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개편 불가피… 게이트 종착역은 ‘개헌’ 소문 무성해
2006-04-04 이금미
그렇다면 검찰의 최종 타깃은 어디를 향해가고 있는가. 검찰 안팎에서는 파헤치고 있는 사건들이 모두 연관돼 있다는 시각이 대세를 이룬다. 시간이 갈수록 파괴력은 커지고 있으나, 규모를 예측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불안감에 정치권은 숨만 죽이고 있을 뿐이다. 검찰의 현대·기아차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은 시작일 뿐이었다. 이어 단국대 터 개발비리와 관련 예금보험공사, 윤상림 사건과 맞물려 브릿지증권 본점,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 론스타 등에 대한 압수수색으로 재계는 벌집 쑤신 듯하다.
김재록 로비건은 ‘기획수사’
숨 가쁘게 달려온 검찰을 바라보는 시각은 하나로 압축된다. IMF 이후 국내 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국부유출 책임규명 작업이 그것이다. 다시 말해 외국투기 자본에 대해 국내 기업을 헐값으로 매각하는 데 있어 부당개입, 인위적 조작, 뇌물수수 혐의를 들추어내는 것. 물론 검찰의 최종 타깃은 당시 깊숙이 관여했던 사람들로 향하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이러한 징후는 검찰 수사 곳곳에서 감지된다. 검찰은 애초 현대·기아차 수사의 경우 김씨 수사과정에서 우연히 포착된 ‘돌발사건’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미 지난해 말부터 다각적으로 내사가 이루어져 온 것으로 알려졌다. 기획수사였다는 얘기다.
또한 ‘컨설턴트’라고 알려진 김씨의 경우 드러난 정황상 ‘브로커성 금융전문가’로 인식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김씨는 IMF 이후 국내 기업의 인수·합병(M&A)이나 구조조정 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던 사람이다. 당시 아더앤더슨 코리아가 한 대기업의 실사를 담당했을 무렵이었다. 당시 실사를 받게 된 모 대기업 계열사 사장으로 재직중이던 A씨는 김씨와 관련된 소문에 놀랐다고 한다. A씨는 “당시 김씨는 유명한 인사였다. 실사를 받지 않기 위해, 또 실사를 잘 받기 위해 김씨와 가까이 지내려고 했다. 또 당시 우리나라 기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외국기업들에 있어서도 그는 최고의 로비 대상이었다”고 전했다. 한마디로 김씨가 ‘부르는 게 값’이었으며, 그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라서 기업의 운명이 결정됐다는 것.
전·현직 고위관료 넝쿨처럼 엮여
주목할 대목은 현대·기아차 본사 압수수색 직후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사장에 이어 김씨와 친분이 있다는 진념 이헌재 오호수 이강원 강봉균 김진표 황영기 이근영 전윤철 이인원 정재룡 윤증현 등 전·혁직 경제 관련 수장급 인사들의 이름이 고구마 줄기처럼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는 것. 이는 김씨 사건을 두고 정치권에서 ‘게이트’로 규정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김씨가 국민의 정부 시절 화려하게 데뷔했다는 데 있다.
또 김씨의 성공가도는 현정권 들어서도 지속됐다는 것 역시 주목할 대목이다. 김씨의 성공가도에 경쟁 업체들의 원성도 높았다고 알려진다. 김씨가 몸담았던 회사가 항상 급성장을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 김씨의 수완으로 그동안 수십건의 정부 관련·공공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이익은 적어도 수백억원, 많게는 천억원대에 달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김씨가 경영 진단을 무기로 경제 부처 고위관료들과 친분을 쌓고, 고위 관료들의 이름을 팔아 사업을 따낸다는 소문도 돌았다. 당시 김씨가 뛰어난 컨설턴트로서 능력을 발휘하기 전 정치권에 몸담았다는 것 역시 이러한 의혹을 뒷받침하고 있다.
김씨는 97년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의 전략기획특보를 맡아 활동했다. 게다가 그의 동생인 김재갑씨 역시 2002년 대통령 선거 경선 당시 한화갑 후보의 선거캠프에서 활동했으며, 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으로 당적이 바뀌는 과정에서도 승승장구해 김씨의 정치권에 대한 그의 로비 의혹은 설득력을 더해가고 있다. 특히 김씨의 동생은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로 활동할 무렵 원내기획실 부실장으로 근무했다. 한편, 김씨와 관련된 의혹은 지난 2001~2002년 국회 국정감사 등에서도 제기된 바 있어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당시 이성헌 한나라당 의원은 아더앤더슨에는 DJ의 처조카이자 예금보험공사 전무인 이형택씨의 동생 이정택씨가 고문으로 일하고 있었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렇다면 김씨와 친분이 있는 인사들이 국민의 정부 시절에만 연관돼 있을까.
현역의원 ‘출금설’도 제기돼
수사 초기 단계에선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참여정부까지 경제정책 수장을 역임한 인사들의 이름부터 거론되곤 했다. 그와중에 김정훈 한나라당 의원이 “김씨와 친분이 있는 인사들이 고건 전국무총리의 대선캠프에 가 있다”고 말해, 고 전총리측에서 ‘발끈’하기도 했다. 물론, 야당인 한나라당은 비교적 여유로운 입장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이번 사건은 단순히 김씨와 친분이 있는 특정 인사들이 타깃이 아니라는 것이 수사 진행상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때문에 한나라당 ‘김재록 게이트 진상조사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 이한구 의원은 “개헌을 포함한 정계개편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본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김씨 파장이 커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의원은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패배한다면 탈당자가 나오는 등 일대 혼란에 휩싸이고 정계개편이 불가피해 질 것”이라며 “때문에 청와대와 여당이 정계 개편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맥락에서 이번 게이트가 제기되고 있다”고 또 다른 의혹을 제기했다. 김대중 정부, 또 당시 고위관료를 지낸 인사들에 불똥이 튀고 있지만, 차후에는 ‘정치권의 대대적인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기선을 잡은 뒤 개헌논의까지 이끌어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김씨와 친분이 두텁다고 검찰에서 거론된 거물급 인사들만 해도 15명이 넘는다. 또 검찰 안팎에선 김씨 사건과 관련, 현역 국회의원 몇 명이 출국금지된 상태라는 흉흉한 소문도 돈다. ‘금융권 마당발’ 김씨가 몰고 온 파장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는 불온한 기운이 정치권을 휘감고 있다.
# ‘컨설턴트’ 또는 ‘브로커’ 김재록은 누구인가몸담은 회사마다 승승장구…수완 탁월
전남 영광 출신인 김재록(46)씨는 형편이 어려운 수재들이 진학했다는 구미 금오공고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고교 동문들은 김씨를 ‘특이한 친구’로 기억한다. 영어사전을 통째로 외울 정도였다는 것. 김씨를 수사하고 있는 검사들에게도 그의 인상은 남다르다. 일반적인 브로커와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 업계 관계자들 역시 “김씨와 같은 폭넓은 식견을 갖고 대기업 컨설팅까지 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는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들다”고 전한다. 금오공고 졸업 이후 행방이 묘연함에도, 김씨를 접한 사람들은 그를 ‘똑똑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벗어난 직후 김씨의 행적을 정리하면, 98년 4월 세동회계법인(아더앤더슨 코리아의 전신)에 부회장으로 영입됐다.
당시 세동회계법인은 업계 ‘빅4’에도 끼이지 못하는 규모였으나 김씨가 합류하면서 무서운 속도로 성장을 거듭했다. 이후 세동은 IMF 이후 폭증한 기업·금융권 실사, 컨설팅 업무에서 탁월한 실력을 발휘하면서 대규모 프로젝트를 따냈다. 한일·고합·우방·아남·동방 등 굵직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기업들이 모두 세동 고객. 또 세동은 국민의 정부 들어 시작된 정부기관 경영 진단 수주도 싹쓸이 했다. 재경원·금감위·산자부·국세청 등 9개 정부 부처 경영 진단이 모두 세동 몫으로 돌아갔다. 게다가 정부가 주도하는 재벌 빅딜 업무에도 참여했다. 영화·안건회계법인 등과 함께 반도체·정유 등 7개 사업 구조조정 실무 업무를 맡았고, 재무구조 개선 약정 체결을 위한 5대 그룹 실사에서는 삼성그룹을 담당하기도 했다.
김씨의 활약은 99년 세동회계법인이 안진회계법인과 합병 후 아더앤더슨 코리아 소속이 된 뒤에도 지속됐다. 정부 산하기관인 예금보험공사의 외화자산관리 및 매각 관련 컨설팅 및 재정 자문사, 대우자동차 구조조정, 하이닉스반도체 자산부채 실사, 경남기업 매각 외부 자문사, 쌍용차 구조조정 보고서 작성, 현대석유화학 처리 실사, 대우조선 워크아웃 자문사 등을 비롯해 대한화재, 국제화재, 리젠트화재 등의 매각 금융 자문사로도 활약했다.그는 미국 아더앤더슨 본사가 문을 닫기 직전인 2002년 ‘인베스투스글로벌’을 설립해 기업·금융 컨설팅과 인수·합병, 외자 유치 업무를 계속 따내며 현정부 들어서도 활약을 이어 왔다. 2003년에는 대우상용차 매각 주간사 및 진로 외자유치 자문사를 맡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