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 퇴임후 안전판 확보 차원? 주목
2006-07-20 홍준철
당내 친노 인사들도 발 벗고 나섰다. 임채정 신임 국회의장을 비롯해 친노 직계그룹인 ‘의정연구센터’도 개헌을 위한 군불 때기에 나섰다. 최근엔 대통령의 복심을 읽는 안희정씨가 친노 의원들과 함께 프랑스를 깜짝 방문하고 돌아왔다. 이에 정가에선 ‘대통령이 친노 의원들과 정계개편을 위한 개헌을 추진하는 게 아니냐’, ‘노무현당을 만들려는 속셈’이라는 등 의혹을 제기했다.
노 대통령은 프랑스식 정치모델에 관심이 높다. 대통령이 되기 전인 13대 국회의원 시절부터 프랑스 정치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주한 프랑스 대사관 관계자와 프랑스 문화원에 근무하는 한국인과 자주 어울렸다. 이상적인 정치 모델로 사회민주주의가 가미된 프랑스식 정치구조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고 측근들은 전한다.
지난 6월 임시 국회때 대통령 연설은 취소됐다. 노 대통령의 연설 내용이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 내용을 담고 있었다는 말이 정치권에 파다하게 퍼지기도 했다.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는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이 외교. 국방 등 외치를 담당하고 의회 다수당이 추천하는 총리가 내정을 관할하는 권력 분점의 한 형태이다. 이미 노 대통령은 이해찬 전총리를 책임총리로 하는 분권형 국정 운영을 해 본 경험도 있다.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 도입을 위한 국내 실험도 마친 상황이다.
이원집정부제 도입 실험 끝내
노 대통령은 지난 2003년 말에도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를 심각하게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의 한 인사는 “당시 탄핵 정국만 아니었다면 프랑스의 정치모델 연구를 위해 측근을 프랑스에 보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그런 노 대통령이 최근 프랑스식 권력구조와 정당문화를 국내에 적용하기 위한 보고서 작성을 명했다는 여권 소식통의 전언이다.
그는 “대통령은 청와대 전 외교보좌관을 지냈던 인사를 통해 프랑스를 벤치마킹하기위해 기획안 작성을 하달했다”며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를 염두에 둔 것 같다”고 전했다. 덧붙여 그는 “청와대에서 차기 정권이 한나라당으로 넘어갈 공산을 높게 보고 퇴임 후 안전판 확보를 위한 사전 정지 작업 같다”며 “여차하면 친노직계 인사들 20~30명과 함께 신당 창당을 하려는 게 아니냐”고 추측했다.
보고서 작성 지시를 받은 인사로 지목되는 J씨는 현재 유럽 한 나라의 대사로 근무하고 있다. 파리 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그는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보좌관, 이주흠 전 리더십 비서관과 함께 프랑스 전문가로 알려진 친노 인사다. 그는 본 기자의 사실 확인을 위한 전화인터뷰에서 “청와대 에 근무할 당시 외교안보 보좌관으로 정치제도와 관련한 검토를 한 적이 없다”며 “청와대로부터 최근 이원집정부제관련 기획안 작성을 요구받은 적도 없다”고 해명했다. 오히려 그는 “불란서 전문가인 이주흠 미얀마 대사에게 지시하지 왜 나한테 하겠느냐”고 반박했다. 청와대 한 관계자 역시 ‘모르는 일’이라며 ‘확인해 줄 수 없다’고 청와대발 개헌추진을 일축했다.
청와대발 개헌 움직임
하지만 청와대발 개헌 움직임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친노 인사들과 선거제도관련 학자들이 최근 유럽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11일 백원우·이화영 의원 등 친노직계 그룹인 의정연구센터 회원들이 프랑스, 독일 등 7박8일간 유럽 3개국을 방문하고 돌아왔다.주목할 점은 사전 계획에 없었던 갑작스런 유럽행인데다 연수길에 대통령의 오른팔격인 안희정씨가 동참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가에선 안씨의 동참 배경에 의혹을 제기했다. 대통령의 오른팔인 안씨가 내각제 개헌 특명을 받고 프랑스와 독일을 방문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여기에 개헌 전도사를 자청하고 있는 민병두 의원도 함께 해 이런 의혹을 더 증폭시켰다.하지만 참가자들은 지방선거 패배 이후 선진국의 정당 문화를 연구하기 위해 갔을 뿐이라 해명했다. 유럽을 방문하고 돌아온 백원우 의원은 “안 선배가 끼인 것은 지방선거 패배이후 위로의 술좌석을 함께 하다 즉석해서 같이 가자고 해 이뤄졌다”며 “유럽 선진국들의 정당문화를 공부하기 위해 갔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또 청와대발 개헌 움직임과 관련해 그는 “개헌 주도권이 대통령에게 있지도 않고 추동력도 없다”며 “개헌은 국회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반박했다.
반면 그는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 도입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백 의원은 “사실 현 87년 헌법 체제는 불안정성이 존재한다”며 “단임제나 국회의원 대통령 임기가 교차해 폐해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내각제는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대부분의 선진 국가들이 도입하고 있는 우수한 정치제도”라며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 도입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한편 목포대 김영태(정치미디어학) 교수도 의정센터 의원들과 함께 유럽을 방문해 눈길을 모았다.
김 교수는 국회 의원들의 귀국보다 이틀 후인 지난 13일 국내에 왔다. 그는 노 대통령의 대연정 발언이후 정치권의 정당 및 선거제도, 개헌 등 토론회에 모습을 자주 보인 인사다. 본 기자와 통화에서 김 교수는 함께 동행한 사실만 시인하고 일체 다른 언급을 회피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국회 ‘임채정’ 총대 메다
노 대통령의 개헌 특명에 따라 당 차원에서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임채정 신임 국회의장이 총대를 멘 형국이다. 임 의장은 취임사에서 “21세기에 맞는 헌법의 내용을 연구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며 “여야 지도부와 의원들이 적극 협력,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임 의장은 국회내에 공식적으로 개헌 연구기구를 발족해 개헌 공론화를 위한 노력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에 이강래, 이부영 등이 구체적인 개헌방식을 제시하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7월초 대화문화아카데미 주최로 열린 개헌토론회에서 이강래 의원은 “18대 대선과 총선의 시간차가 크지 않아 차기 대선에서 당선된 대통령이 있는 쪽으로 ‘압도적 표 쏠림’현상이 벌어질 것”이라며 “한 당의 대선 총선 싹쓸이를 막기 위해 개헌을 통해 양 선거를 동시에 치러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이부영 전의장도 “5년 단임 대통령제와 4년 임기 국회의원, 4년 주기의 지방선거가 엇박자로 치러지면서 정신이 없다”며 “대통령의 레임덕이 계속된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개헌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한나라, 17대 개헌은 ‘불가’
하지만 카운터 파트너인 한나라당은 17대 국회에서 개헌 논의는 불가하다고 못박고 있다. 여당이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권력을 획득하지 못할 것 같아 권력 분점을 노린 꼼수라는 지적이다.한나라당 김재원 기획위원장은 “현실적으로 17대에서 개헌은 불가하다는 게 당 공식입장”이라며 “특히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를 도입해 성공한 나라가 없다”고 일축했다.
또 그는 “프랑스식 내각제에서 대통령과 총리가 다른 정당일 경우 한국 정당처럼 극한 대립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국 혼란은 불 보듯 훤하다”고 반대 입장을 보였다. 한편 사견을 전제로 김 위원장은 17대가 아닌 18대 국회에서 개헌을 추진해 2012년 19대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치르는 방안과 4년 중임제 도입에 대해 찬성의 입장을 보였다.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
# 노무현 대통령의 권력구조 및 개헌관련 발언록
2002년
▲“대통령이 되면 국가전략과 국정개혁, 국민통합 과제에 집중하고 총리는 내각관리의 책임을 지는 이른바 ‘책임총리제’를 시행하겠다.”(2월3일, 민주당 대선후보 지역경선본부 발대식에서)
▲“집권하면 2004년 총선 후 다수당에 총리지명권을 부여해 현행 헌법체계에서 내각제 또는 이원집정부제를 운용해본 뒤 2007년 개헌을 추진하겠다.”(10월7일, 경향신문 인터뷰)
▲“개헌 논의는 2006년께 공론화해서 여론을 수렴한 뒤 2007년에 들어가기 전 논의를 끝내는 것이 바람직하다.”(12월26일, 민주당 연수회)
2003년
▲“내년 총선부터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에서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독차지할 수 없도록 여야 합의로 선거법을 개정해 달라. 이 같은 제안이 17대 총선에서 현실화되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 또는 정치연합에 내각의 구성 권한을 이양하겠다.”(4월2일, 국회 국정연설)
▲“대통령제는 미국식과 프랑스식 2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데 프랑스식은 우리 헌법과 유사하나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고 또 반드시 바람직한 것인지 국민과의 논의가 더 필요해 지금은 그런 단계가 아니라고 본다.”(8월25일, 경제신문 합동회견)
2004년
▲“지금은 대통령이 총리를 지명했지만 이런 식으로 가다보면 앞으로 당에서 총리를 선출할 수 있는 때도 오지 않겠느냐.”(11월4일, 여당 충청권의원 간담회)
2005년
▲“야당과 연정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여소야대 상황에서 법안 통과가 안 된다. 우리 정부는 내각책임제적 요소가 있으니까 국회의 다수파에게 총리 지명권과 조각권을 주면 국정이 안정되지 않겠느냐.”(6월24일, 당·정·청 11인 회의에서)
▲“우리 정치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한다면 대통령 권력을 내놓겠다. 내각제 수준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이양할 용의가 있다. 선거를 다시 하기는 그러니까 실질적으로 권력을 이양하면 되지 않겠느냐. 진지하게 지역구도 해소하는 문제로 대통령과 협상한다면 그 이상의 것도 협상할 용의가 있다.” (7월28일. 당원동지 여러분께 드리는 글)
▲“대연정이라면 당연히 한나라당이 주도하고 열린우리당이 참여하는 대연정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연정은 대통령 권력하의 내각이 아니라 내각제 수준의 권력을 가지는 연정이라야 성립이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이 제안은 두 차례의 권력이양을 포함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권력을 열린우리당에 이양하고, 동시에 열린우리당은 다시 이 권력을 한나라당에 이양하는 것이다.” (7월28일. 상동)
▲“다음 대선과 국회의원 선거가 가깝게 붙어있기 때문에 그때 가서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의 임기를 함께 같아지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8월31일. 중앙언론사 논설·해설 책임자 간담회)
2006년
▲“대통령 임기가 5년이 긴 것 같다. 제도적으로도 긴 것 같다. 지금 제도로는 임기 중간에 선거를 자꾸 하는 것이 국정운영에 합리적이지 않고 일하기에 아주 곤란하다. 하던 일이나 하려는 일들을 선거 때문에 중지해야 하고 바꿔야 한다. 선거 변수가 끊임없이 국정운영에 끼여든다. 국정이 굉장히 흔들리게 된다.”“개헌은 이미 대통령의 소관을 떠난 것 같다. 대통령의 역량 범위를 떠난 것 같다는 것이다. 특정개헌 이슈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시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개헌을 주도할 수 없다.”“헌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치문화이다. 개헌에 우선순위가 있는 것은 아니다.”(2월26일. 출입기자단과의 산행에서)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