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잡을데 없는 전형적 법조인상”

2004-10-29     윤지환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이 이끄는 제3기 헌법재판소가 출범한지 4년이 지났다. 전북 순창 출신인 윤 소장은 59년 고등고시 사법과·행정과를 동시에 합격한 수재로 그동안 모범적인 법조인상으로 꼽혀왔다. 최근 ‘관습헌법’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윤영철 소장. 그는 어떤 인물일까.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사건, 행정수도 이전 헌법소원 위헌선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후 최초이자 초유의 사건으로 기록될 두 사건의 끝에는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이 있었다. 윤영철 헌재 소장은 호남명문가 출신으로 우리나라 초대 대법원장 가인(街人) 김병로 선생의 손녀 사위로 1937년 11월 25일 전북 순창에서 출생했다.

윤 소장은 56년 광주 고등학교를 거쳐 61년 서울대학 법학과를 졸업했다. 윤관 전대법원장의 광주고 후배이고 이수성 전총리, 정해창 전청와대비서실장, 안우만 전법무장관 등과는 서울대 법대 14회 동기로 절친한 사이다.윤 소장은 고등고시 사법과와 행정과를 동시에 합격한 수재로 대학 재학 중이던 1959년 제11회 고등고시 사법·행정과에 합격했다. 이후 윤 소장은 79년 법원행정처 법정국장을 역임했고, 81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84년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장, 86년 수원지방법원장 등을 역임했다.윤 소장에 대해 법조계에선 법 이론에도 밝고 리더십도 뛰어난 인물로 알려졌다. 윤 소장은 군사 독재시절 인권을 강조한 판결을 거침없이 쏟아내 ‘인권 판사’ 또는 꼿꼿한 판사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6공화국 시절에는 구속영장이 신청돼 대기 중인 피의자를 경찰서 유치장에 감금하는 것은 불법이며 국가가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내려 인권신장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윤 소장은 88년에 대법관에 임명돼 94년을 끝으로 법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대법관 시절 탁월한 법 해석 능력과 박식한 법률지식으로 유명했다. 대법관 시절 그를 보좌했던 판사들은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 없어 평하기 어려울 정도로 법관의 전형을 보여주는 분”이라고 말하고 있다.일부에서는 윤 소장의 전반적인 성향에 대해 ‘보수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윤 소장은 국회 탄핵 의결에 대한 과정을 심의하면서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는 절차상 하자도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 바 있는데, 재판에 있어서는 소수의견도 적극 수용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2001년 동아일보사가 1980년대 신군부의 동아방송 주식 강제양도 사건과 관련해 헌법소원을 제기하자 “1980년 언론통폐합 조치는 언론의 자유와 권리의 본질을 전면적으로 침해했기 때문에 위헌”이라며 당시 주심을 맡았던 헌법재판관인 권성 재판관과 둘이서 ‘위헌’이라는 소수 의견을 제시했다. 이 헌법소원은 동아일보사가 동아방송 양도무효확인소송에서 취소권 행사 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패소한 후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헌법재판소법 68조1항이 위헌이라며 제기한 것으로, 7대2의 합헌 결정이 내려졌었다. 또 대법관 시절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부인이 아이를 혼자 키워오다 이혼했을 경우 부인은 전남편에게 향후 양육비는 물론 과거의 양육비까지 청구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렸을 때 “부모는 모두 자녀를 키울 책임이 있으므로 어느 한쪽이 혼자서 그 자녀를 양육했다면 부모는 자기 할 일을 한 것일 뿐, 배우자의 양육 책임을 대신해 준 것으로 볼 수 없다”며 과거의 양육비까지 인정할 수 없다는 소수 의견을 내기도 했다.

동기인 안우만 전법무장관은 “우리 나이 또래가 다 그렇듯이 보수적”이라며 “원만한 성격으로 주변과 의견충돌이 거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헌재의 재판관들은 보수적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데 대해 윤 소장은 “양쪽 모두 다르게 볼 수 있다. 선을 그어서 재판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이후 개인사무실을 냈고 96년에는 여성정책심의위원회 위원직을 역임했다. 1997년부터는 김의재(金義在) 변호사와 함께 김·장·리 공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로 일하면서 변호사로서 역량을 발휘했다. 99년 신문윤리위원장을 거친 윤 소장은 2000년 헌법재판소장에 임명된 이후 현재까지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지난 2000년 9월 5일 국회 146호 청문회장에서는 헌법재판소장 임명 동의안을 둘러싼 청문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윤 소장의 삼성전자 고문변호사 경력이 문제됐었다.

청문회에서 여·야 의원들은 “삼성그룹 상임 법률고문으로 3년 동안 7억2,000여만원을 받은 것은 지나치지 않습니까. 혹시 삼성그룹의 변칙상속을 도와준 대가가 아닙니까”라며 윤 소장이 1997년부터 2년여 간 고문변호사로 재직하면서 받은 7억원대의 급여를 문제삼았다. TV방송 카메라를 통해 비춰진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은 의원들의 날카로운 질의를 받고 난처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고등고시 사법과·행정과를 동시에 합격한 수재, 군사독재시절 인권을 강조한 판결을 거침없이 쏟아낸 판사 등 찬사를 받아온 윤 소장이었지만 쏟아지는 질문에 답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윤 소장은 그러나 “삼성으로부터는 상근 법률고문으로서 정당한 대가를 받았다”고 주저없이 답했다.

또 북한을 반정부집단으로 규정한 국가보안법과 비전향 장기수 송환, 납북자 국군포로 처리 등 남북관계에 관련된 문제는 “충분히 고려하겠다”며 즉답을 피했고 공무원노조와 낙태죄 폐지 등에는 신중하게 반대되는 견해를 피력했다. 사실 청문위원으로 선출된 의원들은 청문회 당시 계속되는 정쟁 속에서 시간과 성의 부족으로 질의 내용 준비를 제대로 못했다. 의원들은 또 정기국회 파행의 여파로 상식 이하의 질문을 쏟아내고 방송사 생중계 시간에 맞춰 약속된 청문회 시간을 늦추는 사태까지 연출했다. 결국 윤 소장의 임명 동의안은 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여당 단독으로 열린 국회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일각에서는 정쟁으로 인한 파행 속에서 의원들이 정확한 검증을 하지 못했다며 윤 소장의 임명 동의안 통과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그러나 법조계의 시각은 달랐다. 윤 소장이 공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와 삼성의 법률고문을 맡을 때도 청렴·강직한 법관시절의 모습을 잃지 않았던 것으로 평가했고, 따라서 헌재 소장직에는 윤 소장이 적임자라 판단했다.윤 소장에 대한 법조인들의 이러한 신뢰는 아직까지 변함 없어 보인다.서울 중앙지검의 한 고위관계자는 “최근 행정 수도 이전 소원에 대한 ‘관습헌법’ 논란에 대해 일부 법조인들은 윤 소장의 판결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법조인들은 이번 판결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2000년 이후 헌법재판소 주요 사건

●수도권 이전 위헌 판결
●대통령(노무현) 탄핵 사건
●대통령 신임투표 사건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의 요일, 시간 및 당선자결정방식 사건
●국회 상임위원회 위원 강제사임 사건
●국회의원선거에 입후보할 지방자치단체장의 사퇴 시한 사건
●지방교육위원선거에서의 경력자우대 사건
●기초의회선거 입후보자의 정당표방 금지 사건
●지방자치단체와 대통령간의 권한쟁의 사건
●국회의원지역선거구구역표 사건
●2000년총선시민연대 낙선운동 불허 등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