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한병 2만원…500만원 짜리 ‘만찬’

2006-03-08     이금미 
전국민에게 충격을 던져준 한나라당 최연희 전사무총장의 <동아일보> 여기자를 상대로 한 성추행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지난달 24일 저녁 한나라당 지도부와 <동아일보> 취재진의 상견례를 겸한 회식이 서울 신문로의 한정식집에서 있었다. 이 자리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동아일보>측에 신임 당직자들과 상견례를 하자고 요청해서 마련되었다고 한다. 사실 당직자들과 언론사 기자들이 식사 및 술자리를 함께하는 것은 정치권의 오랜 관행이다. 특히 한나라당 당직자들은 <동아일보> 외에도 몇몇 메이저 언론사들과 얼마 전 비슷한 자리를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상견례 겸한 저녁 회식

상견례를 겸한 한나라당 지도부와 <동아일보>측의 모임은 지난달 24일 오후 8시에 시작됐다. 한나라당에서는 박근혜 대표와 이규택 최고위원, 최연희 전사무총장, 정병국 홍보본부장, 이계진 대변인, 유정복 대표 비서실장, 이경재 의원 등 7명이 참석했다. 동아일보 역시 임채청 편집국장과 이진녕 정치부장, 한나라당 출입기자 등 7명이 나왔다. 한 참석자의 전언에 따르면 각자 소개가 이어진 뒤 식사자리에서 몇 순배 폭탄주가 돌았다고 한다.

정치인과 정치부 기자들이 모여 앉아 나눈 대화 역시 정치현안. 서로 안면이 있는 이들은 식사를 하면서 5·31 지방선거를 화제로 말들을 나눴다.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이었기 때문이다.문제가 발생한 자리는 2차 술자리. 식사가 끝난 오후 10시10분쯤 박 대표와 임 국장은 먼저 자리를 떴다. 나머지 사람들은 음식점 지하의 노래 시설을 갖춘 방으로 자리를 옮겨 술자리를 이어갔다. 식사자리에 이어 노래방에서도 폭탄주가 몇 순배 더 돌아 더욱 취했다. 노래방 안의 인원도 14명, 통제도 되지 않았다.

몇몇은 노래방 기기 앞에 모여 있었고, 몇몇은 노래를 부르고, 또 몇몇은 자리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계진 대변인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당시 상황을 재연했다. “노래방 도우미를 자처해 참석한 이들이 편하게 노래 부를 수 있도록 노래방 기기 앞에서 번호를 누르던 중 갑자기 뒷자리에서 ‘으악’ 소리가 들려왔으며 고성이 이어졌다.”이 대변인이 놀라 뒤를 돌아보니 이미 해당 여기자는 자리를 빠져 나가고 없었다. 이 대변인은 술을 마시던 중 최 전총장이 옆에 있던 여기자를 뒤에서 껴안고 가슴을 거칠게 만졌다는 말을 들었을 뿐이었다고.

음식점 주인 동석 ‘아리송’

하지만 이대변인은 “성추행 현장을 내가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당시 함께 자리에 있었던 <동아일보> 기자들이 최 전총장에게 강력히 항의했다. 그리고 이어진 “술에 취해 음식점 주인으로 착각해 실수를 저질렀다”는 최 전총장의 해명. 이후 박 대표가 해당 여기자에게 사과했으나, 최 전총장의 ‘성추행’ 사실은 지난 2월27일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는 이번 술자리에 참석한 몇몇 인사들의 증언을 통해 재구성한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선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바로 최 전총장의 “음식점 주인으로 착각해서”라는 궁색한 해명이 석연찮기 때문. 장안의 소문난 한정식집 주인이 지하 노래방까지 내려가 접대(?)한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본다는 것이다.

이곳의 단골인 정치권의 한 인사는 “나이도 많은 주인이 노래방에서 함께 있었다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술에 취해 주인으로 착각했다’는 최 전총장의 해명은 더욱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같은 의혹에도 술자리에 참석했던 당사자들은 ‘쉬쉬’하는 분위기다. <동아일보>측은 “(<동아일보> 기사 외에) 더 이상 말해줄 수 없다”는 것이고, 한나라당 당직자들은 “<동아일보> 기사에서 거론된 내용만 모두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곳의 단골인 다수의 정치권 관계자들은 한나라당 당직자, <동아일보> 편집국 기자들 외 또다른 사람이 동석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리고 최 전총장이 술에 취해 착각했다는 사람은 주인이 아니라는 주장을 한다. 노래를 틀어주기 위해 도우미가 함께 있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고액 접대비용 ‘비밀’

식대를 포함한 술값도 짚고 넘어가야할 대목이다. 이곳의 식대는 1인 기준 6만원선 이다. 또 여 종업원 봉사료와 TC가 별도로 청구되는 고급 한정식집에서 14명이 회동했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우리가 만든 자리기에 당연히 계산도 우리가 했다”면서 “비서실에서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유정복 대표비서실장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현재 식대를 포함해 술값으로 얼마를 지불했는지 비밀에 부치고 있다.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실의 한 관계자는 “술값을 알고 싶으면 음식점을 통해 확인해 보라”고 말하고 있을 정도이다.이 음식점의 단골들은 “그 정도의 인원이면 적어도 500만원 정도는 족히 들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기자는 사실확인을 위해 두차례에 걸쳐 음식점을 찾았다.그러나 지난 2월27일 오후 음식점은 출입문에 빗장을 걸었다. 셔터를 굳게 내리고 종이에 “수도공사중 죄송합니다”라고 적어 놓았다. 그러나 기자가 전화를 해 예약 여부를 확인하자 “당연히 영업하지요”라는 명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담을 따라 후문으로 가봤다. 출입문 옆 차고로 보이는 문도 셔터가 닫혀 있었다. 한참을 기다리니 손님으로 보이는 이가 문을 열고 나왔다. 잠시 후에 종업원으로 보이는 여자가 나왔다. 한나라당 당직자들과 <동아일보> 기자들의 술자리와 관련한 기자의 질문에 “내가 기자들 한 두 번 상대해보느냐”며 거칠게 대응했다. “문제의 술자리에 도우미도 참석했느냐”는 질문에 “여기는 밥집”이라는 퉁명스런 말만 내뱉었다.


# ‘M’한정식집은 어떤 곳

유명 호텔의 한식당도 있지만, 고위급 인사들이 자주 찾는 곳은 따로 있다. 개성식이든 호남식이든 한식의 고유한 맛, 식당의 청결함, 질 좋은 서비스 등을 꼽아 이를 만족시키는 한정식집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번 술자리 ‘성추행’ 파문의 진원지인 한정식집 M은 고위급 인사들이 즐겨 찾는 바로 그곳 중의 하나다. 장안의 내로라하는 한정식집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곳. 담도 높고, 홀도 없고 룸에서 식사가 이뤄져 ‘보안’을 유지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과거 정부 실세 회동장소

서울시내 신문로에 위치해 있는 이곳은 국민의 정부 때부터 정권 실세들이 모이는 곳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참여정부 들어선 뜸하긴 하지만 인근에 언론사들이 몰려 있어 여전히 정치인과 언론인들의 회동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지난 2월24일의 불미스런 사건을 두고 “예견돼 있었다”는 정치권의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서민’에게 문턱이 높다고 알려진 이 한정식집 안으로 들어가 보자. 일단 예약은 필수다. 정문 안으로 들어서 건물 한 켠을 따라 들어서면 출입문이 나온다. 예약을 확인한 후 여 종업원의 안내를 따라 곧바로 룸으로 들어선다. 저녁식사일 경우 1인분에 6만원. 여기서 잠깐, 두 명이라면 1인분에 7만원이다. 정해진 ‘정식’ 코스이기 때문에 별도의 메뉴판은 없다. 술자리를 겸한 자리라면 메뉴판이 나온다. XO급을 비롯해 고급양주 20~30만원대, 소주 2만원. 한정식집을 두고 ‘일반서민이 갈 수 없는 곳’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손님 4명에 도우미 1명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여 종업원이 음식 시중을 든다. 삼합, 구절판, 두부김치 등 쌈 종류일 경우 이들의 손길을 거쳐 손님의 앞 접시에 놓인다. 예약을 할 때 4명을 기준으로 한 테이블에 음식 시중을 드는 여 종업원이 한 명,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안내 받는다. ‘봉사료’로 계산이 되는데 7만원이다. 여기에 T/C 3만원이 추가된다. 깔끔한 한정식만을 맛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면, 여기까지가 코스의 끝이다. 4명 한 테이블을 기준으로 식대 24만원, 봉사료 7만원, T/C 3만원, 양주 한 병을 주문했다면 20만원, 총 54만원이다. 위의 예는 정상적인 경우다. 한나라당 당직자들과 <동아일보>의 술자리에서 생긴 ‘성추행’ 이면에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는 지금부터다. 서울에서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A씨는 이곳을 자주 찾는다.

“호남의 맛이 그대로 살아있으면서도, 개성 음식처럼 순해 점잖은 자리에서 대접할 일이 있을 때마다 예약을 해둔다”는 A씨. 단골이기에 구구절절 안내 서비스를 받을 필요도 없다. A씨는 세 명의 손님과 함께 이곳의 룸으로 들어선다, 뒤따라 들어오는 네 명의 여 종업원. 이들은 각각 손님들 곁에 앉아 음식 시중을 든다. 물론 술이 있다면 주거니 받거니 A씨를 대신해 접대한다. 폭탄주가 몇 순배 돌아가고 취기가 돌면, A씨와 손님들은 여 종업원들의 손에 이끌려 지하로 내려간다. 지하엔 노래방이 설치돼 있다. 이제는 반주를 겸한 자리가 아니다. 본격적인 술자리 접대가 시작된다. 여 종업원들에게 ‘팁’도 챙겨준다. 이곳의 여 종업원들에겐 월급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술자리가 끝나고 A씨는 식대 6만원×4, 봉사료 7만원×4, 양주 30만원×2 등등 약 120만원을 계산한다.

깔끔한 음식 접대장소로 인기

국회 출입 방송사 B기자의 생생한 목소리도 들린다. 30대 중반의 B기자는 여야 정당을 모두 출입한 중견기자다. 자주 국회의원들과 식사 및 술자리를 갖고 있지만, 이런 곳을 방문할 기회는 그야말로 가끔 찾아온다. 깔끔한 한정식에, 고급 양주, 외부와 차단된 이곳의 분위기는 “대접받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절로 들게 한다. 거기에 많아야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가씨들의 음식·술 시중을 받고 있노라면 과거의 ‘요정정치’를 경험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식사가 끝나면 이들의 손에 이끌려 노래방으로 직행. 이들과 뒤엉켜 열심히 노래하고 열심히 술에 취하다 보면 왠지 모를 ‘동료의식’까지 치솟곤 한다. 맛에, 흥에 취하는 것도 여기까지다. 다음날 “음식문화는 기본적으로 권력층의 혀를 즐겁게 하는 데서 발달할 수밖에 없다”고 한 이어령 선생의 말을 곱씹으며, 다시 현장 속으로 들어간다. 이처럼 이곳은 ‘아무나’ 들어설 수 없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