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昌)-최’ 사이는 구원(仇怨)관계
2007-01-04 김현
“아직 배가 12척 남아 있고, 이순신이 죽지 않았다” (상유십이 순신불사·尙有十二 舜臣不死)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정치재개 가능성을 나타내며 발언한 내용이다. 이에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은 의원총회 자리에서 “이회창씨는 충무공이 아니라 원균에 가깝다”고 했다. 이는 최 의원이 이 전총재의 정계복귀를 바라지 않는다는 반대 의사표시다. 이 같은 발언은 지난 15일 사학법재개정을 논의하던 의원총회 자리에서였다.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어내려가던 최 의원은 작심이나 한 듯 매우 단호한 어조로 이 전총재의 정치재개를 조목조목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선 최 의원이 이 전총재를 비판한 것과 관련, 이 두 사람의 구원(仇怨)관계를 얘기하고 있다.
사실 최 의원과 이 전총재는 애초 매우 돈독한 사이로 알려져있다. 지난 2001년 조선일보 기자 시절, 한나라당을 출입한 최 의원은 이 전총재와 러시아 방문을 한 뒤 주변에서’친(親)이회창 기자’로 평가받을 만큼 두 사람의 관계가 가까웠던 것이다.
그 이후 최 의원은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이 전총재의 대선후보경선 언론특보로 내정받고 조선일보를 사퇴했지만 결국 캠프내 반발로 최 의원의 언론특보 내정은 그만 좌절되고 만 것이다. 이 때 대선출마를 준비하던 최병렬 전의원의 제의로 최 의원은 ‘공보특보’를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이 전총재와는 악연관계를 맺게 된다. 반(反) 한나라당 깃발을 든 최 의원. 결국 ‘이회창 필패론’을 내걸면서 두 사람간의 골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게 당내 관계자들의 얘기다.
이 전총재가 대선 패배 후 최병렬 전 의원이 당 대표 자리를 꿰차고 올라와 ‘차떼기 당’, ‘수구꼴통당’ 등 한나라당내 창(昌) 이미지를 씻어낼 만큼 ‘창(昌)- 최병렬’간에도 서먹서먹한 관계다. 공천권을 장악한 최 전대표의 위력으로 이 때 최 의원은 17대 총선(한나라당 진주갑)에 당선된 것이다. 결국 ‘창(昌)-최’ 두 사람의 구원(仇怨)관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게 당 안팎의 얘기다.
#박기영 전 보좌관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으로 ‘컴백’
박기영 전 보좌관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으로 ‘컴백’
박기영 전 청와대 과학기술 보좌관(순천대 교수)이 다시 청와대로 돌아왔다.
지난 12월 28일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으로 위촉된 것이다. 박 전 보좌관은 2006년 1월 ‘황우석 파문’의 책임을 지고 보좌관직을 내놓았다. 황 전 교수팀의 2004년 논문의 공동저자로 이름이 올라 있는 것도 서울대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 ‘연구에 전혀 기여하지 않았음’이 확인된 바 있다.
박 전 보좌관은 청와대를 떠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국가의 중장기 전략과 비전을 제시’하는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을 맡았다. 일각에선 ‘막가는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론이 대두됐다.
청와대 윤태영 대변인은 “박 전 보좌관이 정책기획위원을 맡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도덕적 문제를 일으켰다고 판단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박 전 보좌관이 황 전 교수로부터 연구 과제를 위탁받아 정부지원금 2억5,000만원을 받고도 연구 보고서를 제때 제출하지 않았다는 논란은 검찰 조사를 통해 ‘형식적’ 면죄부를 받았다. 그러나 황 전 교수팀의 논문에 기여 없이 ‘무임승차’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청와대의 해명대로라면 이 정도 ‘도덕적 문제’는 정책기획위원 자격에 흠이 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50여명에 이르는 새 정책기획위원들과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민주주의의 다음 과제는 자율적이고 창조적이며 상호 헌신과 관용에 기초한 대화와 타협의 민주주의로 가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 축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