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박근혜 헤쳐 모여” 소문무성
2006-07-20 이금미
퇴임 후 이 전시장이 새롭게 둥지를 튼 ‘안국포럼’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전당대회 직후 이 전시장의 견지동 사무실은 분주하기만 하다. 이 전시장에 귀엣말을 넣는 비선라인의 발걸음도 잦다. 게다가 지난 지방선거 공천 과정에서 탈락한 과거 한나라당 소속 인사들이 은밀히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는 소문도 무성하다.
사실, 이 전시장측에선 이재오 전원내대표의 압도적 승리를 예측했던 게 사실이다. 대중적 인지도에서 앞서는 이 전대표의 경우, 사전 여론조사에서 강 대표를 제압했기 때문이다.
이명박의 두 가지 ‘실수’
물론 약간의 판단 실수도 있었다. 이번 전당대회 성격을 지난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의 분위기로 착각한 것이다. 이 전시장은 일찌감치 “차기 당대표는 개혁 성향의 인사가 돼야 한다”며 이 전대표를 우회적으로 지지했다. 당내 지지기반이 없었던 오세훈 서울시장이 그랬듯, ‘경선쯤이야’하는 생각이 앞섰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전당대회에 임하는 대의원들의 투표 기준과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임하는 대의원들의 그것은 애초부터 달랐다는 게 한나라당의 내부 분석이다.
지난 서울시장 후보 경선의 경우 본선 경쟁력이 최우선 과제였다. 게다가 대의원의 상당수는 당선자와 함께 동반 출마할 광역의원 및 기초단체장, 기초의원 후보들이었다. 반면, 전당대회는 한나라당의 얼굴을 뽑는 ‘기본적인 성향’과 직결되는 문제였던 것이다. 두 번째 실수는 이 전시장 스스로 대리전 구도를 즐겼다는 데 있다. 본격적인 대선전에서 충돌하기 전, 이심(李心) 대 박심(朴心), 그 세의 크기를 가늠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애초 대리전을 누가 시작했는가를 따지기도 전에, 전당대회는 대리전 양상을 띠고 전개됐다. 강 대표측의 공세가 강화될수록 대리전 불길은 뜨겁게 타올랐다. 그리고 박 전대표의 움직임이 감지됐을 때는, 이미 불길을 진화하기에 늦은 시기였다. 대리전 불길은 걷잡을 수없이 한나라당을 둘러쌌고, 최종 결과는 이 전시장측이 미리 짜놓은 각본상에 없었다. 대선주자간 본격적인 기 싸움에서 보기 좋게 패배한 것이다. 실수에 대한 뒤늦은 후회는 전쟁터에서 통하지 않는다.
조직 없이 대권은 없다
이 전시장의 ‘전략 수정’도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더 이상 ‘대중적 인지도’에만 전념하지 않겠다는 복안이다. 막판, 박 전대표의 동선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권을 쥐고 있던 박 전대표는 지방선거 공천을 통해, 전국 대의원 ‘물갈이’에 이미 성공한 바 있다. 여기에 그동안 중간지대에 놓여 있던 강 대표의 ‘충성맹세’까지 이끌어냄에 따라, 확실한 당내 1인자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다. 때문에 이 전시장 입장에서 엊그제까지 대리전을 등에 업고 이 전시장측을 향해 날선 비난을 쏟아냈던 강재섭 신임 대표의 “공정하게 경선을 관리하겠다”는 호언장담도 승리한자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로만 보일 뿐이다.
박 전대표의 지원으로 당권을 잡은 강 대표가 아닌가. 대선 후보 경선 선거인단 구성문제 등에서 박 전대표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 전시장에게 지난 전당대회는 조직이 없다면 대선 경선은 일찌감치 박 전대표를 위한 잔치에 다름없다는 것을 몸소 실천한 예비 경선이었던 셈이다. 이를 타개할 비책은 이른 바, 문호개방이다. 5·31 지방선거, 공천에서 탈락한 예비 후보들의 ‘무소속’ 출마, 대거 당선, 그리고 이 전시장과의 접촉은 외연확대에 이은 ‘분당 시나리오’를 부추기고 있다.
당시 무소속 출마자들의 공천 불만은 ‘박심 작용’으로 해석되기도 했던 터다. 물론, 영남권에서 이들 무소속 후보들의 선전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한나라당 한 핵심당직자는 “지방선거 공천 과정에서 탈락한 인사들의 경우, 지난 전당대회에서 이 전시장의 ‘특보’를 자임하며, 뛰었던 게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보수 회귀’는 곧 대선 패배
때문에 한나라당 일각에서도 분당 가능성을 빠뜨리지 않는다. 당내 지분확보에 실패한 친이명박 진영이나 소장개혁파의 몰락이 분당이라는 수순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이 전시장 진영에서도 ‘한나라당 분열’에 대해 굳이 말을 아끼지 않는다. 두 번의 대선패배에 이은 당력의 쏠림이 ‘보수 회귀’로 향한다면, 2007년 대선은 뻔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친박근혜·민정계’가 예고된 수순이라면, 한나라당의 수명도 길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강 대표를 비롯한 새 지도부가 ‘색깔’ 빼기에 나선 데서도, 분열 조짐을 사전 차단하기 위한 고심의 흔적이 묻어난다. 강 대표는 당직 인선과정에서 이미지 상쇄를 꾀하고 있다. 측근 기용 보다는 중도 및 소장개혁파를 중용하기 위해 접촉중이다. 이 전시장 진영 역시 이같은 새 지도부의 움직임을 꿰뚫고 있다. 이 전시장의 한측근은 “빨간색에 노랗고 파란 점찍는다고 하얀색이 되는 것은 아니다”며 친박근혜 진영의 움직임을 꼬집었다.
새 지도부의 제안을 반박근혜 진영 누군가 받아들인다고 해서, 큰 틀에서의 변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그렇다고 해서 강 대표를 비롯해 전여옥 강창희 정형근 최고위원 등 친박근혜 진용으로 짜여진 새 지도부를 향해 아쉬운 소리를 할 이 전시장이 아니다. 전당대회 직후 이 전시장측의 공식적인 대응도 “박심이 개입했든 말든, 이심은 없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심이 작용했다면 이 전시장의 압도적인 승리로 귀결됐다는 논리다. 한편, 신당 창당을 염두에 두고 있는 이 전시장 진영은 열린우리당의 구도변화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외부에 돌출 변수가 있다면, 내부의 돌발 상황의 충격은 감소되기 때문이다.
<이금미 기자> nicky@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