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올림픽 ‘첫 금’유도 최·민·호

‘한판승의 사나이’ 가난과 설움 메쳤다

2008-08-21     윤지환 기자

지난 5일 베이징에 도착한 뒤부터 “행복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다시피 한 최민호(28.한국마사회)의 `행복 예감‘이 적중했다. 남자유도 60kg급에 출전한 최민호는 한국에 첫 금메달을 안겼다. 결승전까지 5경기를 합쳐 최민호가 매트에 선 시간은 7분40여초에 불과했다. 그는 트레이드마크인 손가락 세리모니를 보인 뒤 그대로 엎드린 채 울음을 터뜨렸다. 최민호의 눈물은 메달을 목에 걸고도 그칠 줄 몰랐다. 그동안 ‘동메달의 사나이’로 불리며 힘든 시간을 보낸 그는 끝없는 눈물로 모든 여한을 씻으려는 듯 했다. 아테네 올림픽에서 5연속 한판승으로 금메달을 땄던 이원희는 선배 최민호에게 “진정한 한판승의 사나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한 경기, 또 한경기가 끝날 때 마다 그는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한판승의 기쁨을 순박한 웃음과 손가락 흔들기로 표현했다. 5번 한판승을 거뒀고, 5번 ‘손가락 세리머니’가 나왔다.

그리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 9일 베이징올림픽 유도 남자 최경량인 60㎏급에 나선 최민호는 금메달까지 5경기를 한판으로 시작해 한판으로 끝냈다. 1회전 부전승에 이어 2회전 미겔 앙헬 알바라킨(아르헨티나), 3회전 마소드 아콘자데(이란), 8강 상대였던 리쇼드 소비로프(우즈베키스탄)가 모두 최민호의 업어치기에 나가 떨어졌다.

상대를 뽑아드는 힘이 웬만한 중량급 선수와 맞먹는 그의 괴력 앞에 상대 선수들은 ‘업어치기를 한다’는 것을 알고도 속수무책이었다.


마인드컨트롤이 최대 무기

4강전부터 상대도 그의 업어치기를 경계했다. 최민호도 이를 알았다. 지난해 세계선수권 우승자인 루벤 후케스(네덜란드)를 경기 시작 24초 만에 기습적인 다리잡아 메치기로 돌려세웠다. 후케스는 업어치기를 피하다가 다리가 잡혔다.

결승전은 현 세계 1위인 루드비히 파이셔(호주)와 맞붙었다. 하지만 최민호의 기세는 멈추지 않았다. 파이셔조차 최민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최민호는 업어치기를 노리는 듯한 몸동작으로 상대를 유도한 뒤 4강전에 선보였던 다리들어 메치기를 기습적으로 작렬시켜 2분14초 만에 한판승을 이끌어냈다.

유도의 꽃이라고 불리는 한판승 행진, 대한민국 첫 금메달, 동메달징크스 탈출 등 최민호의 금메달 획득은 관전 포인트로 가득했다. 그만큼 그에게 국민적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최민호는 금메달이 아니면 안 된다는 각오로 배수의 진을 쳤다.

그래서 그는 서우두국제공항 입국 인터뷰에서 그랬고 지난 6일 첫 훈련에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또 4강에 오른 뒤 대회조직위원회와 가진 퀵 인터뷰에서도 “나는 매우 평온하다(I was very peaceful)”이라고 말했다.

최민호는 이미 마인드컨트롤이 완벽하게 된 상태였던 것이다. 때문에 그에게 긴장, 초조, 불안은 없었다. 그런 그가 금메달은 딴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체중조절에 실패해 동메달에 그친 것이나 이후 실망감을 이기지 못하고 2005년 세계선수권대회에도 구경꾼 신세가 된 이유들을 따져보면 마음에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할 만 하다.

대표팀에서도 손꼽히는 연습벌레로 유명한 그는 큰 대회를 앞두고 ‘준비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하는 불안감에 오히려 준비에 차질을 빚거나 본 경기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대회에 앞서 최민호는 “정말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훈련하면서 선수로서 행복한 순간들을 맛봤다”면서 “이번에는 오히려 부담이 너무 없어 걱정”이라고 거듭 말했다.


지옥훈련 통해 집념 키워

큰 경기를 앞두고 스스로 ‘행복하다’며 자기 최면을 걸었던 최민호는 결국 자신과 싸움에서 이기면서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 최민호가 상대를 메칠 수 있었던 것은 마인드컨트롤을 통한 컨디션 조절 덕분이다.

‘한판승의 사나이’ 최민호의 금메달 소식을 누구보다 기뻐한 사람은 소속팀 금호연 감독(스포츠조선 해설위원)이었다. 최민호의 오늘이 있기까지 금 감독의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 감독은 최민호가 오늘날 화끈한 업어치기와 메치기 기술의 달인이 된 비법을 ‘성격 개조’에서 찾았다.

금 감독은 “최민호는 성격이 착하고 내성적이다. 그런 성격은 경기력에서 투혼을 발휘하는데 장애가 된다”며 “그래서 그의 성격을 고치야 제대로 된 기술이 나올 것이라 판단하고 성격개조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

금 감독은 고심 끝에 최민호를 불러 특별훈련을 시켰다. 금 감독은 “민호에게 상대를 무자비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세게 메치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수없이 메치는 훈련을 반복했다. 던질 때는 상대가 아프다는 느낌이 들도록 던지라고 야단도 많이 쳤다”고 회상했다.

금 감독의 판단은 적중했다. 이런 훈련을 통해 최민호는 하루가 다르게 기량이 향상됐다. 반복된 훈련 속에 몰라보게 성장했다.

하지만 이 훈련은 양날의 칼이었다. 너무 무리했던 탓에 2006년 4월 어깨근육이 찢어져 그해 6월에 열린 도하아시안게임에 나서지 못했다.

금 감독은 “당시 민호의 어깨근육이 60% 찢어졌다. 더 찢어지면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때 고민을 많이 했다. 아시안게임을 포기하는 대신 올림픽에 올인 하자고 민호와 상의 끝에 결정을 내렸다. 그 판단이 적중했다”고 말했다.

시련과 고통 속에 딴 금메달. 제자가 베이징에서 보내온 낭보에 금 감독은 “정말 올림픽이란 큰 무대에서 이렇게 잘 해 낼지 몰랐다”고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날 베이징과학기술대학 체육관 2층 관중석에서 마이크를 잡고 해설한 이원희도 선배 최민호가 전 경기 한판승 행진으로 끝내 금메달을 획득하자 “이미 예견된 일”이라며 기뻐했다.

아테네 올림픽 때 5경기 중 네 경기를 한판승으로 장식하고 챔피언에 올랐던 이원희는 “국내에서 연습하는 걸 본 뒤 누구도 이길 선수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 체급 올려 도전

2003년 오사카 세계선수권대회 때 최민호와 나란히 금메달을 사냥했던 이원희는 이어 “민호 선배는 한판으로 넘길 수 있는 기술이 너무 많다. 특히 자신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얻은 것이기에 더욱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원희는 이어 “상대의 힘을 이용하는 민호 선배의 업어치기 기술은 자신이 개발한 것”이라며 “뼈를 깎는 체중 감량 고통을 이겨낸 감동적인 금메달”이라고 전했다.

최민호는 기자회견에서 “큰 대회마다 3등만 하면서 정신병에 가까울 정도로 힘든 시기를 겪었다. 지금 보면 금메달을 따려고 그런 고생을 했나보다 생각 된다”고 떠올리며 “힘들 때 마다 힘이 돼준 가족, 특히 새벽 4시마다 일어나서 새벽기도를 드린 어머니께 감사드린다”며 기쁨을 돌렸다.

한편 최민호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2012 런던 올림픽에 체급을 66㎏급으로 올려 금메달을 따겠다는 것이다. 한국 유도 사상 아직 같은 체급으로도 올림픽 2회 연속 우승을 차지한 예가 없다. 2012년 만 32세가 되는 새로운 한판승의 사나이, 최민호의 당찬 도전이 기대된다.


#최민호 프로필

▶생년월일=1980년 8월 18일
▶신체조건=1m63, 65㎏
▶혈액형=AB형
▶학력=김천 모암초→김천 석천중→경산 진량고→용인대
▶소속=한국마사회
▶가족관계=2남 1녀 중 첫째
▶유도시작 계기=초등학교 5학년 때 사촌형과 놀기 위해
▶주요성적=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2위,
2003년 오사카세계선수권 1위,
2004년 아테네올림픽 3위,
2007년 브라질세계선수권 3위,
2008년 베이징올림픽 1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