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공존 정책 앞서 생존 전략 강구할 때”
2006-10-19 김대현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김영수 교수 인터뷰
한반도 상공에 ‘버섯구름’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북한이 지난 10월 9일 핵실험 강행을 공식 발표하면서 국제정치가 긴박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국과 일본은 유엔헌장 7장을 기반으로 하는 제재조치를 안보리에 회부하기 위해 중국 등과 막판 조율에 들어갔다. 북한은 강경한 제재조치가 이행될 경우, 추가 핵실험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국지전’이 발발할 수 있다는 우려감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가 그동안 추진해온 ‘대북정책’의 근간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심지어 전시 작전통제권 이양을 추진해온 정부가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형국이다.
북한 핵실험 결과로 동북아 군비경쟁이 가열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핵실험 진위논란을 떠나, 정부가 전략을 수정해야하는 이유다.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 놓여 있는 한국 정부의 선택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중대 고비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일요서울>은 북핵사태와 관련, 대북 전문가인 서강대 김영수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북핵실험의 배경과 향후 전망을 들어봤다.
“이제 우리 정부는 공존이 아닌, 생존을 위한 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지난 12일 오전 서강대 다산관 연구실에서 만난 김영수 교수(정치외교학과)는 정부의 대북정책에 있어서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남과 북이 공존하는 모델을 핵심정책으로 추진해 왔다. 김대중 정부시절 ‘햇볕정책’이 그랬고, 노무현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도 마찬가지다.
보수적 단체에서 ‘퍼주기식’ 지원을 중단하라는 요구도 있었지만, 정부는 북한에 대한 지원을 계속함으로써 통일에 대한 밀알을 심어왔다는 평가다.
그러나, 지난 10월 9일 북한 핵실험 발표는 그동안 정부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다. 공존 정책은 이상적인 모델이 된 반면, 당장 핵 위협으로부터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핵실험 ‘진위논란’의 허상
최근 불거진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도 재검토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국민의 불안감이 확산되는 상황 속에서도 “연구해 보겠다”고 말한 노무현 대통령의 판단을 적확하다고 평가하는 전문가들은 드물다.
지난 11일 노무현 대통령이 대북 전문가들을 청와대 관저로 초청한 자리에 참석했던 김 교수도 이러한 부분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김 교수는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 많다는 것은 나도 모르는 바 아니다”면서 “그러나, 청와대가 능동적 대응을 하는 상황실 기능보다, 판단실 기능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또, “일각의 우려와 달리, 노 대통령은 시시각각 변화되는 상황을 정확하게 보고받고 있다”면서 “문제는, 어떠한 판단을 내리느냐에 있다”고 말했다.
북핵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여러 차례 밝혀온 이종석 통일부 장관 등 외교 당국자들의 ‘오판’은 불안감을 더욱 키우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북핵 실험의 진위여부를 떠나 ‘과거와 다른’ 대북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김 교수는 “다행히도 ‘불필요한’ 진위논란으로 정부가 대응할 시간을 벌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도 했다.
김 교수는 북한의 핵실험 배경에 대해 “대내·외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핵실험 발표를 통해 더 이상 ‘늑대소년’이 아님을 세계에 과시했고, 협상 지렛대로서 효과를 모색하고 있는 단계에 와 있다.
추가 핵실험 가능성이 점쳐지고는 있지만, 아직까진 별다른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는 분위기다. 미국과 중국 등 주변 국가들이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내적으로도 체제불안 심리를 잠재우는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북한은 현재 극심한 식량난에 노출돼 있다. 또, 자본주의적 요소의 침투, 한국과 미국 등의 물밑 접근 등으로 인한 예상치 못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를 만회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난 7월 5일 실시한 미사일 발사도 뒤이은 수해 피해로 상쇄되고 말았다. 오히려 군부의 불만이 커져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 지도부가 위기위식을 느꼈을 법하다.
결국, 핵실험 카드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매우 유효한 전략의 일환이었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북한 내부에서 “강력한 자위적 국방을 갈망해온 우리 군대와 인민에게 커다란 고무와 기쁨을 안겨준 역사적 사변”이라고 논평한 부분에서도 위기의식을 읽을 수 있다.
북핵 사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변국과의 조율이 중요하다. 정부가 마지막 카드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남북 정상회담도 노 대통령의 ‘말실수’로 인해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북한 핵실험을 바라보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가의 이해논리는 ‘천양지차’다.
정부가 중재자로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한·미 양국간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중국의 ‘속내’를 읽어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3일 노 대통령이 베이징으로 달려가 후진타오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진 것도 ‘중재역’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당국자 오판이 불안감 키워
김 교수는 그러나, “남과 북이 기본적으로 공조라는 대의 명제를 버릴 수는 없다”며 “포용정책의 정신을 살리면서 생존전략에 무게를 둔 변화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정부 입장에서 자존심이 좀 상할 수도 있지만, 북핵사태는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다”면서 “북한이 아닌 김정일 정권을 바라보는 미국과 중국의 시각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북한은 핵실험을 실시하기 20여분 전에 중국 정부에 이와 같은 사실을 최초로 통보했고, 중국 정부는 다시 한국과 미국 등 주변국에 핵실험 직전 ‘북한 정보’를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