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드 인터뷰-북한문제 전문가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
“제2의 금강산 총격사건 또 발생한다”
2008-07-17 윤지환 기자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전 안기부장 특보)는 조갑제, 황장엽과 더불어 대표적 보수논객으로 꼽힌다. 동시에 그는 북한에 관한 최고의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는 인물이다. 이 대표는 90년대 초 김영삼 정부 때 발생한 ‘훈령 조작사건’으로 불명예스럽게 대북관련 업무에서 손을 떼긴 했지만, 여전히 보수단체를 대표하는 북한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일부에선 이 대표를 골수 반북인사로 낙인찍기도 한다. 이에 대해 그는 “보다 효율적으로 대북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게 어떻게 반북인가”라고 반문한다. 무조건 퍼주기에 동조하지 않으면 반북인사라고 규정하는 이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는 게 이 대표의 말이다. 또 이 대표는 김대중 정부 시절 이뤄진 햇볕정책에 대해 일부 공감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면 돕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다만 돕더라도 그 명분과 효율성이 분명해야 한다고 김 대표는 강조한다. 이 대표는 그런 점에서 현 정부의 대북 사업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대북관계는 장기적으로 볼 때 전혀 발전을 이룰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대표는 “현재 북한의 식량난을 고려하면 북한을 도와야 하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북한체제의 변화가 없는 한 우리 쪽의 무조건적인 도움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또 이 대표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이 대표는 “각 정부의 정책이 세워지면 그 정책을 이끌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렇다 할 전문가가 없다”며 “국민은 북한의 핵개발로 정신적 충격을 받은 상태다. 이때 국민의 불안을 불식시킬 수 있는 효율적인 대북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에 따르면 정부의 최근의 움직임은 분명하게 한 가지 필연적인 일의 진행을 예고하고 있다. 머지않아 쌀을 주로 하는 식량과 비료의 대북지원이 재개될 것이라고 이 대표는 내다봤다.
그러나 이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끄는 새 정부의 대북정책이 과연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며 “지금 외교부와 통일부는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놓았던 ‘비핵-개방-3000’ 구상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해석이 일정하지 않아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대북정책 개선책은 무엇일까.
김 대표는 북한의 식량난과 그에 대한 정부정책의 방향을 설명했다.
북한 식량난 정치적으로 활용
“북한은 이미 식량난을 극복할 수 있는 해법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를 실행에 옮기지 않고 있다. 왜 그런가 하면 바로 정치적 문제 때문이다. 중국은 과거 북한과 똑같은 상황에 직면했었다. 사회주의식으로 집단농장을 운영하면 식량생산 감소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안 중국 공산당은 이를 농지 개인할당제로 극복했다. 덕분에 오늘날 중국은 식량자급자족을 넘어 해외로 수출까지 한다.”
이 대표는 북한의 식량난이 가깝게는 농업정책, 멀게는 경제정책의 실패에 인한 것으로, 근본적 차원에서 농업정책과 경제정책에 메스가 가해지지 않는 한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이 대표는 한 인사의 증언을 소개했다. 북한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농업과학원> 연구원이었다가 1990년대 초 탈북, 중국을 거쳐 남한으로 넘어 온 이민복씨의 증언이다.
그는 <농업과학원>에서의 연구와 실험 결과 식량난을 해소시키는 방안을 발견했다. 그것은 북한의 ‘집단농(集團農)’ 방식을 ‘개인농(個人農)’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이민복씨는 북한의 식량난의 주범(主犯)은 농민들의 소유 본능을 박탈하여 증산의욕을 잠재운 집단농 방식의 농사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험 결과, 그는 농사방식을 개인농으로 바꾸면 3~4배의 수확증가가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 같은 사실을 적은 편지를 작성, ‘<조선노동당> 중앙
당 제1호(김일성을 지칭)’ 앞으로 발송했다.
이민복씨는 자신의 노력을 치하하는 포상이 내려질 줄 알았다. 하지만 며칠 뒤 그에게 돌아온 것은 뜻하지 않은 것이다. <조선노동당> 중앙당에서 내려 보낸 <과학원> ‘과학지도국장’이 들이닥친 것이다.
과학지도국장은 그에게 “동무의 말이 이론적으로는 옳다”면서 “그러나 식량생산 문제는 정치문제이기 때문에 동무가 관계할 일이 아니니 동무는 연구사업에만 전념하라”고 경고했다.
당에서 중요시 여기는 것은 인민의 배고픔이 아니라 당이 지도하는 ‘주체농법’의 신화였던 것이다.
이 일이 있은 후 이민복씨는 탈북을 선택했다. 북한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북한이 남한을 거부하는 이유
이 대표는 “문제의 ‘주체농법’이 오늘날의 북한의 식량난을 불러온 농업정책 실패의 원흉임에도 북한은 정치적 이유로 그것을 개선하지 않고 외부의 지
원만을 바라고 있다”며 “농업정책에 관해서도, 1990년대 초의 북한과 지금의 북한 사이에는 아무런 변화의 흔적이 없다. 이는 무조건 퍼주기가 북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북한이 겪고 있는 식량난이 정말 어려운 것이고 또 김정일의 독재정권이 과연 진정으로 ‘인민’을 생각하는 정권이라면 이명박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그 정도의 요구를 들어 주는 게 정상이다”라며 “그렇게만 하면 남으로부터 40만톤의 쌀과 30만톤의 비료가 즉각 북으로 수송되기 시작할 것이
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 이 대표는 “남측의 지원은 거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미국과는 ‘식량회담’을 가지면서 50만톤의 미국 양곡을 얻어가는 협상을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다”며 “이는 북한 나름의 경험률(經驗律)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남한의 애를 태우면 남한 정부는 제풀에 꺾이리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남한을 배제하고 미국과 흥정을 성사시키기만 하면 남한에서 대북정책에 대한 비난이 불같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북한은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명박 정부 길들이기’에 다름 아니다.
이 대표는 “북핵 문제에 관한 미-북 협상에서 ‘신고’ 문제가 마무리되고 그 반대급부로 미국의 50만톤의 대북 식량지원 문제가 매듭지어지는 것과 때를 같이해 남한의 대북 식량 및 비료 지원이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여기서 우리가 하는 일이 과연 ‘북한 동포’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봐야 한다고 이 대표는 강조했다.
이 대표는 “우리는 그 동안 우리가 보내준 식량이 북한 동포들에게 전달되는 장면을 사진이나 모니터로만 봐 왔다. 하지만 이것은 연출된 것일 뿐이다”며 “대부분 군인과 당원들은 물론 정권 실세들에게 분배되었다가 그들이 먹고 남는 식량이 ‘농민시장’으로 흘러나오고 있다는 의혹은 한 번 두 번 거론
된 게 아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 북한이 확인해 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지금 북한의 식량 수급 사정은 거의 매년 100만톤 이상의 수급 부족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금년의 경우 예년보다 양의 증가가 예상되고 있음에도 외부에서 제공하는 식량으로는 우선 양적으로 북한의 식량부족분을 완전히 메울 수 없다.
외부에서 식량과 지원물자를 아무리 보내줘도 북한의 고질적인 식량문제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식량 지원에 앞서 북한의 식량 자급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대북 식량지원은 매년 “밑 빠진 독에 불 붓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게 이 대표의 말이다.
이 대표는 “대북 식량 원조가 그 동안의 방식으로 다시 이루어진다면 이는 식량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인 북한 농민들의 식량 증산
의욕을 자극하는 데는 아무런 작용을 하지 못한다“며 ”오히려 얻어먹는 타성에 빠져 대외 또는 대남 식량 의존도만 더욱 심화시켜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동복과 임동원 ‘과거사 논쟁’
1992년 발생한 ‘훈령 조작사건’ 때 아닌 신경전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달 초 <피스 메이커>라는 제목으로 회고록을 펴냈다. 출판사인 중앙북스에 따르면 이 책은 초판 3000부가 10일 만에 매진됐고 2판 2000부를 찍었다.
이 책에서 주목을 끄는 부분이 있다. ‘훈령 조작’에 관련된 내용이다.
1992년 9월 15일부터 17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8차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발생한 ‘훈령 조작 사건’의 전말을 상세하게 담고 있다.
당시 통일원 차관이었던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남북고위급회담 교류협력분과 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임 전 장관이 이 책을 펴내자 ‘훈령 조작 사건’의 핵심인물인 이 대표는 즉각 반론을 폈다. 두 사람 사이에 때 아닌 신경전이 벌어진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조갑제닷컴’에 쓴 칼럼을 통해 “1992년 8차 남북고위급 회담 때 내가 훈령을 조작했다는 주장을 한 ‘임동원 회고록’은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안기부장(지금의 국가정보원장) 특보였던 이 대표는 정치분과 위원장 겸 회담 대변인이었다.
감사원은 당시 제8차 남북고위급회담시의 훈령조작의혹 감사에 착수했으나 감사가 시작되기 직전인 그 해 11월 이동복씨는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당시 안기부장 특보 자리에서 해임됐다.
임 전 장관은 이 대표의 주장에 대해 “감사원의 감사결과에서 이미 모든 전말이 드러났기 때문에 내 말이 거짓이라는 그의 주장은 일고의 대응가치도 없다”고 잘라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동복 대표 "총격사망 사건 북측에 강력히 대처해야"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는 지난 11일 발생한 박왕자(53.여.서울 노원구 상계동)씨 총격사망 사건에 대해 “문명국가에선 도저히 있을 없는 일이다. 어떻게 군인이 민간인을 등 뒤에서 쏠 수 있나”라고 북한을 비난했다.
이 대표는 “금강산 관광은 근본적으로 수많은 위험을 잉태하고 있는 사업임에도 불구고 하고 무리하게 강행한 사업이다”며 “이번 총격사망사건은 이를 여실히 증명한 사건이다”라고 말했다.
또 이 대표는 “북한은 마음 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이런 일을 만들 수 있다”며 “애초 금강산 관광이 시작될 때 북한이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었다”고 말했다.
총격사망사건이 발생하자 정부는 박씨가 관광객 통제구역을 넘어섰기 때문에 북한이 발포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기본적으로 무장이 없는 민간인에 대해선 경고사격 등의 조치가 이뤄진다. 또 그것으로도 충분히 통제가 된다”며 “이 정부는 비정상적인 정부다. 어떻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하는 정부가 국민이 죽었는데도 변명으로 일관하며 이렇게 미온하게 대처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 대표는 “정부는 북한의 적절한 조치가 없을 경우 모든 남북관계를 전면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차원에서의 강력한 응징이 필요하다”며 “전쟁시에도 비무장 민간인을 등 뒤에서 쏘는 것은 비난의 대상이다. 하물며 관광객을 불명확한 이유로 등을 쏴 사살하는 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
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