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盧 “범여권 통합신당 후보 물밑 조율 끝냈다”

2006-11-09     이금미 
김대중/몽니-노무현/동(東)고집 통한 내막


전·현직 대통령의 충돌이 볼만하다. 날을 먼저 세운 쪽은 김대중(DJ) 전대통령. DJ는 여당발(發) 정계개편 논란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여당 비극의 씨앗은 민주당 분당”, “무호남, 무국가(無湖南 無國家)” 등을 언급, 그 진의를 둘러싸고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물론, 그 진의가 어디에 있느냐를 두고 여당 내에선 여전히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특히, 무호남 무국가 앞에선 DJ의 일련의 발언 말미에 등장하는 “앞으로 현실정치에는 일절 개입 않겠다”는 진정성도 무색해진다. 게다가 정계개편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는 노무현 대통령이 사석에서 언급한 발언들까지 공개되면서 전·현직 대통령의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는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양상이다. 이에 두 전·현직 대통령의 친소 여부에 따라 정치권 일각에선 여당 ‘핵분열’ 시나리오도 등장했다 사라지곤 한다. 그럼에도 높은 당지지도를 확보한 한나라당은 속앓이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정치 10단의 전·현직 대통령의 ‘몽니’와 ‘고집’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DJ의 심경 변화는 북핵 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 터져 나왔다. 물론, 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있던 시점, 여당발(發) 정계개편이 예고된 시점이기도 하다.

DJ, 전통 지지층 회복 주문
DJ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선 때 노무현 후보에게) 표를 찍어준 사람들은 그렇게 (분당하길)바라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여당의 비극은 국민의 뜻을 저버린 분당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또 “민주당이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켰고, 노 대통령은 민주당 후보로서 민주당의 전통과 정강정책을 충실히 지키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고도 했다.
사실, 민주당 분당을 직설적으로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DJ는 열린우리당 새 지도부가 동교동을 예방할 때도 ‘전통적 지지층의 복원’을 주문했을 뿐, 예방한 이들은 모두 DJ의 ‘정치적 계승자’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런데 대번에 정치적 계승자가 비극의 씨앗이 돼 버린 것이다. 물론, DJ의 날선 발언의 종착지는 노 대통령으로 모아진다. ‘무호남 무국가’도 그 중의 하나다. 하지만 이는 DJ의 두 번째 반격에 불과하다. 잇달아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보다 중요한 대목은 타이밍이 절묘하다는 것.
목포 방문 직후인 지난 2일 오전엔 연세대 김대중도서관(관장 류상영 국제대학원 교수) 전시실 개관식이 열렸다. 민주당 분당의 원죄, 정치적 고향인 목포에서 호남이란 두 글자에 방점을 찍은 후 노무현 정권을 향한 세 번째 반격인 셈이다.
네 번째 반격은 바로 그날 밤에 있었다. 연세대 대강당에서 김대중 도서관 ‘후원의 밤’ 행사가 열린 것이다. 후원의 밤은 말 그대로 후원금을 모집하는 행사다.
잇단 정치적 행보에 이은 DJ의 화려한 외출에 정치권 주변에선 억지스런 우스갯소리가 나돌았다. 정치권 인사들의 후원금 액수만 봐도 향후 정계개편에서의 주도권과 통합신당 간판으로 차기 대선후보로 나설 면면을 예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향후 정계개편에서 DJ의 영향력이 막강할 것이라는 얘기다.

정계개편 논란에 기름 부어
DJ의 최근 행적은 그나마 노 대통령의 최대 치적이라 할 수 있는 ‘지역주의 타파’에도 흠집을 낼 태세다. 정계개편을 바라보는, 아니 판을 보는 시각에 있어 노 대통령의 시각은 DJ의 그것과 분명 다르다. 노 대통령은 전통적 지지층의 복원을 겨냥한 우리당과 민주당의 ‘통합신당론’에 대해서 지역정치로의 회귀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는 친노그룹의 움직임에서도 감지되는 대목이다. 통합신당론에 맞선 노 대통령과 친노그룹의 방향은 재창당론에 닿아 있다. 혹시, 우리당이 전당대회를 치를 경우, 통합신당이냐 재창당이냐를 두고 후보간 세대결로 전개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 전·현직 대통령간 권력 게임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상당수다. 지지도가 바닥인 현직 대통령은 여당으로부터 “정치에 개입하지 말라”는 주문을 강하게 받고 있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아니 물러나야 할 전직 대통령은 ‘호남 맹주’임을 드러내며 사실상 정치활동을 재개한 셈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정치권 인사들이 ‘살아있는 권력’에 한 표를 행사했을 상황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들고 있다. 정계개편 과정에서 노골적으로 현직 대통령에게 ‘뒷전’으로 물러나 주기를 요구하는 현여권의 전반적인 상황을 감안, 호남의 절대적 지분을 가지고 있는 DJ의 입김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호남민심을 향한 DJ의 호소는 즉시 정치권에 전달됐다. 10·25 재·보궐선거 이후 국정감사로 인해 물밑 논의가 진행되고 있던 우리당의 백가쟁명식 정계개편론에 불이 붙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DJ는 자신의 광주·목포 방문이 정치적으로 어떤 해석을 낳을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다. 우리당과 민주당을 망라한 다수의 의원 수행단도 이를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정치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그의 목포 발언은 온데간데 없다.

전·현직 대통령 힘겨루기?
전·현직 대통령의 기 싸움이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것 역시 짚어볼 대목이다. 여권 한 핵심인사는 “여당의 정계개편 과정이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갈수록 전·현직 대통령의 충돌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야말로 재임 기간 업적과 정치 철학을 건 한판 승부이기 때문이다. 특히, 2007 대선은 연장전도, 2 라운드도 없는 단판 승부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게다가 팔순을 맞은 DJ의 정치 감각은 아직도 녹슬지 않았다. ‘무호남 무국가’ 역시 이를 방증하는 대목이다. 전남도청 방명록에 썼다가 전남도청 업무보고를 5분간 받고 다시 가서 ‘이 충무공 왈’이라고 덧붙이는 해프닝을 연출. 의도된 것이든 아니든 얻을 건 확실히 얻고, 모양새 역시 억지스럽지 않았다.
“최후 승자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는 정치권의 중론도 따지고 보면 여기가 출발 지점이다. 노 대통령 역시 판을 꿰뚫고 있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치 10단의 승부사다. 노 대통령은 최근 사석에서 우리당에서 진행되고 있는 정계개편과 관련, “그렇게 배지를 달고 싶은가”, “전당대회에서 한 번 해보자”는 언급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다 해도 연말연초를 기해 합의점에 도달할 것이라는 게 우리당 일각의 관측이다. DJ와 노 대통령 사이엔 ‘햇볕정책’이라는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국민의 정부에 이어 참여정부에서 전·현직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A씨, 그는 통합신당이냐 재창당이냐를 두고 벌어진 일련의 여권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정권의 향방을 예측할 수 없음에도 초선의원들마저 나서 차기 총선을 최우선에 두고 목소리를 키우는 게 정치다. 전·현직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 철학을 지키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건 당연한 현상이다.”

한나라 서진정책이 발목 잡아
이는 전·현직 대통령의 기 싸움을 조심스럽게 바라보는 한나라당의 고민과도 무관치 않다. DJ의 정치 행보가 부담스런 쪽은 비단 노 대통령을 비롯한 친노 그룹만이 아닌 것이다. 한나라당에선 DJ가 공개적으로 호남에 대한 애정을 과시한 직후 정권창출이라는 대업을 목전에 두고 속앓이가 시작됐다. 전통 지지층 복원을 주문하는 DJ의 행보는 햇볕정책의 위기와 그 출발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지난 2일 후원의 밤 행사에서도 DJ는 북핵문제 해법, 조속한 6자회담 재개만을 언급했을 뿐이다.
진일보한 호남표심을 얻기 위해 서진(西進)정책에 잔뜩 공을 들여 온 한나라당이다. 호남에서 DJ를 핵으로 한 바람이 몰아친다면 최대의 피해자는 영남에 정치적 기반을 둔 한나라당임은 불 보듯 뻔하다. 호남표심이 대세를 결정할 중요변수로 부상 중인 시점, DJ가 개입한다면 한나라당이 가져갈 파이는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한나라당은 ‘박근혜 체제’ 당시부터 DJ와 한나라당에 놓인 갈등의 골을 메우기 위해 공을 들여왔던 탓에 그의 정치 행보를 대놓고 비난하기도 어려운 처지다. 그것도 모자라 한나라당은 북한 핵 실험 이후 햇볕정책에 대해 이렇다 할 방향도 잡지 못한 채 들쭉날쭉 엇박자를 내왔던 게 사실이다. 향후 예상되는 정계개편과 내년 대선에서 DJ와 노 대통령의 관계정립의 변화, 그 이면에 녹아든 합의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DJ와 노 대통령의 합의점이 결국 대선 후보로 모아질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이와 관련, 열린우리당 호남출신 한 중진의원의 “호남세력을 중심으로 향후 정계개편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명제다. 그러나 호남출신 인사가 정계개편을 주도해서는 안 된다는 게 통합신당을 지향하는 이들의 공통된 인식”이라는 언급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