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허리띠 ‘조르고’ 한나라당은 ‘흥청망청’
2006-03-08 이금미
소주 한 병에 무려 2만원씩이나 하는 회식이었다. 일반 서민에게 2만원짜리 소주는 경악할만한 일이다. 한나라당에 묻고 싶다. 도대체 그날 계산한 밥값과 술값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한나라당 지도부는 상견례를 명분으로 동아일보 외에 유력 신문방송사와도 유사한 자리를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 자리는 한나라당 대표실의 제안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고 한다. 장소야 달랐겠지만 비용은 그날 치른 비용과 비슷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어림잡아 서너 차례 회식만 했어도 천만원 대가 넘는 돈이 들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과연 그런 돈은 어디서 나왔는가. 과거와 달리 지금은 모든게 투명한 시대이다. 정치자금법이 엄연히 존재하고 의석수에 따라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는다. 개인후원금도 투명하게 공개된다. 뒷돈이 왔다갔다 할 공간은 거의 없는 상태이다. 그렇다면 그날밤 치른 밥값과 술값은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왔다는 얘기가 된다. 정책 개발 등에 쓰라고 낸 세금을 ‘여기자 추행사건’ 같은 용도에 거리낌없이 썼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알면 얼마나 허탈할 것인가. 물론 ‘최연희 의원 성추행 사건’의 본질은 국회의원으로서 품위를 잃은 부적절한 행위에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이면에는 ‘소주 1 병에 2만원짜리 호화판 회식’ 같은 또 다른 부적절한 모습이 숨어 있었다. 이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지향해야 옳은 국회의원의 입장에서 분명 ‘모럴 해저드에 해당된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성추행 사건’에 대해서만 사과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혈세를 아무런 거리낌없이 낭비하는 행태에 대해서도 이번 기회에 철저히 반성하고 개선해야 할 것이다.
# 야당 중진 A의원 “술만 취하면 여자 더듬어”
‘최연희 파문’이 국민적 충격을 주고 있지만, 술자리와 관련된 정치인의 구설수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이와 유사한 사례도 찾기 쉽다는 게 목격자들의 증언이다. 17대 총선 직전, 2004년 봄에 발표된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 대상자들 중에서 최연희 파문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다.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적인 경우. 정두언 의원은 서울시 정무부시장이던 2003년 10월28일에 서울시청 출입기자들과의 회식자리에서 <경향신문> 여기자를 뒤에서 껴안았다. 다음날 그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술기운에 실수한 것 같다,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후 정 의원은 경향신문사를 찾아가 사과했고, 이명박 시장도 서울시청 출입기자단에 사과했다. 그러나 정 의원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같은해 2월12일 전국언론노조가 ‘양심불량 성추행범 정두언의 사죄와 정계 퇴출을 촉구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성명서를 들추어 보면, 드러나지 않은 이면의 속사정까지 확인할 수 있다. 성명서는 “경향신문지부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사건 당시 보도과장이자 현 총무과장인 서울시 최모 과장이 ‘문제의 사건을 없던 일로 해달라’며 피해 여기자를 최근까지 여러 차례 괴롭혀왔다고 한다”라고 정리했다. 한나라당엔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사건도 있다. 지난해 연찬회에서 벌어진 일이 그것이다. 지방에서 합숙하며 열리는 연찬회는 의원들과 출입 기자들만 참석할 수 있다.
의원들의 보좌진들도 참석할 수 없다. 문제는 뒤풀이다. 평소 거친 입담으로 자주 구설수에 오르는 A의원은 연찬회에서 술에 취해 모 언론사 여기자에게 브루스를 강요하고 강제로 끌어안는 장면을 연출해, 몇몇 기자들 눈에 목격됐다. 그러나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술자리에서 의원들의 친근감의 표시를 ‘예민’하게 받아들인다는 지적을 받지는 않을까, 주위의 시선 등이 거슬리기 때문이다.이 장면을 직접 확인한 모 언론사 B기자는 “상대적으로 언론사 여기자들이 나이가 적어 국회의원들이 만만하게 보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한나라당 C의원의 술자리 문화도 유명하다. 성적인 농담을 섞어가며 여기자들에게 술을 권하는데, 어느 여기자도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성희롱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여기자들마다 다르지만, C의원과 술을 마시면 기분은 좋지 않다는 게 여기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어쨌든 국회 출입 기자들 사이에서 C의원은 “여기자들에게 술 제일 잘 먹이는 의원”으로 통한다. 한편, 분위기를 주도하는 C의원만의 이러한 독특한 술자리 문화 때문에 C의원과 친분이 두터운 D 여성의원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각자 가정이 있는 두 의원의 ‘스캔들’이 그것이다.
한편, 열린우리당 E의원과 모 언론사 여기자와의 핑크빛 소문은 최연희 파문과는 다른 이유로 여의도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원내 입성 이전부터 수많은 ‘빨대(내부 제보자)’를 거느리고 있다고 소문에 휩싸였던 E의원은 기자들에게 최고의 정보원이었다. 17대 국회에서도 국가 기밀사항을 여러 차례 발표해 논란을 빚은 바 있으나, 또 다른 면에서 E 의원은 다른 의원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모 언론사의 여기자는 E의원이 건넨 ‘정보’를 바탕으로 몇 건의 특종을 터뜨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