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알고 있었다”

2006-10-19     김대현 
북핵특집6
10·9 핵실험 징후 사전인지설 진상


우리 정부는 북한 핵실험 징후를 언제 포착했을까. 정부 당국의 발표대로 핵실험이 강행된 직후 사실을 확인했다면, 정보기관의 ‘무능’이 노정된 것으로 비판을 면키 어렵다. 또, 정보가 수집되는 과정에서 중국에 의존했거나, 미국 등 주변국보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했다고 해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래저래 국정원이 ‘진퇴양난’이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가 사전에 북한 핵실험 징후를 포착하고 추이를 지켜봤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질자원연구원이 정확한 타이밍에 지진파를 감지하고 청와대에 보고, 발표하는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도 의심을 사는 대목이다. 중국이 20분 전에 북한으로부터 통보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나서자, 러시아가 2시간 전에 ‘알고 있었다’고 치고 나온 부분도 의아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정부는 북핵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했다. 미국, 일본, 중국 등과 긴밀한 조율이 필요한 탓이다. 다행히도 핵실험 ‘진위논란’이 다소 시간을 벌게 해줬다는 분석이다. 대북 전문가의 분석과 핵실험 당일 김승규 국정원장의 ‘동선’을 재구성해 우리 정부의 핵실험 인지 시점을 역추적했다.

#-1. 지난 10월 9일 오전 10시 30분경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한 김승규 국정원장은 “북한의 핵실험 징후가 없다”고 정보위원들에게 보고했다.
#-2. 10시 35분 한국 지질자원연구원은 북한 지역 내에서 발생한 지진파를 입수해 청와대에 보고했다. 진앙지는 부정확했다.
#-3. 10시 50분 청와대 윤태영 대변인은 “지질자원연구원은 오늘 오전 10시 35분 진도 3.5~3.8 규모의 지진파를 입수해 대통령께 보고했고 현재 관계 장관회의를 진행 중”이라며 “이것이 핵실험으로 판명 날 경우 이 회의의 성격은 국가안전보장회의로 바뀐다”고 발표했다.
#-4. 11시 15분 김승규 국정원장 청와대 안보장관회의 참석차 청와대로 이동.

부정확한 핵실험 진앙지
정부 당국의 발표대로라면, 북한과 직접 당사국이자 지리적으로 가장 근접한 우리 정부의 정보 수집 능력이 주변국에 비해 뒤처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 미국, 러시아 등 각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들 국가는 핵실험 정보를 우리보다 앞서 입수했다.
그러나 정부 당국의 주장과 달리 핵심라인에선 이미 핵실험 정보를 알고 있었을 개연성이 없지 않다.
한나라당 등 일각에서도 정부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특히 정부가 적어도 핵실험이 있기 전에 이를 인지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는 것.
중국의 경우, 북한으로부터 핵실험 20분 전에 통보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이 또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북한이 중국과 가장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이미 확실한 정보를 넘겨줬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 9일 한 외신 보도는 이러한 의문을 더욱 부추겼다.
로이터 통신은 “중국은 북한의 핵실험 20분 이전에 북한으로부터 통보를 받고 미국, 일본, 한국에 즉각 알려줬다”며 미국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와 관련, 외교 전문가 K씨는 “중국이 사전에 핵실험 사실을 인지하고 당사국과 주변국에 알려준 것으로 안다”며 “국정원, 청와대 등은 적어도 핵실험 전에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또, “국정원, 청와대 등은 속성상 정보의 정확한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이날 오후 3시에 속개된 정보위에서 김 원장은 “11시 7분에 (북한 핵실험 사실을) 알았다”고 주장했다.
물론 김 원장이 핵실험 사실을 사전에 몰랐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김 원장은 이날 오전 정보위 참석차 9시경 국정원 청사를 나섰다. 그리고 10시 17분에 정보위가 시작된 이후 줄곧 자리에 앉아 있었다. 국정원 수뇌부 또한 대부분 국회로 이동한 상태였다. 중국이 핵실험 20분 전에 한국 외교 당국에 이 사실을 알렸더라도, 제대로 보고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은 아니었다.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10시 30분을 전후해서 북한 핵실험 사실이 김하중 주중대사에게 전달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곧바로 청와대, 외교부, 국정원 등에 보냈을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그래도 국정원이 책임을 면키는 어렵다. 국정원이 사전에 핵실험 징후를 포착하지 못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국정원 일각에선, “수뇌부가 북한 핵실험 징후에 대한 보고를 ‘늑대 소년’의 얘기쯤으로 흘려버린 측면도 있는 것 같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또 한 가지 의문은 청와대가 ‘매우’ 신속하게 움직였다는 점이다. 지질자원연구원이 사전에 핵실험 여부를 타진하기 위해 준비하지 않고서는 이처럼 신속하게 정보가 전달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진파가 입수됐다고 해도 핵실험을 의심하거나, 안보에 위협적인 상황으로 판단하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
이날 연구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지진파 감지 사실을 신속하게 보고했고, 청와대는 곧바로 대변인 논평을 냈다. 또 불과 30여분 뒤 반기문 외교부장관, 이종석 통일부장관, 윤광웅 국방부장관 등이 참석하는 안보장관회의가 소집됐다. 김 원장도 11시 15분경 급히 청와대로 출발했다.
국회 정보위 한 관계자는 “김승규 국정원장이 국회에 출석해 있었더라도, 김하중 대사가 청와대와 외교부 장관에게는 즉시 보고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테르팍스 통신은 ‘북한이 2시간 전에 러시아 정부에 핵실험을 통보했다’고 보도했지만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24시간 전 정보 입수설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의 보좌진은 “정부가 핵실험 하루 전에 정보를 입수해 놓고 있었다는 첩보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우리 정부가 대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이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한편, 지질자원연구원은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수정했다. 당초 함북 김책시 상평리에서 북동쪽으로 51Km 떨어진 함북 길주군이 유력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