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땡큐”
2006-12-27 홍준철
노무현 대통령이 고건 때리기에 나섰다. 일반적으로 현직 대통령을 예비 대통령 후보가 공격해야 하는 것이 정치권 상식이다. 그런데 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노 대통령이 참여정부 초대총리를 지낸 고건 전총리를 ‘잘못 기용된 인사’라고 선제공격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고 전총리도 가만히 있질 않았다. ‘쌀자루 메고 어슬렁거리는 인사’라는 평이 무색하게 발빠르게 ‘대통령의 자가당착이자 자기부정’이라고 대응했다. 어쨌든 국민들 반응은 대통령의 처신에 문제가 있다는 반응이 주류다. 그런 만큼 반사 이익을 고 전총리가 누리고 있다. 대통령이 벌집을 건드렸는데 벌꿀은 고건이 갖고 가는 양상이다.
본 매체는 지난 657호에 ‘고건-노무현 밀약설’ 제하의 기사를 내보낸 바 있다. 노 대통령이 보수 깨기에 전면으로 나선다는 내용이었다. 아울러 고 전총리 역시 본격적으로 노 밟기를 시작하며 고건 띄우기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 기사였다.
노 대통령의 이번 고건 공격에는 이런 기류가 감지되는 사건이다. 외부적으로 고건 총리는 여전히 범여권 통합후보로 27.8%(리얼미터 06.12.20자 여론조사)로 1위를 달리고 있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10.2%(한국사회여론연구소 06.12.2 참조)대에 머물러 있다.
80% 넘는 국민들이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못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대통령이 공격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인기 상종가를 누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때문에 다시 한번 노무현-고건 밀약설이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노, 고건 때리기 ‘의도적’?
갑작스런 공격이었다. 지난 21일 노 대통령은 민주평통자문위 상임위원회장에서 예정된 20분을 훨씬 넘긴 1시간10분 동안 소신을 쏟아냈다.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우리가 좌우대립을 심하게 겪었고 서로가 인정하지 못하고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았다. 이것 한번 (해소)해보려고 고건 총리를 기용했다”며 “고 전총리가 다리가 되어서 그쪽하고 가까워질 것으로 희망을 했는데 반대로 우리가 왕따가 됐다”고 결국 실패한 인사로 고 전총리를 규정했다.
이에 고 전총리는 때를 기다렸다는 듯 “대통령의 발언은 자가당착이며 자기부정이다”라고 공격했다. 한발 더 나아가 “노 대통령의 편 가르기 정치, 민생문제를 챙기지 못한 무능력, 나누기 정치의 귀결”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고 전총리의 측근들도 발 빠른 대응에 놀랐다고 말하고 있을 정도다. 문제가 커지자 청와대의 반응은 ‘개인에 대한 비판이나 폄훼가 아니었다’고 물러서는 반응을 보였다.
“고건 인기 오를 것”
한편 노 대통령의 발언 배경에 대해 정치권은 해석이 분분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정창교 국장은 “통합신당은 지역주의 회귀라고 대통령이 일관되게 말했는데 여당내 고건신당에 줄서려는 사람들이 있어 타격을 입히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통합신당파의 한 인사는 “통합신당에 찬성하는 DJ를 비롯해 고 전총리, 신당파를 견제하기 위한 다목적 포석”이라며 “통합보다는 독자생존으로 살길을 모색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즉 영남 중심의 개혁 신당을 만들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으로 고건과 거리두기를 하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하지만 다른 해석을 내놓는 인사들이 있다. 특히 참여정부 초대 총리로 고 전총리를 천거한 신계륜 당시 대통령 후보 비서실장의 반응은 담담했다.
신 전의원은 “(대통령이) 그렇게 보면 그럴 수 있다”며 “당시 고 전총리를 영입하기 위해 삼고초려한 것과는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이미 알고 있었다는 모습이다.
신 전의원은 고 전총리와 노 대통령과 모두 친분이 두터워 두 사람간 가교역할을 하는 인사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별일 아니라’는 반응은 예사롭게 보아 넘길 사안이 아니다.
한사연 정창교 국장은 “대통령과 고건 사이의 대립각은 향후 여론조사에서 고 전총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했다.
고 전총리 진영 일각에서도 같은 반응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과 대립각을 보이는 것이 고 전총리에게 있어 손해 볼 게 없다는 것이다.
청와대·신당파·고건 ‘통하나’
오히려 긴장하는 쪽은 한나라당이다. 고건신당 역시 보수층 표를 주 지지기반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고 전총리가 통합신당파와 함께 하지 않고 ‘마이웨이’를 걸을 경우 한나라당 지지 세력을 잠식할 것이 불을 보듯 훤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대통령 발언의 진위와 관계없이 고 전총리는 잃어버렸던 지지도가 상승할 공산이 높다. 이는 한나라당 지지표 잠식으로 이어질 공산이 높다는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결국 영남 중심의 신당 창당 가시화, 통합신당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고건신당, 민주당을 아우르는 통합신당 구도로 범여권이 분화될 공산이 높아지고 있다. 한나라당은 ‘고건 상승’으로 인한 자신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