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론 확산…위상 제고 “5·31 지방선거는 게임 끝”
2006-05-24 이금미
이번 사건으로 인한 박 대표의 ‘정신적인 충격’이 큰 만큼, 그를 둘러싼 정치적 환경도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한나라당에선 이번 사건을 명백한 ‘정치 테러’로 규정하고 있으며, ‘배후 세력’을 밝히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건 직후 김학원 최고위원을 단장으로 하는 진상조사단도 구성했다.
한나라당 정치구도 변화 조짐
하지만 무척 조심스런 모습이다. 섣불리 배후를 지목하는 등의 언행도 삼가고 있으며, 극단적인 예단도 자제하고 있다. 중앙당은 이같은 지침을 전국 시도당에 내려 보내기도 했다. 아직 사건의 진상규명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여당의 개입설’이 제기될 경우 이번 사건을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국민적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진상이 밝혀질 경우 열린우리당의 역공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사건의 심각성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사건이 벌어진 지난 20부터 박 대표가 치료를 받고 있는 서울 세브란스 병원은 유력 정치인들의 병문안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이명박 서울시장,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김문수 경기도지사 후보 등이 다녀갔으며, 그밖에 한나라당 국회의원들과 각계 인사들이 병원을 찾고 있다.이미 정치권에선 박근혜 피습사건이 몰고 올 파장이 주요 관심사로 부상중이다. 각당 지도부에선 가깝게는 지방선거, 멀게는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경선을 비롯해 2007 대통령 선거 일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추측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박 대표 자신의 정치 일정 및 대권 레이스에 상당한 변화를 예고한다는 전망이 압도적이다. 박 대표는 이달 초 당권-대권이 분리되는 당헌·당규에 따라 내달 16일 당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는 것을 공표, 사실상의 대권 도전을 선언했다. 그런 탓에 이번 지방선거는 박 대표 스스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치르던 행사였다. 일각에선 일찌감치 ‘한나라당 대세’로 기운 지방선거 승리 여세를 몰아 대선 국면으로 이어가겠다는 의지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번 지방선거는 대표로 취임 한 이후 총선에 이어 두 번째로 맞는 큰 선거이기 때문이다.
‘박풍’ 다시 불 수도
그런데 5월31일 치러지는 지방선거 유세전에서 박 대표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박 대표는 지난 17대 총선 당시부터 각종 선거 때마나 선거 현장을 누비며 ‘박풍(朴風) 효과’의 실체를 몸소 보여주곤 했다. 선거전을 치르기만 하면 ‘차기 대통령감’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상승했던 전례를 돌이켜 볼 때, 박 대표의 대권 레이스에 호재임이 틀림없었다. 게다가 이같은 효과는 3개월간 지속된다는 게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풍의 실체는, 정치인 박근혜의 상징이나 정체성이 아닌 박근혜 자신이라는 게 그동안의 선거전에서 증명된 바다.
물론 이번 사건의 진상과 상관없이 높은 정당 지지율을 바탕으로 한나라당 압승이 예상되고 있지만, 일각에선 또 다른 견해도 감지되고 있다. 박 대표가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서 자리매김하는 시점이 더욱 앞당겨질 것이라는 다소 억지스런 관측이다. 그리고 정치적 고향이라 할 수 있는 ‘대구·경북’ 지역에서 급변하고 있는 정치적 환경은 이러한 징조를 뒤받쳐 주고 있다. 박 대표의 지원사격이 불가능해질 경우 선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과 함께, 오히려 ‘대권주자 박근혜’에 대한 위상이 더욱 견고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한나라당은 수 차례 ‘공천비리’ 몸살을 겪었고, 공천심사에 반발하는 예비후보들이 대거 무소속 출마로 선회한 사례가 다반사다.
처음으로 중앙과 지방이 분리된 공천심사를 치른 각 시도당에선 박 대표의 출연으로 공천에 대한 반발을 누그러뜨리고, 당심(黨心)도 수습할 수 있을 것이라 예측하곤 했다. 앞서의 추측은 이러한 절차적 수순에 차질을 빚을 것이란 시각이다. 그 반대의 시각은 선거전을 통해 영남권에서 보여준 박 대표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가 말해주듯, 병상에 누워있는 박 대표의 부재가 오히려 영남권 및 박근혜 지지층의 결집력을 높여주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박 대표를 지지하는 모임인 ‘박사모’ 소속 회원과 일반 지지자 30여명은 사건이 있었던 날 밤 박 대표가 입원한 병원 앞에서 촛불집회를 갖고 박 대표의 쾌유를 기원하기도 했다.역설적으로 박 대표가 이번 지방선거의 판세는 물론 영남권의 정치구도를 변화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얘기다.
흉터 완전 치유 불가능
이번 사건을 두고 박 대표를 향해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 국민여론도 대권주자 박 대표에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 관행상, 유력 정치인의 ‘병상 정치’는 언제나 승리를 불러들였다. 여야 정치권이 이번 사건의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애초 이번 사건이 발생했을 때 박 대표의 상처가 심각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국민적 관심은 높아졌던 게 사실이다. 박 대표의 긴급수술을 지도한 병원 의료진은 수술 직후 “오른쪽 얼굴, 귀 옆부터 잎 옆까지 심각할 정도로 심부까지 열상이 있었다”, “상처의 길이도 11cm다”, “입원기간도 최소 1주일은 걸릴 것”이라는 진단을 내놨다. 물론 수술 결과가 좋다고 하지만, 6개월 후 2차 성형수술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한다.
또한 성형수술 등을 거쳐 완치된 이후에도 피습으로 인한 흉터는 완전히 치유할 수 없다는 게 병원측의 진단이다. 이전처럼 말을 하거나 음식을 섭취하는 등 일상생활로 돌아가기까지에도 최소 몇 달은 걸린다고 한다. 완벽하게 봉합돼 미세한 흉터 이외의 추가 합병증 여부도 지켜볼 대목이다. 정치권 주변에선 벌써부터 ‘동정론’이 나온다. ‘탄핵 후폭풍’으로 침몰 직전에 몰린 한나라당을 구했고, 선거마다 압승을 일구어 냈던 박 대표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한나라당 대권주자들의 간접 전쟁터가 될 차기 대표최고위원 경선은 물론 대선 경선에서도 ‘+α’의 것까지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