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인헌고등학교 ‘정치편향 강요’ 논란...“교사의 사상 편향적 발언 있었다...하지만 과장돼”

학수연 대변인 “학생들을 정치적 노리개로 이용”" 일부 학생들, 이들 주장에 대해 ‘거짓말’이라며 야유

2019-10-25     오두환 기자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서울 낙성대 인근에 위치한 인헌고등학교 학생 일부가 교내에서 일부 교사가 편향적인 정치사상을 강요했다며 규탄하고 나섰다. 하지만 학교 측은 특정 견해를 주입한 적이 없다며 학생들 주장을 부인했다.

인헌고등학교 학생수호연합(이하 학수연)은 지난 23일 오후 서울 관악구 인헌고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초 예정된 기자회견 시간은 오후 4시30분이었지만 1시간 전부터 보수 성향의 유튜버들과 시민들이 학교를 찾아 기자회견을 기다렸다.

그 과정에서 하교하는 자녀를 데리러 온 한 학부모는 초상권 침해에 따른 문제를 지적하는 과정에서 보수 유튜버들과 시비가 붙기도 했다. 이 학부모는 미성년자들인 학생들의 얼굴이 무분별하게 노출될 것을 우려해 촬영 자제를 요청했지만 일부 유튜버들은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거친 말을 쏟아내기도 했다.

 

학수연 학생들

“사상 독재 뿌리 뽑아야”

 

기자회견이 시작되기 전 현장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오르자 한 관계자는 보수 유튜버 및 시민들에게 학생들이 주도하는 기자회견인 만큼 정치적인 발언을 자제할 것과 태극기, 소속깃발 등을 내려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예정된 시간인 4시30분이 되자 정문 앞에는 인헌고 학생수호연합 대변인 최모군과 새로운 대표 김화랑 군이 나타났다.

먼저 대변인 최 군은 “학수연은 이번 인헌고등학교 반일사상 독재 사건을 계기로 결성된 학생조직이다. 비단 반일사상 독재 사건만을 계기로 조직된 것이 아니라. 친중, 페미니즘, 동성애, 난민, 탈원전, 일베몰이 등 그동안 묵인해 왔던 그 모든 형태의 사상 독재를 이제는 뿌리 뽑고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학생 조직이다”라며 자신들을 소개했다.

최 군은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이뤄진 교사들의 ‘사상 독재’ 사례를 공개됐다.

먼저 최 군은 “현 정권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던 학생을 혼내서 다음 수업 시간에는 현 정부가 좋다는 발언을 하게 하기도 하고, 조국 전 법무부장관에 대한 언론 보도를 믿는 사람들은 다 개·돼지라고 일축했다”고 주장했다.

또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책을 읽고 경제 하나는 잘 한 것 같다고 평가한 학생에게 수많은 다른 학생 앞에서 ‘일베냐’라고 모욕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마라톤 대회를 거론하며 “교사들은 마라톤 대회 일주일 전부터 학생들에게 반일 문구가 적힌 선언문을 적으라고 지시했다”며 “반일 운동에 반대하는 한 친구가 선언문에 반일운동과 무관한 문구를 적어서 내자. ‘너 아직도 정신 못 차렸어?’라며 혼내고 교사의 구미에 맞는 문구를 적어서 내도록 강요했다”고 말했다.

최 군은 기자회견을 진행하면서 “교사들은 학생들을 그저 정치적 노리개로 이용한 것이다” “그들의 정치적 시체로 전락했다”라고 말하며 “학생들이 보장 받아야 할 온전한 사상의 영역을 그들의 독재하에 기체가 됐다”고 비판했다.

학수연의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보수 유튜버들과 시민들은 이들의 의견에 동조하며 지지의 환호를 보내기도 했지만 일부 학생들은 이들의 주장에 대해 거짓말이라며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학수연 주장 사실과 달라’

재학생 A양 “무섭다”

 

이날 학수연 대변인 최 군은 학교 측 반응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교장 선생님은 사태가 확대된 이후 출근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고 40여 명에 이르는 학수연 학생들이 소통의 장을 가지려던 것을 교사가 강제로 해산시키려 했다는 주장도 했다.

또 기자회견 당시 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기자들에게 사전에 배포한 기자회견문에는 학교 측이 기자회견을 앞둔 학수연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당일 징계위원회를 열어 학교에 잡아둬 기자회견에 타격을 입히려 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하지만 기자회견이 끝나고 취재진이 인헌고등학교 재학생 A양에게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날 학수연 학생들이 주장한 내용은 사실과 다른 내용이 적지 않았다.

A양은 실제 학수연에 몸담았다 뜻이 맞지 않아 지금은 활동하지 않는 상태다. 먼저 A양은 일부 교사들이 사상 편향적인 발언을 한 것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하지만 그 같은 일이 전 학년에 걸쳐 이뤄진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대부분 1학년 학생과 교사 사이에서 벌이진 일이고 기자회견을 하는 날까지도 다른 학년 학생들은 이 같은 일을 모르는 학생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또 학수연 학생들 모임을 교사가 강제로 해산시켰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당초 그 교실에는 공부를 하던 학생들이 있었고 학수연 학생들이 오히려 그들의 공부를 방해하는 상황이 돼 학생들이 그 문제를 교사에게 이야기했고 그때 교사가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A양은 학수연에 참여하는 학생 수에 대해서도 부풀려졌다고 주장했다. 학수연 측은 현재 참여 학생이 40여 명이라고 발표했으나 실제로는 절반 이하인 16명 정도 라고 말했다.

A양은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무섭다”라는 말을 하면서 과도한 관심과 함께 잘못 알려진 사실들이 너무 많다면서 외부의 관심을 부담스러워 했다.

일각에서는 학수연 대변인 최 군의 과거 이력을 거론하며 정치 쟁점화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최 군은 페미니즘 운동을 반대하는 성향의 ‘인헌고 성평화 자율동아리 왈리’를 만들어 운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동아리 담당교사가 성소수자 등에 대해 혐오적인 주장을 하는 학생들과 이견이 생겼고 결국 동아리 담당교사직을 그만뒀다.

이후 동아리는 담당교사 없이 운영될 수 없도록 한 교육부 지침 등을 이유로 폐쇄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 군은 이와 달리 강제 폐쇄 통보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승표 교장

“특정 견해 주입 교육한 적 없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나승표 인헌교 교장은 취재진에게 “특정 견해를 주입하는 교육을 한 적 없다”며 “마라톤 행사 관련 논란은 교육청의 지침을 중심으로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얘기가 나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조 전 장관에 대한 내용도 학생이 ‘조국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발표하니 교사가 ‘아닐 수도 있지 않느냐’고 얘기한 것”이라며 “일베냐고 물었던 것 역시 일베의 입장에 동조하냐고 물어본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은 문제의 발언을 한 교사가 8명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전수조사를 통해 (실제 수를)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서울시교육청과 동작관악교육지원청은 기자회견이 열린 당일 인헌고를 대상으로 특별장학을 진행했다.

또 학생회장단은 “인헌고 내의 문제이므로 학내에서 먼저 해결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선생님의 잘못이 있다면 마땅한 조치가 있을 것이고 학생과 갈등이 있다면 대화로 해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학교와 교육청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며 “학생회는 대의원회 소집, 공론화 자리 마련 등의 자치 노력을 기울여 문제 해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