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취적 CEO형 어윤대 총장
2006-09-08 구명석
장비의 추진력 조조의 ‘리더십’ 겸비해
고려대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나 오랜만에 모교를 찾은 졸업생은 고풍스런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진다. 정겹지만 왠지 모르게 촌스러운 느낌을 주던 예전 고려대의 풍경, 혹은 이미지와는 너무도 다르게 캠퍼스가 현대적이고 세련되게 변화했기 때문이다. ‘막걸리 대학’에서 ‘와인대학’으로 혁신적인 변화의 주도는 국제경쟁력 강화를 모토로 내세운 바로 어윤대 총장의 작품이다. 한편, 최근 김병준 교육부총리의 사의 표명에 따라 여권과 교육계에서는 교육부총리 후임을 놓고 후보 중 한명으로 어윤대 총장이 거명되면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내의 대표적인 CEO형 총장으로 불리는 ‘어윤대 총장’을 만나보자.
‘막걸리 대학’을 ‘와인 대학’으로 변화시켜
‘글로벌 인재 양성’을 교육의 최대 화두로
미국 유학시절 만난 아내의 노래 실력에 반해 결혼
‘글로벌 대학’집중 육성해
어윤대(魚允大·60)고려대 총장이 이처럼 빛을 발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2년 전 그는 1,100여명의 고려대 교수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경영학자이자 국제금융 전문가로 명성을 떨쳐온 그가 15대 총장을 맡은 이후(2003년 2월 20일)의 그는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펄펄 뛰며 자신의 존재를 입증해 보이고 있다. ‘장비(張飛)의 얼굴을 한 조조(曹操)’라는 별칭도 얻었다. 3년5개월 동안 선보인 공격적인 업무추진력과 치밀한 대학 발전전략을 지켜보며 교수·동문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장비의 추진력과 조조의 전략이 합해진다면 두려울 것이 무엇 있으랴. 그 별명이 허명이 아님을 증명이라도 하듯 어 총장은 고려대를 몰라보게 바꿔놓았다. 그는 작년 말 ‘글로벌 비전 선포식’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지금 세계로 나가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지 않으면 미래의 중심에 설 수 없다. ‘명문사학’‘민족 지성의 산실’이라는 종전의 수식어를 모두 버리고 국제무대에서 세계 지성과 경쟁하자. 2010년까지 세계 100대 일류대학으로 우뚝 서겠다.”
어 총장이 제시한 비전은 한마디로 ‘글로벌 고려대’로 구체적이고 명확했다. 고려대를 글로벌대학으로 만들어 세계 100대 사립대학으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어 총장은 개혁의 실탄이 될 대학발전자금을 끌어 모으는 데서부터 시작했다. “총장 임무의 80%는 돈 끌어오기다”라는 말도 했다. 100주년 기념품으로 고려대가 자랑하는 막걸리 대신 와인을 돌리며 동문들의 지갑을 열게 했다. 어 총장이 취임한 이후 모금한 발전기금은 모두 2,094억원(재단 출연금 700여억원 제외). 휴일 빼고 1년 근무일을 240일로 잡으면 하루 4억5,000만원씩 모금한 셈이다. 고려대 100년 역사상 최고기록이다. 이 중 어 총장이 직접 모은 금액은 1,600억원에 달한다. 발전기금을 낸 대기업만 10여곳.
글로벌 대학은 글로벌 언어에서부터
선택과 집중 전략도 확실히 했다. 지난해 영국의 유력 일간지 `더 타임스(THE TIMES)`에서 실시한 세계 대학 평가에서 고려대는 아시아 사립대학 중 가장 높은 184위에 올랐다.
어 총장의 눈높이가 세계 일류 대학인만큼 학교의 모든 정책은 글로벌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선 취임하자마자 ‘영어 상용화’를 가장 강력하게 주장했는데 그의 말은 곧 실천으로 옮겨졌다.
“글로벌 대학은 글로벌 언어에서부터”라는 신념에서 영어강의를 대폭 늘렸다. 현재 일반교과목 강의의 22%를 영어로 진행하고 있고 2010년에는 강의의 50%를 영어로 한다.
외국 대학과의 학술교류협정 추진에도 매진했다. 교류협정을 체결한 외국대학 및 기관이 취임 전 117곳에서 543군데로 늘어났다.
오는 12월 20일 4년 임기가 만료되는 어 총장이 이룩한 고려대의 놀라운 변화에 다른 대학 총장은 물론, 대기업 CEO들까지 관심을 보이며 주목하고 있다.
아이디어 맨 어 총장…하루 4억5,000만원씩 모금
‘상아탑’에 갇혀 있는 ‘학자형 총장’의 시대는 갔다. 이제는 기금을 끌어당겨 대학발전을 꾀하는 ‘CEO형 총장’의 시대다. 개혁과 대학발전에는 돈이 든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어 총장은 취임하자마자 마치 준비된 사람처럼 사업적 수완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개교 100주년 기념품을 와인으로 선정한 것은 그의 아이디어였다. ‘막걸리 고대’에서 ‘와인 고대’로 변화시키려는 전략적 선택이었다. 작년 여름 ‘불볕 더위로 프랑스 포도 작황이 좋아 포도주가 그 어느 해보다도 우수한 맛을 낼 것’이라는 언론 보도를 접한 것이 시작이었다. 어 총장은 이참에 ‘막걸리 고대’라는 토속적 이미지를 바꾸기로 했다.
“그동안 고려대 앞에는 늘 ‘민족’이라는 수식어가 따랐는데 이것을 떼고 ‘글로벌’을 붙일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었다. 100주년 기념품으로 와인을 고르는 것이 좋은 계기라고 판단했다. 단순한 웰빙 유행에 따라가는 호사스러운 취미가 아니라 새로운 고려대 출발의 상징이다.”
보통 프랑스 사람이 특별한 날에 마시는 와인을 고려대는 작년에 무려 2만병이나 주문했다. 결과는 대성공. 언론은 고려대의 이미지 변신 의지를 잇따라 보도했고 재학생의 자부심도 한층 높아졌다. 와인뿐만 아니다. 그의 풍부한 아이디어는 사소한 것에서도 발휘된다. 작년 말 10억원의 기부금 유치에 성공했을 때 현장 검증하러온 관계자들을 위해 고려대 설립 사상 처음으로 건물 앞 입구에 ‘붉은 카펫’을 까는 호텔급 서비스를 연출했다. 딱딱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교수집단에게 정성어린 대접을 받은 관계자들은 감동을 한 아름 안고 돌아갔다고 한다.
어윤대 총장이 말하는 인생 & 가족사랑법
“경남중, 경기고에 다닐 때 영화관이나 야구장에 가는 것을 정말 좋아했다. 중학교 땐 영화 ‘허리케인’을 보러 갔다가 담임선생님을 만나 진땀을 뺐다. 이 정도가 내가 학창시절 저지른 행동 중 가장 큰 탈선이었다”고 어 총장은 학창 시절을 말했다.
경남 진해 출신인 어 총장은 사업가인 아버지와 전업 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학창시절을 평범하게 보낸 그는 공부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지만, 공부할 땐 집중력을 발휘해 성적은 늘 상위권을 유지했다. 부산에서 중학교를 다녔던 그는 서울 경기고에 진학하며 첫 ‘서울유학’ 생활을 경험했다. 하지만 천성적으로 자신감을 타고난 그는 결코 기죽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운명의 힘에 이끌려’ 고려대 경영학과에 진학했고, 미국 미시간대에서 국제금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업하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경영을 전공하기로 결심. 처음부터 공부를 계속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고려대 대학원에 수석으로 합격하면서 인생의 항로가 바뀌었다. 석사학위를 받고 모교 후배들에게 강의를 하며 그는 가르치는 일에 매력을 느껴 유학을 떠났다.
그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중 지인의 소개로 아내 정복주 이화여대 음대 학장(58)을 만났다. 당시 그는 미시간 주에 있었고 정 교수는 인디애나대에서 성악을 공부하고 있었다. 노래엔 소질이 없다는 어 총장은 “아내가 나의 가장 큰 약점의 전문가여서 반했다”고 털어놓는다. 첫 만남 후 그는 중고 자동차를 구입해 틈만 나면 아내를 만나러 미시간주에서 인디애나주로 찾아갔다고 한다. 부산과 평양 정도의 거리를 오가야 했지만 사랑이 싹트기 시작해서인지 전혀 피곤한 줄 몰랐다고 한다. 부인 정 교수는 어 총장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당시 “여성도 능력이 있다면 일을 해야 한다”는 어 총장의 말이 결정적으로 정 교수의 마음을 흔들었다고.
두 사람은 만난 지 1년 만인 1976년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1년 뒤 얻은 아들 호선군(29)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현재 증권사에서 근무 중이다. 차남 준선군(24)은 미시간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대체 군복무 중이다. 어머니의 예술적 감각을 물려받은 둘째 아들은 사진과 영화에 푹 빠져 지낸다고 한다.
어 총장은 가정에서 웬만해선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자상한 아버지로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하기보다는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도록 지도해왔다고 한다. 아이들이 알아서 학습시간표를 짜고 하루에 마쳐야 할 공부를 끝내도록 옆에서 조언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다. 어 총장은 “두 아들 중 하나는 나를 따라 교수가 됐으면 했는데 둘 다 기업에서 근무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다. 그런 아이들의 의사를 존중한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올해 결혼 30주년을 맞은 어윤대 총장 부부는 고대 총장, 이대 학장으로 활약하며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대화할 시간이 부족할수록, 배우자를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을 드러내자’는 것이 어 총장 부부의 남다른 사랑법이다.
“대학 글로벌化” 그는 아직도 배고프다!!!
어 총장 재임 3년 반이 넘는 동안 학교 분위기는 싹 바뀌었다. 어 총장은 거대한 변화의 성공을 동문들의 덕택으로 돌렸다. “변화를 갈망하는 교우들의 욕구가 변화의 원동력이다. 나는 거기에 비전을 제시한 것뿐이다.”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뤘던 히딩크감독처럼 어 총장은 여전히 배고프다. “골드먼삭스는 한국이 2025년에 국민소득 5만1,000불로 세계 3대 강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처럼 한국이 세계적 지도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고려대가 소르본, 옥스퍼드 못지않은 세계적 대학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열악한 국내 현실은 어 총장의 발목을 잡는다. 비판을 받았던 `등록금 1,500만원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1,500만원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미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 정도인데 대학 등록금은 약 3,000만원 수준이다. 그렇다면 1인당 1만5,000달러 소득인 한국의 대학도 1,500만원 정도는 돼야 한다.”
어 총장은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키려면 교수들을 지금보다 배 정도는 늘려야 한다. 또한 적어도 자연계 대학원생들에게는 학비를 받지 말아야 한다”면서 “걸림돌이 학교 예산”이라고 했다. “정부의 지원금이 전체 대학 예산의 2~4%에 불과하다. 20%에 가까운 일본 미국과 비교할 수가 없다. 총장들이 ‘세일즈맨’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어 총장은 3년 동안 기부금만 3,000억원을 모금했다. 등록금 문제에 대해 어 총장은 “정부에 가서 대학 지원을 늘려 달라고 요구해야지, 핵심에 대한 분석 없이 무조건 학교 당국을 비판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 총장은 색다른 해법을 제시했다. ‘졸업생 자녀에 대한 입학우대(legacy)’였다. “돈을 내고 대학에 들어가는 기여입학제는 정서적으로 곤란하다. 하지만 사회에 나가 학교에 공헌한 동문들의 자녀에게 입학 때 우대를 해주면 사회적으로 반대가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어 총장은 현재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을 맡고 있다. 유력한 한국은행 총재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릴 정도로 저명한 경제ㆍ금융 전문가이기도 하다. “소수의 고소득 계층이 나눔의 정서를 가져야 한다. 또한 제도적으로 OECD의 다른 국가에 비해 낮은 사회안전망에 대한 예산을 확충해야 한다”면서 양극화 해소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았다.
어윤대 총장, 정치권 등으로부터 러브콜 쇄도
여권과 교육계에서는 교육부총리로 거론
美 GE 크로톤빌 연수에 참석 목적 출국 예정
청와대는 천정배 법무부 장관 사퇴에 이은 김병준 교육부총리의 사의 표명에 따라 금명간 이들 부처에 대한 개각 시기를 정하고 후임 인선에 본격 착수할 것으로 지난 3일 알려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후속 개각 문제와 관련, “현재 교육부총리의 경우 후임자를 거론하는 단계는 아니다”며 “일단 이번주 안에 개각의 원칙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당초 내주 초 노 대통령의 휴가 복귀와 함께 법무장관 인선을 단행할 방침이었으나, 교육부총리 개각 요인이 발생함에 따라 이들 부처 개각을 동시에 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법무장관 후보군으로는 김성호 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과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3, 4명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관계자는 “법무장관의 경우 1주 전부터 후보군을 10명 정도로 넓혀 적임자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총리 인선의 경우 김 부총리의 사표수리가 이뤄지는 시점에 후임 인선 논의에 들어갈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과 교육계에서는 열린우리당 이미경 의원, 어윤대 고려대 총장, 신인령 전이화여대 총장,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 설동근 현 대통령 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위원장 등이 거명되고 있다. 이와 함께 여권 일각에선 김 부총리 파동 등에 따른 국정쇄신 차원에서 이번 개각 대상에 외교, 국방장관이 포함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어 주목된다.
한편, 어 총장은 GE경영을 배우러 GE의 사내 연수원인 크로톤빌(잭웰치리더십센터)로 간다. 한국 최고경영자(CEO)들을 위한 ‘맞춤형 연수’로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열리는 이번 프로그램에는 한준호 한국전력 사장, 장원기 삼성전자 부사장, 김성태 LG전자 부사장, 김완식 SK 전무, 박준철 현대자동차 전무 등을 비롯해 대한항공 두산중공업 등 국내 대기업 고위 임원과 함께 동참한다. 연수는 19일부터 26일까지 진행하며 제프리 이멜트 회장을 비롯해 GE 주요 경영진이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