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 얼굴 가진 영화계의 보석

2005-12-19     김경하 프리랜서 
올 겨울, 전도연이 크게 웃었다. 영화 ‘너는 내운명’으로 각종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휩쓸고 있는 전도연이 양쪽 입꼬리가 귀에 걸린 채 한 말은 “상은 받아도 받아도 좋은 것 같다”는 것이었다. 연기경력 13년차의 연기자임에도 불구하고, 늘 변화된 캐릭터로 보는 이로 하여금 ‘새롭고 신선함’을 느끼게 해주는 배우 전도연. 이제 아무도 쫓아오지 못할 정도로 높은 자리에 우뚝 올라가버린 그녀의 연기 인생, 그 족적을 짚어봤다. 올해는 그야말로 전도연의 해이다. 그녀는 올 가을 개봉한 영화 ‘너는 내운명’과 SBS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을 동시에 히트시키면서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유난히 상복많은 그녀, 전도연

‘죽어도 좋아’의 박진표 감독이 만든 영화 ‘너는 내운명’에서 전도연은 에이즈에 걸린 다방 레지로 나와 순박한 시골 노총각 석중(황정민)과 운명적인 사랑을 연기한다. 이들의 애절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보기 위해 모여든 관객은 무려 300만명에 달했다. 또한 SBS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서 전도연은 대통령의 딸로 분해 평범한 강력반 형사(김주혁)와 체코 프라하에서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보여줬고, 이 드라마 역시 30%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그리고 전도연의 이런 활약에 부응이라도 하듯, 올 연말 각종 시상식의 트로피도 모두 전도연에게로 돌아갔다. 우선 그녀는 지난 4일 열렸던 대한민국영화대상에서 영화 ‘너는 내운명’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 지난 8일 열린 2005여성영화제에서 연기상, 지난 12일 열린 제25회 영평상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지난 15일 열린 제13회 춘사나운규영화예술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12월 들어서만 4개의 굵직한 상을 받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앞으로도 전도연은 SBS에서 열연한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으로 오는 31일 펼쳐질 SBS ‘연기대상’에서도 유력한 ‘연기대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어, 또 하나의 수상트로피를 가져갈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지난 11월 29일 있었던 제26회 청룡영화제에서는 아쉽게도 이영애에게 여우주연상 자리를 내주었다. 특히 이날 전도연이 이영애에게 5:4 한 표 차이로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내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팬들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었다. 전도연은 유난히 청룡영화제와는 인연이 없었다. 99년 청룡영화상에서는 영화 ‘내 마음의 풍금’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지만, 이후 2000년부터 올해까지는 6년째 여우주연상 후보에만 이름을 올리고 정작 수상은 하지 못한 것이다. 2000년에는 ‘해피엔드’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영화‘ 물고기자리’의 이미연에게 자리를 내줬고, 2001년에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로 이름을 올렸지만, 여우주연상은 장진영에게 돌아갔다.

또한 2002년에는 ‘피도 눈물도 없이’로 2003년에는 ‘스캔들’로, 2004년에는 ‘인어공주’로, 청룡영화상에 여우주연상 후보 이름을 올렸지만, 아쉽게 수상을 하지 못했다. 올해도 역시 그녀는 청룡영화제에서는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지 못했지만, 박진표 감독이 감독상, 황정민이 남우주연상을 각각 수상해, 영화 ‘너는 내운명’의 진가를 증명해 줬다. 특히 이날 황정민은 수상소감에서 전도연을 향해 “도연아, 너와 연기하게 된 건 정말 기적같은 일이었어”라고 말해 전도연을 기쁘게 만들었다. 이날 전도연은 황정민의 수상소감에 대해 “상을 받은 것만큼 기뻤다”고 말하며 감격스러워했다.황정민의 이러한 배려에 부응하듯 전도연 역시 대한민국영화대상 등 여러 시상식에서 “황정민씨에게 감사한다”는 수상소감을 잊지 않았다. 이렇게 다정함을 과시했던 두 사람은 각종 설문조사 등에서 ‘베스트 커플’로 꼽히기도 했다.

데뷔초,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전도연이 연기활동을 시작한 것은 올해로 13년째다. 현재 각종 드라마와 영화계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러브콜이 쇄도하고 있지만, 그녀의 이런 스타성은 온전히 ‘노력과 끈기의 결정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녀가 연예계에 데뷔한 건 서울예술대학 방송연예학과를 졸업한 뒤 92년 ‘우리들의 천국’을 통해서다. 하지만 쌍꺼풀에, 오똑한 콧날 등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늘씬한 미녀들이 우후죽순으로 연예계에 데뷔하고 있는 가운데, 언뜻 평범해 보이는 전도연의 외모는 처음부터 시청자들의 눈에 띄지 못했다. 때문에 ‘우리들의 천국’ 이후 출연한 ‘사랑의 향기’에서 당찬 ‘신세대’ 역을 맡았던 그녀는 당대 톱스타였던 최진실에 가려졌고, MBC ‘종합병원’에서는 신은경, 김지수에 가려져 조연 간호사로서만 이름을 알렸다. 또한 ‘젊은이의 양지’에도 출연했지만, 역시 배용준, 박상아 등에 밀려 조연으로만 기억됐다. 여러 편의 드라마를 통해 전도연이라는 배우가 서서히 자신의 이름을 알려가고 있을 무렵인 97년, 그녀는 영화 ‘접속’을 통해 확실히 자신의 이름을 대중들에게 각인시켰다.

‘접속’에서 홈쇼핑가이드로 출연한 그녀는 자신의 사랑을 말하지 못하고 소극적인 사랑을 하는 수현 역을 맡아 영화를 히트시켰다. 98년 두 번째 영화 ‘약속’에서 전도연은 박신양과 가슴시린 사랑연기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멜로의 여왕’으로 평가받았다. 99년에는 ‘내 마음의 풍금’에서 산골 작은 학교에 부임해온 총각 선생님(이병헌)을 짝사랑하는 초등학생 홍연역을 맡아 순박한 시골 처녀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전도연의 과감한 연기변신은 그칠 줄 모르고 이어졌다. 이후 2000년 ‘해피엔드’에서 그녀는 바람난 유부녀 역을 맡아 과감한 노출연기를 선보여 찬사를 받았다. 2001년에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를 통해 따뜻하고 잔잔한 일상의 아름다운 사랑을 표현했고, 2002년에는 ‘피도 눈물도 없이’를 통해 팜므파탈 연기를 펼치며 연기변신을 했고, 2003년 ‘스캔들’에서는 정숙한 조선시대 여인의 단아함을 보여주는 깔끔한 연기를 선보였다. 또 2004년 ‘인어공주’에서는 제주도 사투리를 맛깔나게 구사하며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1인2역을 보여줘 연기변신의 한계가 없음을 보여줬다.

그리고 올해 가을에 개봉한 영화 ‘너는 내운명’까지 전도연이 출연한 영화는 모두 9편에 해당한다. 그녀가 선택한 영화들의 주요 공통점은 모두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전도연도 “영화를 통해 다양한 방식의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9편의 영화 가운데 가장 그녀의 기억에 남는 영화는 뭐가 있었을까. 최근 한 토크쇼에 출연한 그녀는 ‘해피엔드’의 최보라 역과 ‘너는 내운명’의 전은하 역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꼽았다. 그 이유는 ‘해피엔드’는 자신의 많은 걸 버리고 연기한 작품이기 때문이고, ‘너는 내운명’은 주위사람들에게 이전의 연기와 달라졌다는 평을 받은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장기간 연기자로서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독보적인 여배우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우선 영화 전문가들은 전도연의 ‘끈기’에 높은 점수를 줬다. 위에서 말했던 바와 같이 처음에는 평범해 보이는 외모와 연기력 때문에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그녀의 연기에 대한 사랑과 포기를 모르는 꾸준한 끈기가 지금의 그녀를 있게 만들었다는 얘기다.

끈기와 온몸을 던지는 연기투혼

사실 한때 전도연과 함께 ‘90년대 트로이카’라고 불리던 심은하, 고소영은 연기에 대한 의지가 희미했던 것이 사실이다. 5년전 은퇴를 선언한 심은하는 올해 전격 결혼해, 완전히 연예계에서 사라질 것으로 보이며, 내년 초 다시 영화로 컴백한다고 발표한 고소영은 지난 2002년 영화 ‘이중간첩’ 이후 활동을 잠정 중단했었다. 때문에 사실상 90년대 트로이카 중 그 명성에 걸맞게 활발한 활동을 해왔던 것은 전도연뿐이었다. 또 한 가지 영화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전도연을 칭찬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온몸을 던지는 연기열정’이다.

이는 총 9편의 영화를 통해 보여줬던 다양한 연기변신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사실 영화 ‘해피엔드’에서 전도연이 보여줬던 과감한 노출연기는 여배우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또한 이같은 이미지를 상상하고 있던 관객 앞에, 단아한 조선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나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배우가 바로 전도연이다. 이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연기에 집중하는 여배우는 정말 보기 힘들다는 평이다. 비록 데뷔할 때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지만, 차근차근 자신만의 영역을 확장해 가더니, 어느 순간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로 우뚝 서 있다. 연기에 대한 배우 전도연의 열정과 연기변신은 언제까지 계속 이어질지, 그녀의 행보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