에서 자라야만 했다. 그는 지금도 할머니와 손을 잡고 아랫마을 장에 갔다가 버스를 놓쳐, 어둑한 산길을 두려움을 떨며 오르던 기억을 위클리경향과의 인터뷰에서 밝힌바 있다. 그 내용을 토대로 과거 그의 흔적을 따라가 본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그는 고모가 있는 군산으로 이사했다. 남성고등학교를 다니며,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각오로 공부했다. 이를 악물었다. 무조건 성공이 그의 목표였다.

넓은 세상에 나가겠다는 결심을 한 번도 버린 적이 없던 백 청장은 서울에 있는 중앙대학에서 전국의 우수한 학생을 선점하기 위해 내놓은 특차 전형에 합격했다. 학비는 물론 생활비 걱정 없이 대학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는 1980년 정경대 수석으로 졸업했다.

곧바로 외환은행에 취직했다. 하지만 당시 임철순 중앙대 이사장의 권유로 은행을 그만두고 유학길에 올랐다.

1982년 미국 뉴욕 주립대에 진학했고, 여기서도 우수 학생으로 장학금을 받았다. 그는 이런 인연 때문에 “살아오면서 학교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주식 가격 결정에 관한 이론을 주제로 한 그의 박사논문은 뉴욕주립대 최우수 논문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은행을 중심으로 한 돈의 흐름과 증권을 중심으로 한 돈의 흐름이 어떻게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컸기 때문에 자연히 그쪽으로 공부를 해나간 것이다.

1985년 12월 귀국한 그는 이듬해 3월 이화여대 교수가 됐다. 당시 백 청장의 나이는 만 서른이었다. 이화여대의 최연소 남자교수였다. 여대의 특성상 백 청장의 학교생활은 남달랐다.

짓궂은 학생들의 곤란한 질문도 쏟아졌다.

이후 1989년 창립된 경실련에 멤버로 참여했다. 당시 한국 경제가 호황을 누렸지만 부동산 투기의 기승으로 아파트값과 땅값이 폭등하고, 차명계좌 개설 등을 통한 음성적 돈의 흐름이 횡행하자 뜻있는 경제학과 교수들이 뭉쳤다. 백 청장은 경실련 상임집행위원 및 국제위원장을 맡으며 언론을 통해 얼굴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다수의 성실한 사람에게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불로소득을 차단하고 금융 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가 절실했어요.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다른 분들과 함께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요. 김영삼 정부가 1993년 금융 실명제를 전격 도입한 것은 우리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사건이었고, 경실련이 거둔 행복한 수확이기도 했어요”라며 당찬 모습을 보였다.

IMF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그는 대통령소속 자문기관인 21세기위원회(현 정책기획위원회) 정책개발위원장으로 발탁됐다. 그러나 그는 “당시 한국의 정치 상황이 워낙 급박하게 돌아갔고, 관료 사회 속에서 자문 역인 내가 의견을 강력히 전달할 수 있는 채널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치보단 MB 배우고 싶어

이때부터 백 청장은 잠시 표류기를 갖는 듯 했다. IMF 외환위기와 김대중 정부와의 꼬인 실타래가 쉽지 않았다.

이후 그는 정치권의 제의로 1996년 총선에 도전했다. 하지만 신한국당 후보로 서대문구에 출마했다가 국민회의 장재식 의원에게 패했다. 정치에 뜻이 없었던 그는 마지막까지 출마를 고사하다가 막판에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낭패를 본 셈.

“21세기위원회 활동을 하고 라디오 진행은 물론 TV 출연이 잦으니까 당에서는 제가 꽤 정치적 성향이 있는 인물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아요. 결국 이대에 사표까지 쓰고 출마했는데 낙선하고 나니까 허망했죠. 두 달간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오기가 생겼어요. 이왕 나섰으니 제대로 뛰어들어보자 결심했지요. 지구당 위원장직을 그대로 갖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정치를 시작했어요.” 백 청장이 이명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도 이 때즈음이다.

이 대통령은 종로에서 출마해 당선됐지만 선거법 위반으로 결국 국회의원직을 내놓고 낭인이 되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가장 어려웠던 이때 이 대통령에게 손을 내민 사람이 백 청장이다.

“전부터 이 대통령에게 호감이 있었기 때문에 도움이 되고 싶어 다가갔다”는 게 백 위원장의 설명이다. 이후에도 국회의원직은 반납하고 어려운 상황에 놓인 이 대통령이 설립한 동아시아연구원 원장이 됐다. 비상임으로 월급도 받지 않고 일했다.

그는 동아시아연구원장으로 일하면서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출마 당시 내세운 공약을 주도적으로 생산해냈다.

2002년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에 취임하자 그는 핵심 브레인으로서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이 됐다. 그는 재임 당시 박사급 연구원을 대거 영입함으로써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을 명실상부한 서울시의 싱크탱크로 만들었다. 청계천 개발, 대중교통 개편, 시민의 광장 조성, 뉴타운 개발 등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일군 굵직굵직한 업적이 시정개발연구원을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시정개발연구원장으로 일한 3년간 행복했어요. 다만 워낙 부지런한 시장 밑에서 일을 하다 보니 육체적으로는 좀 힘들더라고요. 하루 5~6시간 마라톤 회의는 다반사였어요. 어떤 사람은 청계천 복원사업이 날림이었다고 비난하지만, 이 대통령은 벽돌 한 장 쌓는 일에도 한 치의 오차가 없도록 치밀하고 꼼꼼하게 챙기셨습니다”고 모월간지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 대통령이 시장 임기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대선전에 뛰어든 2006년 6월부터는 바른정책연구원(BPI) 원장으로 학계의 MB맨들을 규합해 대선공약을 개발하며 뒷받침했다.

바른정책연구원은 유우익 청와대 대통령실장이 이끈 국제정책연구원(GSI)과 함께 이 대통령의 양대 정책자문 그룹으로 꼽힌다.

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도 경제1분과 위원으로 활동했다. 이런 경력 때문에 그가 현 정권의 경제팀에 주요한 일을 맡을 것이라는 예측은 인수위 시절부터 나왔다.


신임 청장 행보에 이목 집중

요즘 백용호 국세청장은 또 다시 업무 돌입을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공정거래위원장을 맡을 당시도 그랬고, 지금도 업무를 완벽히 이해하고 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그동안 6개월의 공백기를 갖은 청장 자리에 부담을 꼼꼼함과 세심함으로 타결하겠다는 의지다.

때문에 내부적으로도 그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일반인과 재계 또한 마찬가지다. 비록 어려운 경제상황과 4대 권력기관으로 치부되는 잘못된 시각에 새로이 임명됐지만, 모든 불신에서 새로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이가 많다. 국세청장으로 발탁되는 그의 새로운 행보에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백용호 프로필

▶1956.09.02 충남 보령 출생
▶1980 중앙대학교 경제학 (학사)
▶1983 미국 뉴욕주립대학교 경제학 (석사)
▶1985 미국 뉴욕주립대학교 경제학 (박사)

경력 -
▶ 1993. 경실련 상임집행위 및 국제위원장
▶ 1994. 대통령자문 21세기위원회 위원
▶ 1996 ~1998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 2002~ 2004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원장
▶ 2005. 이화여자대학교 정책과학대학원 교수
▶ 2006.10 재정경제부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위원
▶ 2008.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위원회 위원
▶ 2008.03 공정거래위원회 제14대 위원장
▶ 2009.06. (현) 국세청 청장

저서 -
▶ 1992. 증권금융론`
▶ 1997. 돈의 경제학`
▶ 2000. 금융증권 시장론`(공저)

상훈 -
▶ 1986 미국 뉴욕주립대 최우수논문상`
▶ 2008.12 자랑스러운 중앙인 (중앙대 동창회)

[이범희 기자] skycros@dailysu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