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60일 만에 전격 경질 속사정 청와대 청탁거절

2006-09-10     이금미 
유진룡 전문화관광부 차관 낙마 秘 스토리

유진룡 전문화관광부 차관의 경질을 두고 정치권의 해석이 뒤따르고 있다. 취임 6개월 만에 전격 교체하기까지 청와대와 유 전차관간 말 못할 속사정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시각이다. 취임 6개월 만에 경질은 공직사회에서 이례적인 일임에도 인사 단행 직후 청와대가 명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은 점도 의혹을 키우고 있는 상황이다. 한나라당은 오는 21일 열리는 8월 임시국회에서 이 문제를 집중 추궁함은 물론, 정권 인사시스템 점검을 위한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유진룡 경질’이 정치권의 새로운 쟁점으로 부상할 조짐이다.



유 전차관의 경질을 두고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란 가운데 핵심은 “청와대의 ‘보복인사’가 아니냐”는 데 있다. ‘대통령 인사권’과 관련, 최근 청와대와 신경전을 벌인 탓에 여당 문화관광위원회(이하 문광위) 소속 의원들의 경우 유 전차관 경질에 대해 쉬쉬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다수의 한나라당 문광위 소속 의원들은 차관급 인사가 단행된 지난 8일 이후 연일 청와대를 향한 날선 공격에 나서고 있다.

거절 ‘대가’ 민정수석실 ‘조사’
정종복 한나라당 의원은 “유 전차관이 경질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고, 여러가지 정황으로 볼 때 청와대의 ‘괘씸죄’에 걸린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괘씸죄의 성격은 청와대의 청탁성 인사에 대한 유 전차관의 거절이다. 유 전차관 역시 언론을 통해 보복 인사임을 뒷받침하는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는 한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아리랑TV 부사장, 한국영상자료원장 자리에 청와대에서 너무 ‘급(級)’이 안 되는 사람들의 인사청탁을 해왔다”며 “이는 일부일 뿐 더 많은 청탁, 그런 일들이 여럿 있었고, 그게 쌓여서 이렇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유 전차관이 밝힌 인사청탁에는 이백만 홍보수석비서관,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도 등장한다. 게다가 유 전차관은 인사청탁을 거부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조사를 받은 사실도 공개했다. 그동안 국회 문광위 주변에선 문화관광부(이하 문광부) 산하기관 및 단체 인사에 대한 청와대의 낙하산 인사를 두고 불만을 제기해 왔던 게 사실이다. 아울러 유 전차관이 이를 거절하기가 일쑤였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아리랑국제방송(아리랑TV)의 부사장 직의 경우 지난 6월 청와대에서 정치인 출신 인사를 추천했는데, 유 전차관이 “적절한 인물이 아니다”며 거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영상자료원장 공모와 관련, 유 전차관이 청와대가 추천한 후보를 후보추천위원회 면접에서 떨어뜨렸다는 얘기도 있다.

보수언론에 386 참모 비방?
유 전차관 경질과 관련, 인사청탁 외에 국회 문광위 주변에선 ‘신문법’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나라당 문광위 한 관계자는 “유 전차관은 인사 문제뿐만 아니라 신문법 제정 과정에서도 여권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는 얘기가 많다”고 전했다. 때는 2004년 유 전차관이 문광부 기획관리실장으로 재직할 무렵이다. 그해 말 여권이 주도한 신문법 제정이 있었고, 유 전차관은 법안의 문제점을 일일이 지적하며 개선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문제로 청와대와 충돌을 빚었다는 게 정설이다. 신문법은 노무현 대통령이 역점을 둔 참여정부 사업 중의 하나다. 유 전차관의 경질 문제가 불거진 후 청와대 역시 “참여정부 개혁정책의 핵심인 신문법 후속 조치를 수수 방기했기 때문”이라며 “신문사들의 공동배달제 추진 등을 담당하는 신문유통원의 정상화 조치를 외면해 수 차례 경고했음에도 책임을 회피했다”고 했다. 이와 과련, 유 전차관이 보수언론에 인사 사항 및 신문법 조항 등의 관련 정보를 흘렸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또 언론사 기자들에게 노 대통령과 청와대 386 참모들을 비방했다는 얘기도 있다. 이러한 정황상 일각에선 청와대가 유 전차관을 전격 경질한 배경에 유 전차관의 언론개혁 업무 및 언론관도 작용했을 것이란 해석을 내놓고 있다. 어쨌든, 이번 사건과 관련 유 전차관과 청와대의 언급이 이어질수록 진실게임 공방전으로 치닫고 있다. 먼저 인사청탁 거절로 교체됐다는 유 전차관의 주장에 대해 청와대는 ‘직무태만’이 경질이유라는 주장이다. 인사와 관련해 “청와대와 마찰을 빚어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조사를 받았다”는 유 전차관의 언급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직무유기가 심각하다는 홍보수석실의 보고서를 토대로 직무감찰에 착수, 공직기강 확립차원에서 경질을 건의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공직사회에서 예외적이라 할 수 있는 취임 6개월 만에 경질이라는 인사를 단행하고도 문제가 불거지기 전 이렇다할 이유를 밝히지 않은 데 따른 의혹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문광부 내부 신망 두터워
이러한 배경에는 지난 9일 유 전차관의 e메일 이임 인사도 한몫하고 있다. 유 전차관은 문광부 직원들에게 띄운 이임인사에서 “드리고 싶은 말들은 많지만, 조용히 떠나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참고 가려합니다”라고 긴 여운을 남겼다. 또 대중무협소설 ‘소오강호’(笑傲江湖 자신만만하게 강호무림을 비웃는다)를 언급하며 “재미있는 세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덧붙여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이임사가 전해지면서 문광부 내부 통신망에는 유 전차관의 교체를 안타까워하고, 청와대의 차관 교체를 비판하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유 전차관은 문광부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로, 문광부 내 다면평가에서 늘 최상위를 차지했으며 직원들의 신망이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문광부 주변에서 애초 차관을 교체한다는 청와대측의 결정이 김명곤 문광부 장관에 통보됐을 때의 상황이 알려지면서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또 다른 잣대로 떠오르고 있다. 김 장관이 여러 번 청와대측에 유 전차관의 경질을 반대하는 의견을 전달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