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특종보도 후 검찰수사 긴장하는 임창욱 대상그룹 회장

‘비자금 동영상’ 공개 5년 만에 진실 풀리나?

2008-07-03     김종훈 기자

〈일요서울〉은 지난해 10월 자매지〈일요경제〉커버스토리를 통해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 비자금 로비 전말’을 특종 보도했다. 임 회장의 경호책임자였던 최승갑씨가 임 회장의 지시로 정치권과 검찰 인사들에게 15억원을 전달했다는 내용이다. 이번에 검찰이 ‘대상그룹 로비스트’를 자처하는 최씨에 대한 본격 수사에 착수함에 따라 임 회장을 둘러싼 로비 의혹의 실체가 밝혀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씨가 지난 5월 본지를 통해 최초로 밝힌바 있는 ‘돈다발 동영상’ 주장이 사실이라면 정치인과 법조계 인사들이 다수 포함돼 있어 큰 파장이 예상된다.

지난 2003년 임창욱 대상그룹 회장이 구속수사를 막기 위해 정관계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에 대해 검찰이 본격 수사에 나섰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달 25일 대상그룹 로비스트를 자처하는 최승갑씨의 사기 사건을 특수2부(윤갑근 부장검사)에 배당했다고 밝혔다. 통상 사기사건은 형사부에 배당되지만 검찰은 최씨가 주장한 대상그룹 로비 의혹을 규명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특수부에 배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사안의 성격상 형사부보다 특수부에서 수사를 맡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의 주장에 따르면 임 회장이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을 당시 구속수사를 막기 위해 임 회장으로부터 거액을 받아 정관계 로비를 벌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임 회장 재산관리인 유죄 판결

최근 조사과정에서도 최씨는 “당시 로비 자금을 수수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갖고 있다”며 본지와 인터뷰했던 주장을 되풀이했다. 검찰은 일단 최씨로부터 동영상 파일 등 관련 자료를 넘겨받아 최씨 주장의 신빙성을 검토한 후 관련자 소환조사 등 본격 수사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이처럼 검찰수사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임 회장의 차명계좌 등 재산관리인으로 지목된 박모(59)씨의 부동산 중 일부가 임 회장의 자금으로 구입된 게 맞다는 법원 판결이 나와 수사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서울행정법원 제11부(재판장 김용찬)는 자난달 25일 박씨가 송파세무서장을 상대로 2006년 7월 부과한 증여세 11억5000만여원에 대한 처분취소청구를 기각했다.

송파세무서는 박씨가 부동산 및 ㈜상우 등에 대한 주식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28억5000만여원을 임 회장으로부터 증여받은 것으로 판단하고 증여세를 부과했다. 재판부는 박씨가 납득할 만한 재산의 자금 출처를 대지 못하고 있다며 사실상 박씨 소유 부동산 일부가 임 회장의 자금으로 구입된 것임을 명확히 했다.

재판부는 또 “당시 박씨와 임 회장이 공모해 협력업체를 설립한 후 대상그룹의 자금을 빼돌려 관리한 혐의(횡령)에 대해 유죄판결이 확정됐다”며 “세무서가 이를 바탕으로 ‘박씨가 임 회장의 자금을 이용해 상우의 주식을 취득했음에도 증여세 등을 탈루했을 것’으로 판단해 세무조사를 실시한 것은 적법하다”고 밝혔다.

최씨가 주장한 임 회장 구명 로비 의혹의 진실 규명은 우선 최 씨가 갖고 있다고 밝히고 있는 돈다발을 건넨 ‘동영상과 녹취록’ 등 물증의 신빙성에 달려 있다.

최씨가 임 회장 측으로부터 돈을 받아 정관계에 뿌렸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그 진술도 상당부분 구체적이지만 로비 대상으로 지목된 인사들이 관련 혐의를 강력히 부인할 것이 자명해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면 수사 자체가 제대로 진행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영상’ 없으면 수사 난국

최씨가 내놓은 증거로는 본지에 실렸던 임 회장 측으로부터 건네받은 1억원짜리 한빛은행(현 우리은행) 신설동지점 발행수표 10장 복사본과 정치인들에게 돈을 전달한 영수증, 도피 시 르네상스호텔 투숙자료, 임 회장이 대가로 주기로 했다는 UTC벤처 인수계약 관련자료 등이 있다.

수표 인출일은 2003년 2월12일 일련번호는 바다14549***부터 바다14549***까지 이어져 있다. 신설동 지점은 대상그룹 본사 옆에 있는 은행이다. 최씨는 “일련번호를 추적하면 수표 출처가 어디인지 바로 알 수 있지 않느냐”라고 증거의 신빙성을 더했다.

최씨의 설명에 따르면 2002년 말 인천지검이 대상그룹 위장 계열사 ‘삼지산업’ 비자금을 추적하자 임 회장은 2002년 11월께부터 잠적했다. 인천지검은 소환에 불응하는 임 회장을 잡기 위해 체포 영장을 발부한 상태였다. 임 회장은 절박한 때인지라 구속만 되지 않는다면 뭐든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의 구명 활동을 대상그룹 직원에게 맡겨둘 수만은 없었다.

삼지산업 비자금을 폭로한 사람이 내부 고발자 였기 때문. 임 회장은 주변 지인들에게 수소문으로 로비를 할 수 있는 브로커를 찾았다. 바로 이때 임 회장 지인의 소개로 최승갑씨가 임 회장을 만났다는 것이다.

최씨는 삼성사돈이기도 한 재벌 회장을 만난 걸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충성을 다했다. 그는 “2003년 1월 초 르네상스 호텔 23층 라운지바에서 강남세브란스 병원 김 모 박사가 내게 양도성 예금증서(CD) 5억원을 줬다. 이 돈을 노무현 정부의 핵심 정치인 Y, K, J씨 등에게 전했다.” 그는 “이와 관련한 영수증을 검찰이 수사에 나서면 넘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본지 5월12일 최초보도를 통해 로비 자금을 전달하는 장면을 찍은 동영상도 갖고 있다고 주장했던 것을 경찰 조사에서도 그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져 로비 의혹을 풀어 줄 단서로 주목받고 있다.

본지는 아울러 “임 회장의 도피를 돕는 대가로 받기로 했다”는 대상그룹 계열사 UTC벤처와 최승갑씨가 대표로 있던 지루스가 공동으로 작성한 회사 인수계획 실사 비밀문건도 공개했다. 이 문건에는 투자회사의 투자금액과 등급, 담당자 이름 등이 명확히 기록돼 있다.

임 회장이 최씨에게 자신의 구속을 면하게 해주는 로비가 성공하면 700억원대의 임 회장이 100% 지분을 가진 벤처 캐피탈 ‘UTC인베스트먼트’ 자회사를 넘겨주려했다는 내용의 증언과 실사 자료다. 문건에는 임 회장이 먼저 무기명 채권을 넘겨주면, 최씨가 다시 UTC 주식 1백2만 주, 지분 51%를 현금으로 인수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300억 원이 넘는 거액이다. 한쪽은 비공식 거래, 다른 쪽은 공식 거래로 자금 출처를 알 수 없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그는 “임 회장이 ‘지루스(최승갑이 대표로 있던 회사)를 운영하면서 회장이라는 소릴 듣는 게 좀 그렇지, 회사다운 회사를 운영해야지’하며 굳게 약속을 했고, 빨리 인수하라고 독려까지 했던 사항”이라며 “당시 나와 나를 따르는 직원 모두가 전 재산을 털어 전념했던 것은 계열사까지 준다고 했을 때는 임 회장에게 신뢰와 믿음이 갔기 때문이지만 본인이 정작 구속되자 헌신짝 버리듯 약속을 파기했다”고 주장했다.


임회장 도피 중 둘째 딸 졸업식 참석

이에 대해 기자가 대상그룹 상무와 통화하고 홍보팀 관계자에게 공문을 보내 소명의 기회를 줬지만 대상 측은 최씨에게 이 같은 제안을 한 적도, 문건을 만든 적도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UTC 직원 중 일부는 당시 최씨에게 경영권이 넘어가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그러나 앞서 주장한 바와 같이 그가 갖고 있는 동영상들이 얼마나 구체적인지는 의문인데다 일부 의혹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점도 이번 사건이 큰 파장과 폭발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궁금증을 들게 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이 가져올 수 있는 파괴력과 검찰이 연관돼 있다는 점 때문에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윤갑근 부장검사)가 수사를 맡게 됐지만 실체가 얼마나 파헤쳐질 지는 아직 미지수인 것으로 분석된다.

임창욱 회장이 도피 중에 딸 졸업식장에 참석했다는 일화는 흥미롭다. 임창욱 회장에게는 두 딸이 있다. 큰딸 세령씨는 대학 재학 중 이재용 삼성그룹 전무와 결혼하면서 자퇴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임 회장은 둘째 딸 졸업식에는 꼭 가고 싶다며 최씨에게 도와달라고 사정했다고 한다.

최씨는 가칭 ‘임 회장 졸업식 참석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자신을 따르던 직원들과 함께 2003년 2월21일부터 3일 간 이화여대에서 예행연습을 했다.

“경호직원 12명에 차량 3대가 동원된 긴박한 작전이었다. 1조는 검찰 수사관을 막고, 2조는 임 회장을 호위하는 시나리오를 짰다. 나를 따르는 동생들에게 ‘누가 체포 영장을 들이밀더라도 무조건 임 회장을 보호해라. 내가 책임지겠다’고 지시했다.”

2002년 2월24일 마침내 임 회장은 이화여대 졸업식에 무사히 참석했고 딸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날 이재용 부부도 동석해 조카와 동생의 졸업식을 축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