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묻지않고 능력과 성실성 본다
2005-12-07 이금미
이에 <일요서울>은 차기 주자들의 ‘용인술’을 살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2007 대선 전 당내 경선을 치르기 위한 선거캠프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동영 김근태 이해찬 박근혜 이명박 고건 손학규 등이 그 대상이다. 민심의 척도라 할 수 있는 ‘차기 대통령감’ 여론조사 결과를 볼 때 이들이 2007년 대권 도전자가 될 확률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물론 이들 중 누군가는 청와대의 주인이 될 것이다. 이번 호에는 최근 당직개편을 매듭지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용인술을 싣는다.박 대표의 용인술에 대한 평가는 그를 가까이서 보좌한 이들과 당내 반박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이들 사이에 온도차가 심하다.
부드러움속에 감춰진 강단성
먼저 지근거리에서 박 대표를 지켜본 이들은 “과거를 묻지 않고, 능력과 성실성을 본다”는 데 대체로 이견이 없다. 그러나 2007 대선과 맞물려 있는 시점인 탓에 등용된 인사들의 면면에 있어 차기 주자들과의 친소관계가 변수로 작용, 그의 용인술에는 일정한 공식이 있다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우선 거론되는 것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의 관계다. 제1야당의 총재, 두 번의 대선 도전 등 막강한 권한과 견고한 인재풀을 과시했던 이 전총재의 핵심 참모들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들을 중용한 이후 ‘박근혜-이회창’ 연대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발단은 윤여준 전의원이다. 윤 전의원은 97년 대선 이후 정무특보 및 여의도연구소 소장을 역임한 이 전총재의 핵심 브레인. 지난 17대 총선 직전 한나라당 대표로 추대된 박 대표는 그를 선대위 상임부본부장에 기용, 실무 지휘를 맡겼다. 또한 이 전총재의 최측근인 이병기 전정치특보도 박 대표를 측면에서 지원해주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는 지난 5월 여의도연구소 상임고문에 위촉됐다.
사례는 또 있다. 지난해 취임한 직후 진영 의원을 대표비서실장에 임명한 것. 진 의원은 이 전총재와 KS(경기고-서울법대)로 이어지는 동문으로, 지난 9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정책특보로 활동했다. 진 의원에 이어 대표비서실장에 기용된 유승민 의원 역시 이 전총재의 사람이다. 유 의원은 지난 2000~2003년까지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소장을 역임, 당시 그는 이 전총재의 핵심 브레인이었다. 지난 10월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할 때도 박 대표는 이 전총재의 ‘허락’을 구하고 유 의원을 대구 동구을에 투입했다.
당을 위해 도와 달라
박근혜 체제하에서 당직개편이 이뤄질 때마다 이 전총재와 비교가 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비교가 가능한 이유는 이들이 ‘스킨십이 부족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다른 말로 ‘포용력이 부족하다’, ‘사람을 잘 믿지 못한다’는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차기 유력주자이자 제1야당의 대표인 박 대표에게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왜 없겠냐는 것.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이 전총재는 대규모 사단을 거느리고 있었으나 너무 많아 잡음도 많았고, 몇몇 측근들은 편가르기를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박 대표가 이 전총재의 사람들을 중용하는 이유는 ‘검증된 인물’이기 때문이라는 것. 이는 박 대표의 용인술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박 대표는 이 전총재의 핵심측근들을 중용함으로써, 검증된 인물을 주위에 배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선 패턴은 박 대표의 당직 인선 직전 후보를 물색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나를 위해) 도와 달라”가 아니라 “(당을 위해) 도와 달라”는 식의 구애 전략은 이미 알려진 바다. 이는 박 대표의 ‘무기’라는 평가도 있다. 편가르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검증된 인사를 가까이 둘 수 있고, 용인에 있어 부침(浮沈)이 없다는 얘기다. 첫 단추를 여밀 때부터 말이 많았던 혁신위원회 위원장에 경쟁자인 이명박 서울시장의 측근인 홍준표 의원을 기용한 것도 이를 뒷받침해준다. 한편, 대규모 측근그룹을 만들지 않는 박 대표의 독특한 스타일은 그가 어린 나이에 권력의 핵심에서 ‘정치풍상’을 겪었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는 게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결과라는 얘기다. 때문에 박 대표에 잘 보이고 싶어도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는 게 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 번 눈 밖에 나면 끝 비판적 시각도
물론 검증된 인사 중에도 박 대표가 특별히 선호하는 유형은 있다. 한 당직자는 “조용히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스타일을 가까이 두려 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것이 지금까지 무리 없이 당을 이끌어온 비결이자 박근혜 용인술의 실체”라며 “당직 인선 및 당직자의 실수에 있어서도 외부에서 들려오는 평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이유”라고 진단했다. 박 대표에게 비난도 서슴지 않았던 전여옥 의원을 대변인에 임명, 오랫동안 가까이 두고자 했던 이유도 따지고 보면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박 대표의 인사 스타일에 불만을 제기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특히 반박세력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청와대가 코드 인사라면 한나라당은 주파수 인사”, “한 번 눈 밖에 나면 회복하기 힘들다”고 비꼬기 일쑤다. 이들은 대표적으로 한나라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소장직을 지적한다. 애초 박 대표는 여의도연구소를 교수 출신인 ‘박세일-윤건영’에게 맡겼다. 그러나 선거 때마나 몸을 아끼지 않는 박 대표의 선전을 ‘동정론’으로 분석한 ‘4·30 재·보선 대외비 보고서’가 유출된 이후, 박 대표가 김기춘 의원을 소장에 임명했다. 김 의원은 5공 때 승승장구해 노태우 정권에서 검찰총장을 지냈으며, 박 대표와 인연이 깊은 정수장학회 장학생이자 장학생들의 모임인 ‘상청회’ 회장을 역임했다.
당시 ‘보수’로의 회기가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여기서도 사례는 또 있다. 올 초 4대 법안처리 과정에서 박 대표는 공적인 자리를 빌려 김덕룡 전원내대표의 사퇴를 이끌어냈다. 박 대표는 “나와 원내대표의 생각이 달랐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한편 행정도시특별법 통과 후 의원직을 걸고 반대했던 당시 박세일 정책위의장을 향해 박 대표는 “나와 만나서는 당론결정의 불가피성을 이해한다는 입장을 보였다가 왜 갑자기 바뀌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해, 박 의원은 결국 의원직을 내놓게 됐다.
외곽조직 여전히 미스터리
이처럼 박 대표의 용인술을 평가하는 시각에는 온도차가 있으나, 나름대로 일정한 방향이 있다는 게 정치권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꾸준히 외연을 확대하는 과정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최근 단행된 당직 개편에 있어서도 ‘외연확대’라는 공식이 관철됐다. 우선 그동안 주요 당직에서 소외돼 온 소장파와 비영남권 의원들의 등용이다. 사무총장에는 강원 동해·삼척 출신의 최연희(3선), 비서실장에는 경기 김포 출신의 유정복(초선) 의원을 발탁했다. 홍보기획본부장에 소장파 핵심멤버인 정병국(재선·경기 가평·양평) 의원, 대변인에 이계진(초선·강원 원주) 의원을 임명했다.그리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의 사람들’로 분류되는 측근의원 그룹이 형성된다는 결론이다.
윤여준 전의원과 이병기 소장, 그리고 최근 비서실장에서 물러난 유승민 의원과 대변인에서 물러난 전여옥 의원, 사무총장을 내 놓은 김무성 의원은 향후 박 대표의 대선 레이스에서 일정한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공조직이 곧 박 대표의 사조직으로 변모한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박 대표에게 과연 외곽조직이 있는가의 여부는 여전히 정가의 미스터리다. 유력 대권주자로 부상한 제1야당 대표가 대선 캠프가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정치권의 시각이다. 겉으로 드러난 박 대표의 활동 반경 및 현안 대응은 철저히 공조직에 의존하고 있고, 외곽조직의 실체가 드러난 바가 없음에도 말이다. 또한 외부 자문그룹에 대한 소문도 무성하다. 우선 박정희 전대통령과 연결돼, 3공 당시의 고위 관료 및 그의 자제들, 정수장학생 출신의 교수들이 숨은 조력자라는 게 정설이다. 또 박홍 서강대 이사장. 방석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표학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등도 이름이 오르내린다.