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대표 박대표 진영에 못준다”
‘물밑합의’ 공동전선 펼칠 듯

2006-06-07     이금미 
전국 곳곳에서 여당 후보를 더블 스코어 격차로 제쳤다. 한나라당은 전례 없는 지방선거 압승으로 고무된 표정이 역력하다. 정권 창출, 대선 승리를 위한 기초 공사를 잘 마무리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선거 패배의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여당, 한나라당은 정국 주도권도 갖게 됐다. 물론, 압승의 최대 수혜자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다.

피습 사건 이후 ‘부상 투혼’을 보여주며 막바지까지 지방선거를 진두지휘했다. 한나라당의 또 다른 유력 대권주자인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도지사의 ‘반격 카드’에 시선이 모아지는 이유다. 오는 6월30일 임기를 마치고 중앙 정치무대에 서게 될 이 시장과 손 지사 진영 주변에선 ‘박근혜 무력화’ 프로젝트가 가동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그만큼 박 대표의 대선 레이스 출발선이 저만치 앞서 있다는 얘기다.


박근혜 피습 사건, 지방선거 한나라당의 압승이라는 결과가 없었다면 이들 세 사람의 출발 지점은 혹시 일직선 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치에서 ‘만약’이라는 가정은 통하지 않는다. 정치 일정상 대선 국면으로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발생한 두 개의 커다란 사건은 대권주자 박 대표의 입지를 공고히 해준 반면, 상대적으로 이 시장과 손 지사의 심리적 입지를 위축시키고 말았다.

“박근혜 아성을 깨라”

때문에 박 대표의 향후 대선 행보에도 큰 힘이 실릴 전망이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거세게 밀려왔던 탄핵 역풍에서 당을 지켜낸 박 대표는 이후 크고 작은 재·보궐선거에서도 여당을 상대로 완승을 이끌어 왔다. 특히 이번 선거에선 위기관리 능력까지 보이며 당내 지도력을 재확인하는 성과를 거뒀다. 게다가 그를 바라보는 국민적 시선이 따뜻하다는 것 역시 이 시장과 손 지사에겐 부담이다.

박 대표가 5월20일 피습 이후 보여준 부상 투혼은 ‘국가 지도자’로서의 가능성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데 호재로 작용했다. 실제로 그는 피습 사건 직후 한때 여론조사에서 고건 전국무총리와 이 시장을 제치고 지지도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박 대표 주변에선 “당분간 당내 누구도 박 대표의 아성에 도전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자체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러한 평가는 오는 18일 당대표직을 내놓은 이후 박 대표의 행보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비록 ‘계급장’을 뗐으나, 각종 현안이 발생할 때마나 그의 지향점이 당의 나침반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당 주변에서도 박 대표의 ‘휴식’이 생각보다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7월 초 ‘관리형’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뽑는 전당대회가 예정돼 있다는 것 역시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번 전당대회는 대권후보들의 대리전으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박 대표의 당내 위상은 오는 7월 재·보궐선거에서도 다시 한번 확인될 전망이다. 출마자들의 지원유세 요구가 빗발칠 것이며, 이에 요구하는 형식으로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반박근혜 연대’로 뭉친다

‘이명박-손학규’ 연대의 가시적인 성과도 이 무렵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차기 전당대회에서 친박근혜 인사에게 차기 당대표를 넘겨주지 않는다는 복안이다. 실제로, 지난 1월 이 시장과 손 지사가 이끄는 당내 비주류는 연대를 결성, 이재오 원내대표를 당선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른 바 ‘반(反)박근혜 연대’다. 지방선거 공천에서 박심(朴心)이 작용, 향후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박 대표가 유리한 고지에 섰다는 데 이 시장과 손 지사측의 이견이 없을 정도로 현재 한나라당 조직은 친박근혜 판으로 짜여져 있다.

‘관리형’으로 굳어지고 있는 차기 당대표마저 친박근혜 세력에 뺏긴다면, 이 시장과 손 지사 입장에서 공정한 경선 관리는 일찌감치 물 건너간 셈이다. 이 시장과 손 지사 진영에선 “서울시장 후보 경선을 통해 경험했듯이 탄탄한 조직력도 ‘본선 경쟁력’에서 와해됐다”면서 박 대표를 중심으로 한 당권파의 의지대로 전당대회는 물론 대선 후보 경선도 치러지지 않을 것이라는 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당권과는 거리가 멀지만, 본선 경쟁력으로 당원과 대의원의 표심을 사로잡은 ‘오세훈 효과’를 통해 얻은 자신감 때문이다. 서울시장 후보 경선의 복사판이라 할 수 있는 대선 후보 경선도 같은 양상으로 치러질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박 대표가 그동안 승리로 이끌었던 ‘선거’는 선거일뿐이고, 결국 대선은 ‘콘텐츠’가 좌우할 것이라는 얘기다.

오세훈 카드를 끌어들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비주류 핵심 멤버 정병국 원희룡 박형준 의원 등 소장개혁파들이 향후 당내 풍토나 당권ㆍ대권 경쟁에서도 영향을 미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 역시 심상치 않은 대목이다. 이들 소장개혁파와 정치적 지향점이 가까운 손 지사 진영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논의되고 있는 흐름을 중시하고 있다. 공통된 논의가 압축되면 현실을 바꾸는 상황이 올 것”이라며, 손 지사의 의중을 내비쳤다.

이 시장과 손 지사는 곧 전당대회와 관련, ‘대리전’으로 치러질 것이라는 관측에 쐐기를 박는 것으로 ‘연대’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으로 보인다. 이 시장에 견줘 상대적으로 당내가 입지가 약한 탓에, 손 지사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명박 ‘경선 승복’ 강수로 대응

그렇다 해도 노골적으로 ‘특정 인물’ 내세울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오세훈 카드가 실효를 거뒀던 데는 유력 대권주자들의 공식적인 ‘중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학습효과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장과 손 지사는 공식적으로 각개 전투 형태를 띠고 박풍 차단에 주력할 전망이다. 먼저 선수를 치고 나간 쪽은 예기치 못한 박 대표의 선전에 ‘유탄’을 맞은 이 시장이다.

지방선거 직전까지 “한나라당은 해변가에 놀러온 것 같다”며 박 대표를 중심으로 한 당권파를 우회적으로 비난했던 위풍당당했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선거 직후엔 “박근혜 대표와는 협력이라는 선의의 틀 안에서 경쟁하는 관계다. 박 대표나 나나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 승복하지 않고 둘로 쪼개지면 한나라당은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다”며 경선에 승복하겠다는 의사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이 시장 입장에선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최근 지지도도 정체현상을 보이고 있다. 5·31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박 대표에 밀리고 있는 형국이다. 현직 서울시장의 공과, 예를 들어 청계천 복원 등 가시적인 성과를 통해 지지를 얻어온 이 시장이다. 내달 당내 복귀를 앞둔 퇴임 뒤 지지도를 받쳐줄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때문에 이 시장측은 숨은 고르고 있는 모양새다. 지방선거 국면 이 시장은 업무 인계작업을 위한 마무리 작업에 나섰다.

서두르지 않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선 레이스를 밟겠다는 전략이다. 때문에 국가발전 전략이나 대선 정책·공약 등을 다듬는 일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퇴임 직후엔 지방순회나 강연, 세미나 등을 열어 여론 수렴작업과 동시에 외국 출장에도 나설 계획이다.

철저하게 현실 정치와 거리두기에 나선다는 복안이다. 퇴임 이후 이 시장이 머물 사무실도 서울 광화문 또는 종로 인근으로 알아보고 있다. 이 시장의 ‘대선캠프’도 구체적인 가닥이 잡히고 있다. 새로 마련할 사무실은 그 동안 이 시장을 보좌했던 시 정무인력들로 채울 예정이다. 이 시장 주변에선 언론·정책·홍보 전문가들에 대한 영입설도 흘러나온다.

손학규 인지도 제고 ‘총력’

손 지사는 올해 초 퇴임에 대비해 서울 여의도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국회 앞 옛 신한국당사 주변이다. 경기도 정무보좌진들은 현재 ‘대선캠프’ 진용을 짜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퇴임을 앞둔 손 지사도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지난 5월18일부터 24일까지 경기도지사로서 마지막 휴가도 다녀왔다. 박근혜 피습 사건이 발생했던 그 때다. 당시 손 지사는 본격적인 중앙 정치무대로의 출정식을 앞두고 몸 만들기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동안 미뤄뒀던 치과 치료를 비롯해, 발가락 습진 치료 및 주름살 제거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손 지사측이 주력하는 부분은 낮은 인지도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는 것이다. 한 측근은 “그동안 홍보 포인트가 분산돼 있었고, 지엽적인 한계도 있었다”면서 “이제부터 시작이다. 올 연말이면 정당한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영어마을의 성공적 개장과 파주 LCD 공장 유치 등 손 지사의 업적을 본격적으로 부각시키면, 낮은 인지도는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장에 견줘 손 지사의 그것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게 오히려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본격적인 중앙정치 복귀선언 무대도 ‘손학규 홍보’로 채워질 전망이다.

손 지사측은 오는 6월26일 대대적인 출판기념회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제목이 결정되지 않은 이 책에는 경기도지사로서 일군 투자유치 실적과 그 과정에서 손 지사가 겪은 에피소드, 지난 4년간 도정운영의 경험과 그 소회, 그리고 손 지사가 제시하는 국정운영의 방향 등이 담겨 있다. 한 측근은 “출판기념회는 중앙 정치무대로의 본격적인 재출발을 선언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퇴임 뒤 현실 정치와 거리두기는 손 지사도 매한가지다. 주로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민심 대장정’에 나설 계획이다.




# 한나라당 ‘빅3’ 정중동 행보‘오세훈에게 배운다’...이미지 세탁에 ‘올인’

한나라당에 ‘부자 몸조심’ 주의보가 발효됐다. “지방선거 압승에 들떠 있지 말라”는 박근혜 대표의 엄명이다. 유력 대권주자로서 승리고 이끈 박 대표 자신도 감정 노출을 자제하는 모습이다. 한편,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도지사 역시 이렇다할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임기 종료 이후에도 현실 정치와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겠다고 한다.

정치권은 야당 대선후보들의 의외의 모습에 당황한 모습이다. 지방선거가 끝난 직후, 대통령 그늘에서 자유로운 야권 후보들이 치열한 대선 장정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정치 관행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나라당 ‘빅3’를 형성하고 있는 이들의 ‘정중동’ 행보에는 이유가 있는 것일까. 이른 바 ‘오세훈 학습효과’ 때문이라는 게 각 진영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정치권과 거리두기 과정을 통해 ‘참신한 이미지’로 새롭게 등장한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가 차기 대선주자의 모범 사례라는 것. 야권 대선후보의 한 측근은 “오세훈 당선자는 내달이면 대선 레이스에 돌입할 여야 예비 주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면서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선거 호흡이 상당히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전했다.

대선 준비는 길게, 그렇지만 선거는 짧게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오 당선자가 출마 선언 이후 불과 2개월도 채 안돼 서울시장 안착에 성공했기 때문이다.선거 참패로 인해 여권에서 꾸물거리고 있는 ‘정계개편’의 물살도 오세훈 학습효과로 통한다. 범여권을 향한 커다란 움직임이 있을 것이고, 그 흐름의 수혜자가 야권에서 누가 될 지는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선은 1년 반이나 남았기 때문이다. 갈 길은 멀고, 변수의 등장은 예측할 수 없다.

지방선거 직전 강금실 바람을 타고 수직상승한 오세훈 바람이 선례다. 물론, 이 시장과 손 지사 진영의 느린 행보에는 박 대표에 대한 당안팎의 호의적 시선이 얼마나 이어질지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회의적 반응도 작용한 듯하다. 또 피습 사건 후유증으로 인해 길지 않은 요양 시기가 필요한 박 대표와 보조를 맞추려 한다는 풀이도 가능하다. 어쨌든, 야당 유력 대권주자들은 대선가도를 선점하려는 물밑 경쟁에만 전념할 뿐, 이런 저런 사정 때문에 당분간 ‘정중동’ 행보를 고수할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