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내조’가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2006-12-21     정은혜 

박명재 행정자치부 장관의 ‘과거와 미래’


지난 13일 신임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취임한 박명재(59) 전중앙공무원교육원장을 둘러싼 논란이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송민순 외교부장관, 이재정 통일부장관의 임명을 두고 ‘보은인사’, ‘코드인사’ 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데 이어 이번에는 ‘신임 행자부 수장’의 자질여부를 두고 설익은 논란이 일고 있는 것.
사실 노무현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박 장관 임명은 하나의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장관만큼 행정 정책을 잘 이행하고, 제대로 수행할 자격과 능력을 갖춘 사람도 없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1975년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이래 줄곧 행자부에 몸담아 왔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행정에 관한 한 참여정부의 ‘적임자’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의 장관 기용을 바라보는 여론과 정치권의 시각은 여전히 싸늘하다. 우선 ‘코드인사’의 절정이라는 비판이 여야 구분 없이 개진됐다. 게다가 여야를 넘나든 박 장관의 ‘이중처신’ 논란은 참여정부의 내각 기용을 다시금 ‘도마위’에 올려놓고 말았다. 박 장관은 또, 10여년 나이차를 극복하고 1982년 재혼한 것으로 알려져 장관을 떠나 ‘개인사’에 대한 관심도 상당하다. 행자부를 잠시 떠났다가 3년 만에 전면에 나선 박 장관. 그의 ‘가족사’에 얽힌 뒷얘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박명재의 모든 것’을 집중 조명했다.


박명재 행자부장관의 정책 철학과 자질 등을 두고 정치권 안팎에서 쓴소리가 끊이질 않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보은인사’, 5·31 지방선거 당시 ‘이중행보’ 등이 그 배경에 깔려있다.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은 “노 대통령이 지방선거에서 낙선한 박 후보자를 장관에 기용한 것은 보은인사”라고 비난했고, 여당 의원들도 “박 후보자가 5·31 지방선거 당시 한나라당 포항시장 후보로 이력서를 낸 점 등은 그의 정치적 성향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라며 비판했다.

여·야 양측서 쏟아진 ‘비난’
이래저래 박 장관은 ‘소신이 결여돼 있다’는 인상을 여야 모두에게 심어주고 말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그가 과연 내년 대선에서 주무 장관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의 시선도 보내고 있다.
이에 박 장관은 “주변 권유 때문에 이력서를 넣었다가 다음날 바로 철회했다”고 해명했지만, 그의 갈지자 행보가 ‘보은인사’ 논란에 대한 해명을 더욱 궁색하게 만들고 있는 모양새이다. 실제로 박 장관은 지난 4월 7일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가 11월 27일 탈당했다.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지 나흘 만에 벌어진 일이다.
박 장관은 이어 “한나라당에 입당하거나 공천 신청을 한 바 없다”며 항간의 소문을 일축했다. 하지만 여야 의원들은 “이력서를 하루 만에 철회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공천받기 어려워지니까 한참 뒤에 철회한 것이 아니냐”며 그의 정치적 정체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한나라당 모 의원은 “지방선거 낙선자를 선거로 뽑힌 자치단체장을 관장하는 행자부장관에 기용하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무례한 행동”이라면서 “스스로 사퇴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일 것이다”며 극단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박 장관을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지난 13일 취임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서 납득하기 어려운 발언을 해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다.
현안이 돼 있는 공무원 연금개혁과 관련, “정부 입장은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으며, 일정을 리뷰해 보겠다”면서 “현 정부 내에서 개혁을 끝낼 것인지 좀 더 논의해봐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공무원연금의 ‘연내 개혁, 내년 초 입법화’라는 일정은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 따라서 후임 장관인 그가, 그동안 진행되어 온 정책을 한 순간에 뒤엎진 않을까 하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 잘하는 정통 행정관료’ 호평
하지만 이와 반대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그의 절대적 ‘우군’인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이 대표적이다. 김 의원은 여권의 기피인물로 알려진 대표적 강경 보수인사다. 김 의원은 최근 ‘박 내정자의 인사청문회를 살살 해 달라’며 동료 의원들에게 부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두 사람의 관계에 국민들의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 장관은 ‘김용갑 인맥’으로 회자되곤 한다. 지난 1988~89년부터 인연을 맺어온 두 사람은 김 의원이 총무처 장관으로 재직할 때, 박 장관은 비서실장으로 김 의원을 임기 내내 보좌했다.
행자위 관계자에 따르면, 김 의원은 뭐든 지시하면 빨리빨리 일을 ‘똑’ 부러지게 처리하는 박 장관을 매우 신임했다고 한다. 특히 박 장관은 장관으로 임명되기 전까지, 행정개혁 프로그램 기획과 부서 간 업무 조정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선보이곤 했다. 민원처리 과정을 ‘신청에서 발급까지’ 온라인화해 인터넷 민원서비스 시대를 연 장본인이기도 하다.
김 의원은 “정치적으로 소속이 다르지만, 박 장관은 아주 똑똑한 사람”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박 장관에 대한 김 의원의 각별한 애정은, 한나라당 행자위 소속 일부 의원들에게 ‘배려’를 부탁하는 장면으로까지 이어졌다.
박 장관을 둘러싼 평가는 이뿐만이 아니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추진력’. 박 장관을 지켜보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촌평이다. 행정 전반에 걸쳐 폭 넓은 식견과 전문성을 갖춘 ‘정통 행정관료’라는 호평도 받고 있다.
그는 고교시절 소설가를 지망했을 정도로 문필력이 뛰어났으며, 업무능력 또한 탁월해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박 장관은 제 16회 행정고등고시에 수석 합격한 뒤, 총무처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청와대 행정비서관, 경상북도 행정부지사,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 중앙공무원교육원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자신의 가치를 알렸다. 최근 인사청문회서 애매모호한 행동, 소신 없는 인상 등으로 비난을 받았던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이러한 박 장관의 긍정적인 평가의 원천은 ‘아내의 내조’에서 비롯됐다는 게 측근 인사들의 전언이다. 부인 장광복(49)씨는 박 장관의 행자부장관 임명을 이끌어 내는 데 기여한 ‘일등공신’으로 알려지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장씨는 지난 5월 박 장관이 열린우리당 경북도지사 후보로 출마했을 당시 특유의 화술로 유세 현장을 달구기도 했다. 그는 선거운동 기간 동안 ‘자정부터 이튿날 자정까지’ 48시간 밤샘 릴레이 유세에 나선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만큼 온 몸을 던져 박 장관을 ‘보좌’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후 장씨는 박 장관을 따라다니며 뒤에서 조용히 뒷바라지에만 힘쓰고 있을 뿐, 겉으로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고 있다. 밀 때 확실히 밀어주고, 내조할 땐 확실히 뒷바라지하는 스타일인 셈이다.

취업위해 출생일 변경한 ‘장관 부인’
박씨와의 첫 만남은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대 후반, 두 사람은 지인의 소개로 만남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세간에 알려진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
박 장관이 총무처 행정사무관으로 재직할 당시, 장씨도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여직원으로 있었고, 두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가까워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장씨는 취업 당시 미성년자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장관이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자료에 따르면, 장씨는 1977년 전주지방법원에서 생년월일을 1959년 12월에서 1957년 1월20일로 변경했다.
행자부 장관실 송외동 비서관은 “잘 모른다”며 즉답을 회피했다. 재혼인 박 장관은 장씨와 호적상 1982년 7월 5일자로 혼인신고를 마쳤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두 사람의 사랑이 너무 급진전되는 바람에 나이 문제가 생기게 됐고, 의심어린 눈총을 피하기 위한 편법이 아니었느냐”는 의혹어린 시선도 없지 않다.
그러나 장씨는 “취업을 하기 위해 출생 일자를 정정한 것일 뿐”이라며 ‘편법’ 사실은 인정했지만, 항간에 떠도는 소문들을 모두 일축했다.
박 장관은 재혼이라는 사회적 편견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다. 그는 23년 째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는 지극한 ‘효자’로 알려졌다. 1983년부터 경기 안양시 관양동 관악산 자락의 한 아파트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다.
장남인 그는 야간 고등학교를 다닐 만큼 가정형편이 어려워 결혼 후 서울에 집을 마련할 처지가 못 됐다. 이에 당시 시골이나 다름없던 안양에 둥지를 틀었다. 당시 박 장관의 아버지는 포항 인근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으나, 박 장관은 환갑을 넘은 아버지가 농사를 짓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 부모님을 안양으로 모시고 와 그때부터 줄곧 같이 살았다고 한다.
박 장관은 “부모님을 쾌적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모시겠다는 생각에 20년 이상 ‘시골살이’를 해오고 있다”면서 “환경이 좋고 특히 부모님이 주변의 공터에 텃밭까지 일구며 지내시는 모습이 더 없이 좋아 안양을 떠나지 않고 있다”며 “안양이 내게는 ‘강남’보다 더 좋은 동네”라고 말했다.

“인정받는 행자부로 거듭날 것”
현재 박 장관의 임무는 막중하다. 선거철 행자부장관에 거는 국민의 기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행자부는 지시하고 통제하고 간섭하는 ‘시어머니’ 같은 부정적 이미지를 떨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교묘한 합법’으로 여당을 편들 수 있고, 실제로 우리 선거사는 좋지 못한 전례를 숱하게 쌓아오면서 그 이미지가 이미 바닥에 떨어진 지 오래다.
행자위의 한 관계자는 “장관이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해 보이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은 부분이 많다. 자부심 못잖게 막중한 부담감이 항상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특히, 내년 대선을 앞두고 공정한 심판자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국민들의 쏟아지는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 박 장관의 어깨가 더욱 무거운 것인지도 모른다. 박 장관은 “국가와 국민, 특히 대선에서 공정하고 엄중하게 임하겠다”며 “또 참여정부 과제를 충실히 추진하고 수행하겠다”고 전했다.
내년 대선에 거는 기대에 앞서 당장 공무원연금의 연내 개혁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그가 내놓을 새로운 정책은 무엇이고, 또 이를 어떻게 전개해 나갈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