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아버지는 괴물보다 강했다”
2006-09-12 김민주
영화 ‘괴물’의 숨은 주역 변희봉
중견 배우 변희봉이 연기인생 40여년만에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천만배우’, ‘흥행배우’, ‘국민배우’ 등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할 법한 타이틀이 그의 이름 앞에 붙어다닌다. 영화 ‘괴물’이 천만관객을 훌쩍 넘어 왕의 남자를 뛰어넘는 기록을 세우면서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얼굴을 알려 왔지만, “요즘처럼 행복한 때는 없다”며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는 변희봉. 하지만 이런 관심은 모두 봉준호 감독 덕분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잊지 않는다. 그동안 개성강한 연기로 충무로 관계자들과 팬들을 사로잡았지만, 영화 ‘괴물’에서는 이 시대 진정한 ‘아버지’ 모습을 선보였다. ‘괴물’ 흥행의 숨은 주역으로 언론과 영화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변희봉, 그의 40년 연기인생을 들여다본다.
40년 연기인생 “아버지 역할 꼭 하고 싶었다”
“봉준호 감독은… 내가 아는 최고의 영화감독”
악역·범인… 조연인생서 주연급 스타로 재탄생
‘왕의 남자’를 뛰어넘고 최단시간 한국영화 흥행 1위에 등극한 영화 ‘괴물’. 개봉 38일만에 1,230만명을 뛰어넘는 괴력을 발휘하며, 여전히 흥행신기록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네티즌 “변희봉, 괴물의 일등공신”
이번 영화가 지금의 성공이 있기까지는 봉준호 감독 이외에 영화에 혼신의 힘을 다한 배우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일명 봉준호 사단이라고 불리는 변희봉, 송강호, 박해일, 배두나 등이 그들.
특히 네티즌들은 영화 괴물이 천만 관객을 넘을 수 있었던 일등공신에 중견연기자 변희봉을 꼽았다. 이달 초 영화전문사이트 ‘무비스트’가 ‘괴물에서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변희봉이 1위에 올랐다는 것.
변희봉은 영화 ‘괴물’에서 주인공 박강두(송강호)의 아버지이자, 현서(김아성)의 할아버지로 들장, 괴물과 맞서 싸우는 박희봉 역을 맡았다. 극중 변희봉은 가족을 위해 직접 총을 들고 괴물과 죽음 건 사투를 벌였고, 네티즌들 역시 “박희봉은 진정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줬다”며 변희봉의 연기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관객들이 영화중 많은 감동을 느꼈다고 지적하는 부분은 바로 변희봉이 괴물과 싸우다가 죽는 장면. 변희봉은 “아부지 빨리 나와”를 외치는 송강호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녀를 집어삼킨 괴물을 유인하고 맞서다가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이날 촬영은 배우 변희봉에게도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빗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괴물을 두고 최후를 마감하는 결코 쉽지 않았던 촬영이었다.
변희봉은 자식을 잃은 아비의 심정을 놀라는 모습으로 표현하고 싶었지만, 봉준호 감독은 그에게 다른 것을 원했다고 한다. 봉 감독은 특별한 코멘트 없이 계속 다시, 또 다시 촬영을 요구했고, 그렇게 열 번 정도의 촬영을 하다보니 결국 지금 영화속의 그런 명장면이 나왔다고 한다.
쏟아지는 인터뷰와 전화, 인기실감
영화 ‘괴물’의 성공 이후 일각에서는 그에게 ‘흥행배우’, ‘천만배우’ 등의 타이틀을 붙이고 있다. 수없이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과 전화들. 그동안 수없이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해 왔지만,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보기는 처음이다.
변희봉 역시 “요즘 정말 새로운 인생을 사는 느낌”이라며 행복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모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자신은 한 일이 없다”며 한껏 몸을 낮추기에 바쁘다. 대신 모든 감사는 ‘봉준호 감독’에게 돌리고 있다.
“영화 연기를 처음 하게 된 것이 봉준호 감독 때문이었어요. 게다가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등 봉 감독의 작품에 모두 출연하면서 같이 작업하는 것이 언제나 즐거웠습니다. ‘괴물’은 봉 감독의 세 번째 작품일 뿐만 아니라, 송강호, 박해일, 배두나 등 훌륭한 배우가 출연하고, 촬영과 미술 등에서도 최고의 스태프들이 모인 영화여서 배우로서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고 생각했죠.”
또한 그는 “봉준호 감독은 한번도 화를 내거나 얼굴을 붉힌 모습을 본 적이 없다”면서 “언제나 좋은 분위기에서 즐겁게 작업을 해왔다. 감독으로서는 최고의 감독이라고 생각한다”며 봉 감독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40년 연기인생 우여곡절도 많아
올해 64세로 연기 인생 40년을 맞은 변희봉. 사실 변희봉의 40여년 연기인생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1965년 처음 MBC 성우 공채 시험을 봤고, 그후 우연한 기회에 연극을 통해 연기를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본격적인 드라마 연기를 선보인 것은 1970년 드라마 ‘홍콩 101번지’에서다.
그리고 아직도 명드라마로 기억되고 있는 ‘수사반장’을 비롯, ‘113 수사본부’ 등에 출연했으나 소위 잘생긴 얼굴이 아니었던 탓에 ‘범인’의 역할을 주로 맡아야 했다. 하지만 열심히 하면 좋은 날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연기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 그리고 그의 이러한 노력 때문인지 그는 회를 거듭할수록 악역이나 범인이 아니라 좀 더 좋은 역할을 많이 맡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강타한 경제위기, IMF. 연기자에 대한 방송국의 홀대에 회의를 느끼고, 방송생활을 접고, 시골로 낙향했다. 그렇게 지내기를 1년, 봉준호 감독이 영화 ‘플란다스의 개’를 들고 변희봉을 찾았다. ‘플란다즈의 개’는 신인이었던 봉준호 감독에게는 첫 영화였다. 변희봉은 특별할 것 없어보이는 영화 ‘플란다스의 개’의 출연을 두고 상당히 많은 고심을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변희봉은 다시 영화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고, 그뒤 변희봉은 개성강한 연기파 배우로 충무로에서 이름을 알렸다.
그렇게 인연이 된 봉준호 감독. 이어 ‘살인의 추억’ 역시 망설임 없이 선택할 수 있었고, ‘괴물’에 이르면서 그는 더 이상 조연배우가 아닌, 영화의 큰 줄기를 이끌어가는 존재감을 가진 배우로 거듭날 수 있게 됐다.
아무리 작은 역할도 최선을 다해
역할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 역시 변희봉이 가진 최대 강점.
변희봉이 맡은 박희봉은 한강에서 매점을 운영하며, 2남1녀와 손녀를 돌보는 집안의 가장이자 평범한 아버지. 배운것도 없고, 큰 욕심도 없이 오직 가족에 대한 걱정과 애정이 전부다. 파란만장함 속에서도 자기 일을 꿋꿋이 해나가며, 가족을 이끌어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인물. 이번 ‘괴물’에서도 박희봉을 표현하기위해 토끼털로 아랫배 부분을 채운 조끼를 의상 안에 입고, 백금을 입힌 보철 치아를 착용하여 ‘박희봉’의 고단한 세월의 흔적은 담아냈다.
“박희봉은 한강에서 매점을 운영하며 가족들을 돌보는 평범한 아버지지만, 젊어서는 가족을 외면하고 방탕한 생활을 했을 것으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시절을 표현하기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앞니에 백금을 입힌 보철치아를 착용했죠. 또한 내 강한 인상에서 노년의 부드러운 인상을 주기 위해 토끼털로 배를 나오게 했습니다.”
사실 그가 맡은 ‘아버지’라는 역할은 연기생활 40여년 동안 학수고대해오던 역할이다. 강한 인상 탓인지 그에게는 늘 강하고 독특한 캐릭터만 주어진다는 것. 그는 “그동안 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해오면서 항상 평범한 아버지 역할을 한번 해봤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이번 괴물을 통해 드디어 그 바람을 이루게 됐다”고 밝혔다.
그의 나이 환갑을 훌쩍 넘고, 40년 넘는 인생을 연기와 함께 해왔다. 변희봉은 이번 영화를 하면서 그토록 해보고 싶었던 ‘아버지’ 역할을 했으니, 이제는 더 이상 바랄게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영화 ‘잘살아보세’, ‘이장과 군수’ 등의 출연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중견 연기자의 재평가와 칭찬에 인색한 한국 사회.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는 변희봉을 통해 앞으로 한국영화를 이끌어 갈만한 중견 배우들의 재도약을 기대해본다.
‘괴물’ 최종 흥행 스코어 어디까지?
개봉 38일만에 역대흥행 1위 등극
지난 2일 ‘괴물’이 ‘왕의 남자’의 1,230만명을 돌파하면서, 개봉 38일만에 한국 영화 최고 흥행을 기록하는 쾌거를 세웠다.
‘‘왕의 남자’는 개봉 67일만에 이같은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괴물은 ‘왕의 남자’의 절반 정도 되는 기간에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하는 셈이다.
지난 7월27일 개봉한 ‘괴물’은 그동안 각종 흥행 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웠다. 지난달 20일 ‘실미도’(1108만명)의 관객동원 기록을 넘어선데, 이어 지난달 26일 ‘태극기 휘날리며’(1174만명)를 따돌렸고, 드디어 지난 2일 ‘왕의 남자’의 기록을 깬 것.
이밖에 영화 ‘괴물’은 상영관 620개로 역대 최대 상영관을 기록했으며, 예매율은 95%, 개봉 첫날 관객 수는 45만명, 개봉 이틀 만에 100만, 4일만에 200만, 9일만에 500만, 21일만에 1000만을 돌파했으며, 31일만에 ‘태극기 휘날리며’의 기록을 깼고, 38일만에 ‘왕의 남자’의 기록을 깼다.
그렇다면, 과연 ‘괴물’의 흥행기록은 어디까지 일까. 영화 ‘괴물’의 배급사인 쇼박스 측은 “영화의 최고 흥행 기록을 달성하기 위해 무리하게 스크린 수를 유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괴물은 여전히 전국 280개의 상영관에서 개봉하고 있고, 평일 하루 4∼5만 명씩 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현재의 분위기로는 꿈의 숫자인 1,300~1,500만명까지도 가능하지 않냐”는 추측도 나돌고 있어, 영화 괴물의 최종 스코어에 영화계 안팎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